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 커튼을 여니 따스한 봄 햇살이 환하게 비춘다. 사이사이 하얀 벚꽃이 마치 명화 속 한 장면처럼 풍경을 빛냈다. 갈수록 짧아지는 봄의 수명이 못내 아쉬워 가족들이랑 꽃구경을 가리라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발길이 아들 방으로 향했다. 방문 너머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진즉에 잠에서 깬 것이 분명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응" 대답하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컴컴한 방에서 침대에 누워 이불로 몸을 꽁꽁 싸맨 채 양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유튜브 영상을 보며 깔깔대고 있는 아들이 보인다. 그 모습이 흡사 유명한 애니메이션 <라바> 속 애벌레 캐릭터 같았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보는 아들 모습좋은 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만 보는 아들 ⓒ 게이트이미지 뱅크
"아들, 오늘날이 끝내주네. 혹시 오후에 약속 있어?"
"아니."
"그럼, 이따가 벚꽃 구경 갈래?"
"싫어."
"왜?"
"사람들도 많고, 귀찮아."
여기서 더 나갔다간 본전도 못 찾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기에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희멀건 아들 얼굴이 그날따라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화창한 날 어디라도 나가면 좋으련만 방 안이 그리도 좋을까.
내향인 아빠에 내향인 아들
어릴 때 아들은 외향적이진 않았지만, 나름 친구 관계도 나쁘지 않고 밖에서 노는 것도 좋아하는 밝은 아이였다. 나 역시 함께 축구도 자주 하고, 때 되면 매미나 잠자리 등을 채집하러 돌아다니는 등 외부 활동도 많이 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잘 지냈던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간 뒤 사춘기가 찾아왔고 그 시기에 하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며 내향성이 짙어졌다. 학교에서도 다른 친구들과 접촉할 수 없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부담되는 상황이 되면서 아들은 점점 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아내가 학부모 면담을 다녀온 후 큰 충격에 빠졌다. 아들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 하나 없이 쉬는 시간에 주로 책을 읽으며 보낸다고 했다. 대인관계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조언이 계속 남는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가끔 아들에게 친구 관계가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모른다고 피하더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아이가 힘들어하면 그게 다 부모 탓으로 다가온다. 나의 내향성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져 그런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 되었다. 주변에 외향적인 아이들을 보면 코로나19 시절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똑같이 겪었더라도 금세 제자리로 찾아가듯 다시 활발하게 친구를 사귀는 것 같았다. 반면, 아들은 그 기점부터 내향성이 극에 달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극도로 피하고, 학교나 학원 가는 것 외에는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 대인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진 않았지만, 애를 많이 썼던 기억이 있다. 겉으론 잘 지내는 듯 보여도 관계 속에서 겪는 사소한 갈등조차 소화하기 어려워 표현도 못 하고 혼자 끙끙 앓곤 했다. 그러다 감당할 수 없게 되면 회피하고 단절하게 되었다. 지나고 나니 그때 적극적으로 부딪치고 해결하려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서였다. 반 아이 한 명과 투덕거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때는 친구들끼리 그럴 수 있다며 별일 아닌 듯 넘겼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일이 촉발되어 다른 몇몇과도 갈등이 생겼고 그걸 잘 풀지 못해서 결국 멀어지게 되었다는 걸.
그 모습 또한 왜 그리 나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넘기지 말고 아들과 좀 더 대화하고 풀어갈 방법도 찾아보았어야 했나.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아들이 그때 혼자 있던 상황을 솔직히 말하면서 그 또한 경험 중 하나였다고 합리화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더 마음이 아팠다.
본인 속도 대로 잘 가고 있는 것

▲만개한 벚꽃아파트 아래로 만개한 벚꽃 모습 ⓒ 신재호
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아내와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건 학업이 아니라 대인관계였다. 중학교 때처럼 외롭게 지내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했다.
"요즘 밥은 누구랑 먹어?"
"동아리 신청 기간이던데, 같이 할 친구는 있어?"
"쉬는 시간엔 뭐하며 보내?"
사춘기가 내려가는 시점이라 그런지 귀찮을 만한데 그래도 답을 해주었다. 다행히 마음 맞는 친구 서너 명이 생겼고, 다들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하고 쉬는 시간엔 운동장에서 공도 차면서 보낸다고 했다. 가끔 집에 있을 때 보면 저녁에 친구들과 약속 잡고 축구 하러 가기도 했다.
또 수련회도 다녀와 단체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아들 양옆에 나란히 서 있는 아이들이 그때 말한 친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멋 부리지 않은 단정한 모습에 표정 변화도 크게 없고 딱 아들 같은 내향인이 분명했다. 그들만의 주파수가 맞아 가깝게 되었겠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전처럼 걱정되지 않는다. 때로는 어릴 때처럼 까불고 가족들과 대화도 잘 하기 때문이다. 사춘기로 한창 힘들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활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아들은 본인 성향에 맞게 소수의 친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여전히 집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밖에 나가서 어울리기도 한다. 본인 속도 대로 잘 가고 있는데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이제 곧 성인이 되어 군대도 가고 사회 생활도 시작할 거다. 내향적인 성격이 때로는 걸림돌이 되겠지만 진중하고 차분한 모습이 장점으로 발휘돼 그걸 상쇄하고도 남으리라 믿는다. 나 역시 그랬으니. 그리고 언젠가는 화창한 봄날이 되면 먼저 꽃구경 가자고 할 날도 오길 슬쩍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