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롱 시민기자는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2022년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린 후 <오마이뉴스>에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이태원 참사 '그 이후'의 삶에 함께 귀기울여 주세요.
책의 편집자이자, 출판사의 대표님인 L이 내게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북토크를 다녀보는 것이 괜찮으시겠냐는 질문을 했을 때, "북토크에 사람들이 많이 올까요, 또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요 제가 그 기대를 채워드릴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이윽고 L이 내게 말했다. "사람들은 책을 인상 깊게 읽으면, 그 책을 쓴 작가를 직접 만나보고 싶어해요. 그렇게 책의 메시지를 더 깊고 멀리, 확장시켜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하게 책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다른 것은 몰라도 사회적 참사를 담은 기록물이자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최대한 그렇게 직접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가닿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독자와 지역서점이 원한다면, 지체 없이 그곳을 향해 움직였다. 출판사와 나의 '작가님을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는 그렇게 지난 2023년 12월 15일, 대전에서 출발했다.
지역 독립서점들이 북토크를 많이 열고 싶어도 현실적인 비용 부담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출판사의 제안으로 작가의 출장 경비를 출판사가 부담하고, 기꺼이 원하는 지역서점으로 작가를 보내 북토크를 개최하자는 제안이었다. 마케팅이 무엇일까. 정답이 있다면 배우고 싶다. 다만, 우리가 했던 '작가님을 보내드립니다'도 마케팅이 아닐까 생각한다. 닿을 수 있는 곳에 최대한 노력해서 가닿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케팅이었다. 구미 북토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열정이 달아오른 나는, 감사하고 행복하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위험하다

▲지난 6개월간 아이들을 만나면서 남들보다 더 느끼고, 많은 것을 꿰뚫어볼 줄 아는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nate_nessman on Unsplash
프로젝트의 첫 번째 북토크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내가 차마 알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북토크에 어린 아이들이 참여한다는 사실이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대학생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막연히 아이들은(학생들은)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의 편견이고 착각이었다.
'작가님을 보내드립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6개월 동안 모든 지역에서 아이들이 참여하지 않았던 북토크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적어도 참가자의 3분의 1 정도는 아이들이었으며 가장 높은 비율로 아이들이 많았던 북토크에는 전체 참여 인원 중 60%가 넘었다.
북토크를 하면서 유심히 관찰한 결과, 내가 새로이 발견한 사회 문제는 '청소년 우울증'이었다.
초등학생을 제외하고 중학생, 고등학생의 참여 인원 중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우울증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다수였다. 그 아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또래 친구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가족이나 학교 선생님 또는 어른들이 알고 있는 경우는 극소수라는 사실이었다.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게으른 개인의 성격 탓이라고 돌리거나 병원 치료를 거부하는 등 제대로 돌보지 않아 철저히 외로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북토크를 무슨 연유로 찾아온 걸까.
내가 청소년 우울증의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난 6개월간 아이들을 만나면서 남들보다 더 느끼고, 많은 것을 꿰뚫어볼 줄 아는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정의에 민감하고, 어리지만 옳고 그름을 명확히 아는 아이들이 있다.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고, 인권과 부조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있다.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세상에 의문을 갖고, 희망을 품으며 기대거나 존경하고 싶은 어른을 찾아 헤매는 그런 아이들이 우리 생각보다 많다.
이렇게 특별히 똑똑한 아이들은 늘, 세상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 세상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를 지켜본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때, 자신의 부모님의 태도를 보고 실망하고, 학교 선생님의 실언으로 매우 상처받고 쉽게 희망을 빼앗긴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고, 자퇴를 하거나 오랜 무기력으로 집에 갇혀 생활하는 아이들이 있다.
집이나, 학교보다 차라리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마음 편히 있는 것이 좋아서 자발적 입원을 한다던 한 아이의 고백이 나를 아프게 했다. 밥도 꼬박꼬박 나오고, 약도 꼬박꼬박 주고, 아무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고 조용해서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한 명이 아니었고, 같은 이야기를 다른 지역에 사는 아이들로부터 몇 번 반복해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이, 지금 위험하다.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이 오직 병원뿐이었다는 것이 나를 절망시켰다. 그런 아이들이 북토크에 온다. 책을 읽고, 그 글에 위로를 받아서, 이 작가라면 조금은 다른 어른일까 기대하는 것이었다. 형편상 병원에 방문할 엄두도 내지 못하거나,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지 않은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은 북토크 참여비가 무료인 것이 마냥 좋다. 부담이 없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참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이들은 대개 말이 없고 조용하다. 그리고 묵직한 한방의 질문을 가끔 내게 던진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들에게 사회적 참사가 끼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아이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아직 의문이 다 해결되지 않았는데, 여전히 왜 그 의문이 해결되지 않은 건지, 세상은 왜 아직 그대로인지 내게 물었다.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같은 질문을 세상에게 하고 있었으니까. 답을 찾지 못해 책을 쓰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 이었다. 사회적 참사로 인해 어른인 나만 아프고 우울증에 걸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이 수록 사회적 이슈 타격은 더욱 깊고, 강하게 찌른다.
'설마' 하며 마음 졸이던 나날들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출판사 대표인 L과 점심식사를 하던 중,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뉴스에 충격을 받았고, 그날 밤 엄마인 자신에게 재차 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계엄이면 우리나라 어떻게 되는 거야? 망하는 거 아니야, 엄마? 어떡하지?"
지난 12월 3일 이후 아들의 온 관심은 탄핵과 관련된 일에 쏠렸고, 도대체 이 사태가 어떻게 결말이 지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특이한 아이에요'라고 말하는 L에게 '특별하고 똑똑한 아이라 보이고 느끼는 것이 많은 걸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전국의 마음 아픈 아이들은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를 보고 아파하던 아이들은 스스로 세월호 참사와 대구지하철 참사,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공부해와 질문을 했다. 아이들을 더욱 아프게 할 사회적 참사를 반복되게 내버려둔 것 같아 어른으로서 면목이 정말 없다. 아이들은 어떻게 이 공적 우울을 어떻게 해소하고 자신을 돌보고 있을까. 그래서 나는 파면 선고 당일 누구보다 힘들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파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나는 불안했다.
비상식의 사회에서 벌어진 참사의 당사자였고, 후속 조치 또한 비상식적으로 행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상식은 무너져 내렸고, 압도하는 비상식에 마음을 크게 다쳐 결국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세상을 순진하게 믿을 수는 없었다. 탄핵이 기각될지도 모른다는,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이 전원 일치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생각났다. 아이들의 세상 최전방의 경계가 지켜졌다. 최전방의 경계가 무너졌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우울과 패배감은 깊은 무기력으로 이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굳어지기 십상이니까.
그래도 희망이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세상에 대해 비상식적인 말을 해대던 학교 선생님의 언행에 충격 받고, 고심 끝에 학교를 자퇴했다는 어느 아이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 아이를 학교 밖으로 나오게 했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도 함께 생각났다. 굽히기보다 부러지기를 선택한 아이를 끌어 안고, '세상살이가 마음대로 그렇게 다 안 돼, 가끔 부러질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하며 타일렀을 테지만, 결국 아이의 선택을 받아들인 부모님을 가만히 생각했다. 파면 선고는 세상에 대한 상처와 불신을 가진 자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딛고 있는 이곳이 보편적 가치를 잃지 않는 곳이라는 위로였다.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앞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에서 파면을 결정되자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TV 화면을 돌리다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부둥켜 안고 펑펑 우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저들의 마음을 안다. 나처럼 비상식의 사회에서 상처받은 지난 2년, 이대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누구보다 덜덜 떨었을 것이다.
지난 2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부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초롱씨, 생일 축하해요. 메신저를 보다가 우연히 생일인 걸 알게 되어서, 정말로 축하해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부모 잃은 마음은 알아도, 자식 잃은 마음 나는 모른다"라는 대사를 듣고 또 펑펑 울었다. "부모는 추억이 되는데, 자식은 그게 안 되더라"는 대목에서는, 유가족의 마음을 알게 되어 더욱 눈물이 났다. 자식 잃은 이들이, 다른 이의 살아남은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 태어난 날을 축하해줬다.
자식 잃은 마음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놀랍게도 나는 그들의 축하 전화로 오랜 겨울의 우울에서 빠져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나도 그들에게 반쪽짜리 축하의 마음을 건넨다. 완전한 축하는 아마 참사의 온상인 그들의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을테니, 파면 축하의 마음만을 보낸다. 비상식의 세계에서 상식의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갔으니, 상식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조금아마나 위로 받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여전히 잠을 푹 자지 못하는 그들일 것이다. 잠 못 든 날들을 뒤로 하고 훈훈한 기운에 조금은 기대 누워 잘 수 있는 봄이기를. 드디어 봄이다. 아직은 춥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어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