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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아들과 자동차 세계여행을 하다 갑자기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에 선발된 아빠, 2024년 12월부터 약 1년간 남극기지에서 대기과학 연구원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나는 9살 아들과 2022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 한국 자동차를 타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40여 개 나라를 여행했다. 여행을 마친 뒤에는 전남 화순으로 돌아와 평범한 일상을 시작했다. 혼자 살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가끔 버거운 순간도 있었지만, 주말마다 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작년부터 아들은 영어 공부를, 나는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2026년에는 지금 타는 차를 미국으로 가져가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여행을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한창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스페인어 공부하기엔 남극세종기지가 정말 좋은데...'

나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약 1년간 남극세종과학기지(아래 세종기지)의 월동연구대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어려서부터 남극, 사막, 시베리아 같은 대자연을 동경해온 나는 기상청에 입사해 기상예보관이 되었고, 여러 번 도전 끝에 대기과학 연구원으로 선발되어 남극 땅을 처음 밟을 수 있었다.

다시 지원하게 된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원

남극세종과학기지 본관 남극세종과학기지는 서울에서 1만 7240km 떨어진 곳에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본관남극세종과학기지는 서울에서 1만 7240km 떨어진 곳에 있다 ⓒ 오영식
세종기지가 위치한 남극 킹조지 섬(King George Island)에는 여덟 나라가 상설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러시아의 벨링스하우젠 기지(1968년)를 시작으로 칠레의 프레이, 중국의 장성, 우루과이의 아르티가스, 아르헨티나의 칼리니, 폴란드의 아르토스키, 브라질의 페라즈 그리고 대한민국의 세종기지(1988년)가 있다.

킹조지 섬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많다. 그 덕에 세종기지에 근무하면 스페인어를 활용할 일이 종종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킹 조지 섬의 남극기지 남극 킹 조지 섬에는 9개 나라에서 기지를 운영한다.
킹 조지 섬의 남극기지남극 킹 조지 섬에는 9개 나라에서 기지를 운영한다. ⓒ 고용수

당시 아들과 단 둘이 산 지 만 3년이 넘은 때였다. 매주 하루는 엄마 집에서 자고 와 사랑을 듬뿍 받고 오긴 했지만, 사춘기가 오기 전인 지금, 엄마와 1년을 함께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아들과 전 아내에게 물어봤다.

"태풍아, 아빠 남극에 1년 갔다 와도 될까?"
"남극? 옛날에 아빠 갔던 데? 또 가?"

"응, 너도 아빠랑 오래 살았으니까 이번엔 엄마랑 1년 살아볼래?"
"엄마랑? 그래!"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아들은 아무 걱정 없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나는 곧바로 월동대원 공개채용에 지원서를 넣었다. 물론 경쟁률이 높아서 마음만 먹는다고 선발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운 걸까. 운 좋게도 나는 제38차 월동연구대(대장 김원준)에 최종 선발될 수 있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 월동연구대는 대장 비롯해 총 18명의 대원들로 구성된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제38차 월동연구대월동연구대는 대장 비롯해 총 18명의 대원들로 구성된다 ⓒ 고용수

2024년 11월 27일, 남극으로 떠나기 전날, 학교 앞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태풍아! 아빠 이제 간다. 이제 1년 뒤에 보는 거야."
"응, 그래"
"아빠 간다는 데 아무렇지도 않네? 아빠를 사랑하는 거야 뭐야?"
"아니, 사랑해. 잘 갔다 와"

평소 껌딱지처럼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아빠를 친구처럼 생각하던 아들이라 혹시라도 떠나는 날 울먹이면 어쩌나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남자 애라 그런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아들 덕분에 나도 담담히 작별 인사를 마칠 수 있었다.

주말, 야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하계기간

다음날, 18명의 다른 대원들과 함께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세종기지는 서울에서 17,240km 떨어진 지구반대편에 있다. 그곳에 가려면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한다. 프랑스 파리, 칠레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마지막으로 킹조지 섬까지. 총 4번의 비행기와 1번의 고무보트를 타고, 35시간 만에 세종기지에 도착했다.

마리안소만에 떠 있는 조디악 세종 기지에서 다른 나라 기지로 가려면 고무보트 운항이 필수이다
마리안소만에 떠 있는 조디악세종 기지에서 다른 나라 기지로 가려면 고무보트 운항이 필수이다 ⓒ 오영식

극지연구소는 남극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 두 곳을 운영한다. 각 기지의 대장과 총무 2명은 연구소 직원 중에서 선발하고, 해군과 기상청 파견자 2명을 제외한 14명은 매년 공개 채용을 통해 뽑는다.

월동연구대는 총 18명으로, 총무반(대장, 총무, 의료, 통신, 조리) 5명, 연구반(대기, 고층대기, 생물, 해양, 지질, 기상) 6명, 유지반(기계설비, 중장비, 해상안전, 발전, 전기) 7명으로 구성된다.

세종기지에 도착한 우리 제38차 월동대는 약 8일간 제37차(대장 이형근) 대원들에게 인계인수를 받았다. 그리고 2024년 12월 11일, 공식 인계인수식을 치른 후 본격적으로 세종기지 운영의 주체가 되었다.

월동연구대 인계인수식 인계인수서에 서명을 하면 기지 운영의 주체가 다음 차대로 바뀐다
월동연구대 인계인수식인계인수서에 서명을 하면 기지 운영의 주체가 다음 차대로 바뀐다 ⓒ 고용수

이날부터 우리는 손님용 숙소에서 기지 본관 숙소로 방을 옮겼다. 그리고 기지의 모든 시설과 운영을 책임지게 되었다.

세종기지는 남반구에 위치해 북반구에 있는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다. 남극에서도 하계기간이라고 불리는 12월부터 2월은, 한국의 겨울처럼 상대적으로 온화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 기간에는 월동연구대뿐만 아니라 현장 연구를 위해 다양한 연구원들이 기지를 방문한다. 또한, 건물과 발전기 같은 대형 설비에 대한 보수공사도 이때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많은 기술자들도 하계기간 동안 기지에 머물게 되는데 이 사람들을 '하계대'라고 부른다. 세종기지에는 하계기간 동안 약 90명에 달하는 하계대가 머물며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월동대의 주요 임무는 연구와 유지보수 업무지만, 이 기간 동안은 하계대 지원 업무까지 더해져 주말과 야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4시 기상하는 이유

월동대원의 하루는 아침 7시 30분에 아침식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8시 15분에는 간부회의, 8시 30분 전 대원 회의를 거쳐, 9시부터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간다. 하지만 하계기간에는 본인 업무를 틈틈이 챙기기 힘들 정도로 하계대 지원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교대로 해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고무보트 보조사가 되어야 하고, 일손이 부족한 생물연구팀을 돕기 위해 펭귄마을에 따라가 펭귄조사 업무를 하기도 한다. 또한 주방에서는 조리장을 돕기 위해 교대로 설거지와 요리를 하고, 유지반 대원들의 시설물 보수에도 수시로 투입된다.

한 마디로, 하계기간 월동대원의 일과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모든 일을 도맡아야 했다. 밤 늦게 일을 마친 뒤 샤워도 하지 않고 쓰러지듯 잠들 때도 있었지만,나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기지 시간으로 새벽 4시는 한국에 있는 아들이 영어 수업을 마치고 간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한국보다 12시간 늦다). 나는 아들과 이야기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도 함께 하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다. 남극에 오면서 스페인어 공부와 남미 친구 만들기라는 목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과 떨어진 이 시간을 결코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매일 일기를 써서 돌아가기 전 책 한 권을 만들고, 일기장과 함께 아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부러 근사한 일기장도 사 왔다. 그리고 인계인수식을 마치고 본관동 숙소로 짐을 옮긴 첫날 밤, 방 안에 앉아 일기장을 꺼냈다.

펜을 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무슨 말을 쓸까?'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펜을 내려놓고 일기장을 덮어버렸다. 아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려던 순간, 미안함과 보고 싶은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와 도저히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근사한 일기장은 책장 한켠에 꽂혀, 아직도 한 줄도 쓰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쓰지 못한 일기장 일기를 쓰려고 했지만, 아들 생각이나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쓰지 못한 일기장일기를 쓰려고 했지만, 아들 생각이나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 오영식

내가 남극에 온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비유하곤 했었다. 하지만, 남극기지에 근무한다는 건, 군에 입대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군대는 가끔 외출, 외박, 휴가라도 있지만, 남극기지는 1년 동안 외부로 나갈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극 생활의 가장 힘든 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1년 동안 안아줄 수 없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매일 힘든 일과속에서 나를 지탱하게도 하고, 동시에 무너뜨릴 것 같기도 하다. 아들 곁을 떠나 남극에 온 지 130일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아들과 매일 통화한다. 그런데 항상 묻고 싶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이걸 물어보면 왠지 내가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태풍아! 아빠 안 보고 싶어?"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아들 손잡고 세계여행')와 유튜브 채널('오씨튜브')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남극#월동연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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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극세종과학기지 대기과학 연구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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