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풍에 쓰러진 나무세찬 바람에 쓰러진 나무 ⓒ 본인
[ 기사 수정 : 16일 오후 1시 59분]
겨우내 추위를 꿋꿋이 이겨내고 만개했던 벚나무 꽃잎이 무자비한 봄바람에 흩어지던 14일 밤과 15일 아침 사이 있었던 '작은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분명 봄바람이었는데 밤 바람은 왜 그토록 시리던지요. 최근 눈에 띄게 불어난 뱃살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저는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고 밤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아파트 상가 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아기 하마를 닮은 듯한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도 없이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기 하마를 닮은 강아지 ⓒ 박순국
떨어진 담배꽁초를 물어보기도 하고 차가운 밤바람에 떠 밀려 날아가는 담뱃갑 종이를 쫓는 세상 똥꼬발랄, 천방지축 어린 강아지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엔 강아지 주위에 사람들이 계시기에 당연히 보호자일 거라 짐작하고, 저는 편의점 앞 난간에 기대어 쉴 새 없이 전후좌우로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핸드폰에 한눈을 파는 사이 보호자라 생각했던 일행이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았고, 난간에 기대어 있는 저와 편의점 내부에 근무 중인 직원 1명을 제외하고는 강아지 근처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여 편의점에서 키우는 강아지일까 싶어, 때 마침 영업 마감 준비를 하기 위해 편의점 외부로 나오는 직원에게 질문을 드리니 '처음 보는 강아지'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 아... 주인을 잃은 강아지구나.'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섰고, 주위 인적이 뜸해지고 있었습니다. 편의점도 영업 종료 시간이 되어 곧 간판의 전등이 꺼졌습니다. 봄을 시기하는 세찬 찬 바람에 두꺼운 외투를 입었음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날씨 속에도 강아지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추위도 잊은 채 뛰어다녔습니다. 이따금 종종걸음으로 편의점을 빠르게 지나치는 낯선 행인의 발을 쫓아 놀아달라는 듯 응석을 부리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니 마음 한편이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당근 올린 글 "강아지 잃어버리신 분, 찾아가세요"

▲당근 게시글강아지 찾아가세요 제발 ⓒ 박순국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잠시 고민하던 중 '강아지 찾는다'는 글을 당근에서 왕왕 본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곧장 강아지 사진을 찍고 글을 올렸습니다. 강아지를 애타고 찾고 있을 보호자가 기적적으로 이 게시글을 확인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요. 하지만 자정까지 연락이 올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제게는 과거에 강아지를 구조했다 겪은 아픈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의 일입니다. 가을비가 세차게 오던 저녁, 어느 날 우산을 쓰고 길가를 걷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차도 옆 인도 위를 서성이고 있던 강아지를 발견하여 인근 파출소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파출소 내 경찰이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제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다음날 강아지를 안고 동네에 있던 인근 동물 병원, 강아지숍을 모두 돌았음에도 끝내 보호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강아지는 얕은 기침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강아지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저는 단순히 "강아지가 비에 맞아 감기에 걸렸구나" 정도로 생각했고, 잘 먹고 잘 자면 그냥 나을 거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전단지를 만들어 동네 곳곳에 붙였어야 했기에 강아지의 건강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기도 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강아지의 가족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전단지를 붙인 그다음 날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강아지 기침도 멈추지 않았기에 집에 두는 것보단 "동물 보호소에 인계하면 강아지 기침 정도는 치료해 주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또한 급히 처리해야 할 개인적인 일이 있었기에 더 이상 강아지에 쓸 여력이 없어 3일째 되던 날 동물 보호소에 오후 인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4일째 드디어 이름 모를 노인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동물 보호소로 인계한 지 24시간이 되지 않았기에 빨리 보호소에 연락하여 강아지 데리고 가시라고 웃으며 말하고 통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서 먼저 연락 드려보니 아래와 같은 내용의 짧은 문자 메시지가 왔었습니다.
"동물 보호소로 입소한 다음날 아침, 피를 토하며 죽어 있는 강아지를 직원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10년 전 그날의 충격은 오늘의 나에게 눈앞의 강아지를 임시보호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10년 전 그날의 경찰과 동물 보호소의 기억은 나의 신고를 막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겨울 같았던 4월의 늦은 밤, 오지도 않을 것 같은 기적의 당근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편의점 문을 닫고 퇴근하던 학생으로 짐작되는 젊은 직원이 강아지와 우두커니 서 있던 제게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119에 한번 연락을 해 볼까요?"
'119에 전화하면 직원들이 싫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예전과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또 오지도 않을 당근 메시지를 하염 없이 기다리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강아지가 크지는 않은데 지나가는 주위 행인들에 계속 달려들어요"라는 말에 119에서는 신고를 접수받았고, 10분 정도 지나자 대형 소방차 1대가 도착을 했습니다.

▲119 소방차119 소방차 도착 ⓒ 박순국
"저희는 유기견을 포획시 인근 구청으로 바로 인계를 합니다. 인계 후 동물 보호소로 다음날 바로 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보통 인계 한 날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안락사를 합니다."
자신에게 기다리고 있을 그 가혹한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방대원에 함께 놀자며 응석 부리는 똥꼬발랄하던 강아지를 다른 한 소방대원이 단호히 들어 올리니 어찌나 얌전하던지요. 강아지를 들고 착잡한 표정으로 안락사 단어를 말씀하시던 소방대원을 바라보며 '그러면 제가 임시 보호를 할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예전 일이 생각나서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했습니다.
"인계하시는 구청의 연락처를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제 마음속에 아주 작게 남아 있던 알량한 양심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그 뒤 소방차에 실려있던 철제 케이지에 들어가 소리 없는 사이렌 불빛과 함께 떠나는 강아지를 지켜보고 있자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분실견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로 가지 못하도록 나뭇가지로 놀아주고 있는 영상 박순국
집으로 돌아왔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구멍 난 양심에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해, 동네 커뮤니티에도 조언을 구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잠시 뒤, '기적'이라고 부를 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개에게, 주인에게, 나에게 기적이 벌어졌다

▲당근 게시글강아지 찾아가세요 제발 ⓒ 박순국
자정을 넘긴, 새벽 1시경 임시보호를 하겠다는 사람이 구청에 연락해보니, 분명 제가 강아지 목덜미를 만져서 찾았을 때는 칩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렇게 찾아 헤매던 '칩'이 발견되었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똥꼬발랄 명랑하던 그 강아지가 이제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저의 구멍 난 양심이 사면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근 게시글기적 ⓒ 박순국
날이 바뀐 15일 아침, 확인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구청 당직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이 감동이었습니다.
"새벽에 강아지 보호자분께서 펑펑 눈물을 쏟으시면서 구청에 방문하셨어요. 저희가 보호자라고 말씀하시는 분의 핸드폰에 저장된 수십 장의 강아지 사진을 확인하고 연락처와 성함을 받은 후 강아지 인계해 드렸습니다."
분명 어제는 차갑기만 한 봄바람이었는데, 오늘 아침의 봄바람은 차가우면서도 그 어찌나 상쾌하던지요. 아기 하마를 닮은 강아지에게도, 애타게 강아지를 찾았을 가족에게도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밤 산책을 가볍게 나갔다 뜻하지 않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저에게도 작은 기적이 일어났던, 잊지 못할 3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