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지구라는 생명체 안에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각각의 장기들이 제 역할을 하듯이 작동한다면, 인간은 그 속에서 적혈구나 백혈구쯤 되는 존재가 아닐까? 산소를 운반하고,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방어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지만, 때로는 과잉 반응으로 몸 자체를 망가뜨리기도 하는, 그런 이중적인 존재 말이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라는 책이 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단순한 행성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스스로를 조절하며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려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이 조화로운 시스템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지구라는 큰 생명체의 극히 일부인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자신만을 위한 생존에 몰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어린이집은 자연은 삶의 공간이고 배움의 공간이며 아이는 그 속에서 자라는 존재라는 것을 교사와 부모, 아이가 모두 실천하며 지켜 나가고 있다. 단순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라거나 '지구가 아파요' 라고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나 당연히 함께 살고 그 일부가 되어 사랑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원은 이렇게 실천하고 있다
매일 간식으로 먹고 나오는 빈 우유갑은 일반재활용 종이와 분리해 씻어 말려서 따로 모아야 재활용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교실에서 우유를 마시고 빈 우유갑을 물에 씻어 말려 놓으면 씨영금반 아이들이 바구니를 들고 거둬 가기로 하였다. 다음 날 모여 앉아 가위를 들고 잘라 펴서 한곳에 모아 놓았다. 어느 날 산책을 하다 우유갑을 주민센터에 가져가면 두루마리 휴지로 바꿔 준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주민센터에 가서 바꿔왔다. 요즈음은 폐건전지도 모아서 새 건전지로 바꿔온다. 아이들은 물건의 쓰임과 순환을 몸으로 배우며, 재활용이 '환경 보호'라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놀이이자 책임이 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 아이들은 농사를 잘 짓는다. 입학하면서부터 우리 밭이 있는 매곡리 자연학교로 나들이를 다녀 농사 경력이 오래된 씨영금반은 농사의 달인이다. 계절에 맞춰 지금쯤이면 감자를 심어 놓고 갈 때마다 줄 지어 풀뽑기를 한다. 뽑아 놓은 풀은 닭이나 토끼에게 가져다 준다. 내가 안 먹는 것도 잘 먹는 동물들이 있으니 나눠 먹으면 된다. 가끔 두더지가 나타나 밭을 헤집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도 함께 사는 거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6월에는 논에 모를 심는다. 산책 갈 때마다 내가 심은 모가 잘 자라는지 살펴 보고 익어 가는 모습을 본다. 가을에 벼베기를 하고 탈곡까지 직접 해서 그 쌀로 밥을 지어 먹고 나면 아이들은 밥 한 공기 속에 담긴 계절과 땀과 기다림을 느낀다. 단순히 '농사 체험'을 넘어서, 흙에 발을 딛고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가 딛고 사는 이 땅의 소중함을 배운다. 먹는 일이 생명을 잇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익히고, 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어느 해는 열무가 풍성하게 잘 자라고 감자도 상추도 풍성했다. 교사와 아이들은 팔아서 돈을 벌기로 했다. 텃밭의 채소들이 풍성한 6월에 날짜를 잡았다.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를 곁들여 기부받은 물품들도 함께 팔기로 했다. 열무는 다듬어 김치를 담고 농산물은 잘 나눠 가격을 책정하여 신문지 봉투에 담아 두었다. 부모에게는 아나바다 물건을 기부받기로 하고 아이들과 교사는 판매할 물품 제작을 했다.
아이들은 룸밴드팔찌, 반짝이는 홀로그램 색종이로 만든 미니카 등을 만들었다. 교사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만드는 컬렉션 직물 가방, 티매트, 식탁매트, 책갈피를 만들었다. 이때 철칙은 지구에 가장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환경, 재활용, 새활용 수공예품 위주로 일회용품 사용은 절대 금지다. 장바구니는 필수다. 집에서 사용하던 주머니나 원에서 집으로 교재를 담아 보내던 부직포 가방을 이용하기도 하고 안 입는 티셔츠를 들고 와서 밑단을 잘라 묶어 장바구니를 만들기도 한다. 열무김치는 반찬통을 들고 오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당일 아침 마당에 장을 펼치고 딱 한 시간 반만 판매하는 번개시장을 시작한다. 부모는 입장료가 따로 있는데 깨끗이 씻어 말린 우유갑이나 폐건전지이다. 모두의 협조로 장사가 너무 잘 되어 해마다 장을 열고 일찌감치 완판을 하여 돈도 많이 벌고 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일한 만큼 벌고, 지구를 덜 아프게 하는 방식으로 소비하고, 장바구니와 반찬통을 챙기는 문화까지 배운다. 부모도 우유갑과 폐건전지를 입장료 삼아 참여하며, 모두가 순환의 일부가 된다.
아이들은 회의를 해서 우유갑으로 바꿔 온 두루마리 휴지를 어린이집에 되팔아 모아 놓은 돈과 텃밭 잔치에서 수고하여 벌어 놓은 돈으로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 먹었다. 그렇기만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이들이 산책길 우연히 만난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를 보고 힘드시겠다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교사가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 할 수 있으면 나눌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결국, 아이들은 자기들 것을 나누기로 했고 쌀, 이불, 선풍기 등을 때에 맞춰 사 들고 가서 주민센터를 통해 기부하고 있다.

▲24년 텃밭잔치초대장 ⓒ 움사랑생태어린이집
생태유아교육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감각을 기르는 교육
농사를 지으며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순환을 알게 된다. 우유갑을 씻고 말리고, 안 입는 티셔츠로 장바구니를 만들며 나를 둘러 싼 세상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을 배운다. 자기들이 한 일이 돈으로 돌아오고 일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일하여 번 돈을 나누며 자신이 속한 세상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도 배운다.
생태교육은 단순히 숲으로 가서 바람과 벌레 흙을 친구 삼아 자연 안에서 자라는 것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가둬 놓은 동물에게 먹이 주고, 줄 서서 기다리다 곤충을 만져보는 것을 자연 친화적인 활동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생태유아교육은 자연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감각을 기르는 교육이다. 임재택 교수는 이를 "생명 중심의 감수성과 공동체적 태도, 순환적 삶의 실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과정"이라 말한다. 결국 아이들은 자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의 관계를 공생의 관계로 써 내려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다음 글은 생태어린이집 교사들의 실천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