2021년 4월 28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이 설치됐다. 제막식을 앞두고 김용균재단은 "고 김용균의 추모조형물에는 '산재는 살인'임을, '안전은 생명'임을, '더 위험한 비정규직은 이제 그만해야' 함을,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기업의 의무'임을 전제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당초 합의에 따르면 김용균 2주기에 맞춰 추모조형물을 건립해야 했지만, 현장의 일부 정규직노조에서 반대한다는 이유로 회사가 돌연 난색을 표하면서 기약했던 일정을 넘기고 말았다. 이에 김용균재단과 시민들은 태안과 서울을 오가며 서부발전의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긴급 항의행동을 벌였고, 우여곡절 끝에 추모조형물 건립 일정이 확정됐다.
제막식을 연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산재 사건들은 '사건화'되지 못한 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는 결말을 맞는다. 반면, 김용균의 죽음은 사회적 투쟁을 통해 공통의 기억으로 자리매김한 보기 드문 사례였다. 어떤 죽음이 '사건화'된다는 의미는 이를 의도적으로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세력에 맞서 제대로 기록하고 그것을 집단의 기억으로 계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건화를 둘러싼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은 언제나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김용균 추모조형물부터 추모곡 함께 부르기, 노동자 작업복 전시회 등 김용균재단은 지난 6년 동안 다양한 방식의 추모행동, 기억투쟁을 이어 왔다. 4.28 산재노동자의 날을 맞아 일터에서 반복되는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인 권미정 동지로부터 들었다.
'김용균들'을 위한 기억의 시간·장소
김용균이 목숨을 잃은 일터 앞에 그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세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무도 안 보는 곳에 가서 남몰래 눈물 훔치고 숨죽여 추모하길 원한 게 아니잖아요. 우선 많은 사람이 오가는, 누구나 쉽게 발길 닿는 곳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우리 회사에 이런 일이 있었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겨선 안 되지.' 그런 얘길 어떤 특별한 순간에만 잠깐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꺼낼 수 있어야 하니까요."
기억은 본래 휘발성이 강해서 오래도록 간직하려면 별도의 저장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을 매개로 기억은 더욱 질기고 강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예컨대 기념탑, 동상 같은 조형물이나 전시 공간을 통해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기억은 비로소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의 추모조형물도 그렇게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우뚝 솟았다. 이곳에서 일하는 김용균의 동료들이 매일 출·퇴근길에 넌지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다. 많은 이들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인 만큼 김용균의 형상이 어디를 향해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했다.
"숫자로만 기억되는, 그래서 쉽게 무뎌지는 죽음이 아니라 그 너머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이 존재했는지 함께 떠올릴 수 있길 바랐어요. 그래서 가방을 메고 장갑을 한 손에 꼭 쥔 김용균이 '또 다른 김용균들'이 일하는 현장을 또렷이 지켜보는 위치에 서 있는 거고요."

▲2021.04.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태안화력발전소 앞에서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 호나라
위험을 양산하는 구조를 살피는 것으로부터
김용균을 떠올리며 그의 죽음을 아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듯이, 김용균의 흔적을 어떻게든 지워버리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김용균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바로 그랬다. 추모조형물의 건립은 안전보다 이윤을 좇는 세태에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개별적 투쟁으로는 산재사고의 구조적 문제라든지 현재적 의미, 이런 것을 남기기 참 어렵다고 생각해요. 일터의 죽음을 개별적인 사건으로 파편화해서 바라보는 대신, 일하는 사람 모두의 건강과 안전 문제로 보편화하는 과정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죠. 김용균 추모 주간을 단지 애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투쟁을 이어가는 장으로 삼았던 이유도 마찬가지였어요."
산재사망 노동자를 제대로 추모하기 위해서는 위험이 방치되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권미정 동지는 목소리 높였다. 일터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사고'로 덮어두지 않는 것, 희생된 이들의 부주의나 과실 따위로 책임을 돌리지 않는 일이 제대로 된 추모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재해자의 과실을 탓하는 것은 위험 관리에 실패한 책임자들의 주된 서사이기도 하다.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 누군가의 실수가 사고를 초래했다고 보는 편이 훨씬 값싸고 손쉬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죽음이 일터에서 반복될까….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널리 알린다는 건 항상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죠. 여기서 우리가 멈추면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끝까지 발뺌하고 거짓말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테니까요."
기념을 넘어 '기억 투쟁'을
한국에서 '기념비적'이라는 말은 역사적 위업을 달성한 인물이나 사건을 기린다는 의미로 곧잘 쓰인다. 공동체의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순간, 말 그대로 공동체의 번영과 발전에 '획기적'으로 이바지했다는 긍정적 의미를 담아 '기념비적'이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 주변에서 산재와 관련한 기념비나 조형물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특히나 산재와 관련해서 뭔가 기념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일단 산재를 감춰야 할 치부로만 터부시해서일 테고, 또 한편으로는 회사와 합의해서 보상 절차가 마무리되면 그것으로 모든 게 종결돼야 한다는 압박도 큰 것 같아요."
그동안 산재사망 노동자는 일터의 위험을 은폐하려는 자본에 의해, OECD 회원국 중 산재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꼬리표처럼 달고 사는 국가와 사회에 의해 늘 잊혀진 존재 취급을 받았다. 잊혀져 가는 이들의 존재를 되살리는 '기억 투쟁'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돌이켜 보건대 산재를 둘러싼 기억 투쟁에서 기업은 늘 강자였다. 애초 일터의 위험에 대해 노동자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도 제한적일뿐더러 위험을 통제할 권리는 온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해를 입은 뒤 사고 관련 정보를 확보하는 일조차 이를 축소·은폐하려는 기업의 훼방에 직면하기 일쑤다.
"매일 수없이 많은 죽음의 소식들이 들려오잖아요. 그런데 연이은 죽음을 전부 다 기억하고 기록할 수는 없어요. 이 과정에서 어떤 죽음은 사건화되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그렇지 않죠. 그랬을 때 저는 사건화된 문제의 한복판에서 싸움을 잘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사회적 투쟁이라고 부른다면, 이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달라졌으면 하는 일터의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잘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사회적 투쟁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권미정 동지는 15년 전 충남 당진의 한 제철소 공장에서 있었던 산재사망사고를 들어 설명했다. 당시 이 제철소의 용광로에 20대 청년노동자가 빠져 숨졌다는 뉴스가 보도됐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해당 기사 댓글에 달린 추모시 '그 쇳물 쓰지 마라'가 큰 화제가 됐던 사고였다.
"제대로 된 안전난간도 없는 현장에서 청년노동자가 발을 헛디뎌 쇳물에 빠져 죽은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겠어요. '그 쇳물 쓰지 마라'는 그때 추락 사망한 노동자를 기리는 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업과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 외침이기도 했죠. 실제로 이 제철소는 사고 당시의 쇳물을 쓰지 않고 조형물을 만들어서 공장 뒤편에 두었다고 하더라고요."
기업들이 겉으로나마 반성하며 변화를 다짐하는 이유도 이처럼 사회적인 투쟁이나 공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억과 애도는 꼭 물리적인 외형을 갖춰야만 표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가수 하림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는 2020년 9월 '함께 부르기 챌린지'를 통해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바라는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풍화되는 기억을 단단히 붙잡아 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추모행동과 추모공간이 결합돼야 한다고, 권미정 동지는 강조했다.
"세대가 바뀌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도 점차 희미해질 수 있잖아요. 사회적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일부러 내 시간과 역량을 투여해서 학습해야 하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상적으로 마주치면서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416 생명안전공원을 만들고 기억교실을 운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회와 일터, 작업장 안팎을 가르는 경계나 문턱 없이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공간에서 기억하고 애도하기를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인 임용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