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광역시 광산구 성덕고등학교 학생들이 4일 오전 교실에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과정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2025.4.4 ⓒ 김형호
4월 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예상치 못한 논란이 벌어졌다. 십중팔구 수업 중일 금요일 11시, 교실에서 탄핵 심판 선고 중계를 시청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걸 두고 각 지역 교육청마다 방침이 갈렸던 것이다.
가장 먼저 시청 권고 공문을 보낸 전남교육청 등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교육하는 기회로 삼자고 했다. 반면 일부 교육청들은 '정치적 중립성 위반 우려'를 들어 중계 시청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거나 아무 입장이 없다고 했다. 이 사안에 대해 교육부는 4월 3일 공문을 통해 '교육기본법' 상 '교육의 중립성' 조항과 '공직선거법' 등 관련 법령을 위반하지 말라는, 그리고 "학교 수업을 변경하는 경우 반드시 적법한 학내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지한다고 명시하진 않았지만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경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학교는 대통령 탄핵 심판이라는 중대한 문제를 함께 지켜보는 것조차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다. 한쪽에서는 선고 중계 시청이 살아 있는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적 편향이고 논란거리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답답했다. 애초에 교육청이 허락 또는 권고를 해야 할 일이 되는 것부터가 지금 학교에서 얼마나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지를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통제당하는 학생들의 삶
한번 이렇게 물어보자. 금요일 11시는 대다수 노동자들, 직장인들에게도 근무 중일 시간이다. 그런데 왜 일터에서 다 같이 탄핵 심판 중계를 볼지 여부는 논란거리가 안 됐을까? 이상한 질문 같기도 할 것이다. 어째서 굳이 함께 시청한단 말인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시청을 하든 속보를 보든 하면 될 텐데...
특별히 보안이 엄중하거나 통신기기 소지가 불가능한 소수의 직업을 제외하면, 이건 그냥 개개인이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다. 물론 노동시간 중에 방송을 보는 것이 편하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눈치껏 주요 내용만이라도 잠깐 확인하는 정도야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다. 정 일이 손에 안 잡힌다면, 그리고 혹시 선고 결과에 따라 즉각 뭔가 해야겠다는 결의를 품었다면 휴가라도 내고 헌법재판소 선고를 지켜볼 수도 있겠다.
학생들의 경우에 이런 식으로 생각되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은 (등교와 동시에 일괄 수거해 버리는 등의 문제로)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 못하고, 소지가 허용되는 경우에도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보는 것은 곧 일탈행위로 여겨진다. 학생들이 대통령 탄핵 선고를 보기 위해 결석을 하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즉 학생들은 개개인이 알아서 정보를 접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학교에 의해 통제당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중계 시청을 일괄적으로 '허락'할지 말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학생이 휴대전화를 수거·압수당하지 않을 권리가 '통신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라고 이야기해 왔음을 떠올리게 해준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중요한 소식을 전달받고 긴급하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학생들에게 그만큼의 인권과 자유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교육청 또는 교사의 결정에 따라 선고 중계를 시청하는 것이 무슨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교육인 양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모양새이다.
어째서 자치의 문제로 상상되지 못하는가
뉴스를 접하고 주요 소식을 찾아보는 것이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권리의 문제라면, 더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권리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로 참여권과 자치권, 집단적 자기결정권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4월 4일 11시에는 선고 결과를 보느라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는 호소를 남기기도 했다. 학교 수업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개인적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가정하에) 어차피 수업 도중에 호기심과 불안감으로 다들 소식을 찾아보게 될 것 같다면, 그 시간에는 다 함께 헌법재판소 선고 중계를 시청하자는 건의가 교실 또는 학교 차원에서 나올 법도 하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집단적으로 선고 결과를 지켜보며 그때 느낀 감정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고, 교육적 자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학교 구성원 중 누구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4월 4일 11시에는 같이 중계를 시청하자는 제안을 꺼내고, 자치적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함께 시청할지 말지,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나눌지 등을 결정하는 식으로 학교가 운영된다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것 아닐까. 모든 학급이 시간표도 다르고 상황도 제각각이니, 학급 단위로 실시간으로 지켜볼지 말지, 수업 일정을 조정할지 어쩔지를 결정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3~4월 중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가 있을 거라는 예상이 유력했으니 그런 회의를 거칠 시간은 충분했다. 급하게 결정해야 한다면 학생회나 학급회장 같은 대표자들이 참여하여 결정하는 방식도 가능했다. 학교에서 이런 논의와 결정을 잘 떠올릴 수 없는 것, 이런 자율적인 과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학교가 여전히 민주주의적이지 못하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통제와 허락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라는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같이 지켜볼지 여부가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될 수 없는 학교의 현실은 유감스럽다. 학생들이 옷차림과 휴대전화 소지 등 사적인 영역까지 학교에 통제받고 지시받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는 이런 적극적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각 학급들의 자치적 결정을 보장한 학교들도 있다고 하지만, 극소수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교육청의 성향과 지침에 따라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날의 학교 상황에서 '각 학교의 자율에 맡긴다'는 일부 교육청의 입장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테니 문제거리를 만들지 말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만일 교육부·교육청이 정말로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했다면, 처음부터 시청 여부는 해당 학교의 자치권의 영역임을 명시한 뒤 학교 구성원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하라고 권고하고, 교육적 측면에서는 어떤 실천과 활동이 가능하다고 예시하고 지원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할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학생들의 시국선언, 정치활동 등을 금지한 학교들의 문제점도 드러났던 바 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 선고를 시청할지 말지가 논란거리가 된 일 역시 학교의 문제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학생들이 중요한 소식을 찾아볼 자유도 보장받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통제받는 학교, 교육청이 허락해야만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같이 볼 수 있는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잘 배울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학교는,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교육청이 보라고 허락해 주는 학교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사회와 정치의 소식들을 찾아보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학교, 중요한 뉴스를 실시간으로 같이 볼지 말지를 자치 회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학교여야 한다. 시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 헌법의 출발점이듯,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학교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교육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