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전격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2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오는 4월 18일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의 퇴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임명권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9명의 재판관 가운데 3명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이유도 국회가 국민의 선거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대법원장에게 3명의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이유는 '권력분립원칙'에 있다. 선거를 본질로 하는 민주적 정당성의 헌법적 근거인 민주주의만큼 권력분립원칙의 헌법적 근거인 법치주의는 국가를 조직하는 헌법의 핵심적 원리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대법원장이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선출되지 않은 국무총리도 대통령권한대행자로서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재판관 임명권은 권력분립원칙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에 필요한 의결정족수를 판단하면서 대통령과 비교하여 총리의 민주적 정당성을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인' 것으로 규정하였다(2024헌나9).
헌재 2025. 3. 24. 2024헌나9 국무총리(한덕수) 탄핵 관련 결정 |
국무총리는 헌법 제86조에 따라 그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기는 하지만, 이는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과 비교하여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인 민주적 정당성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가사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자로서 국무총리는 대통령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위에 있다. |
현재 전직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이므로 공석이 되는 재판관 임명권은 차기 대통령의 권한이다. 그렇다면 재판관 임명권을 행사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재판관 후보자 지명권을 권한대행인 총리가 행사했으므로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다.
파면된 대통령의 권한을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대행하는 총리가 공석인 재판관을 임명하는 행위의 본질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단지 차기 대통령이 확정되지 않아 지금 당장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없을 뿐이지 위헌적 상태가 아닌 것처럼 퉁치고 넘어갈 단순한 일이 결코 아니다.
최상목 부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면서 국회가 선출한 재판관 후보자 세 명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지도 않는 재판관 후보자 임명거부(보류)권을 행사한 것과 마찬가지다. 동일한 권한대행으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권한에 근거하여 최 부총리는 당연히 임명해야 할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지만 한 총리는 마땅히 임명하지 않아야 할 재판관을 임명했다는 점만 다르다.
최 부총리가 국회 선출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아 국회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것처럼 한 총리가 대통령 지명 후보자를 임명하여 차기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결정해야만 하는 객관적으로 명확한 사안인 것이다.
차기 대통령의 권한 침해한 한덕수 총리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총리가 무리하게 대통령 임명몫의 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된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6월 3일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면 민주당 정부에 의하여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이 제소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예상하고 미리 정당해산결정을 막기 위한 예방책으로 알박기 인사를 단행했다는 주장이다.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가 현재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헌법 제84조)의 범위를 공소제기로 한정하고, 이미 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을 진행하기 위한 음모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불소추특권의 범위에 대한 해석을 전제로 이미 공소제기된 형사재판을 계속 진행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법원의 권한이므로 이 전 대표의 재판을 계속 진행할지 여부는 법원이 결정할 수 있다. 두 번째 가설의 현실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위헌적 월권행위를 감행함으로써 탄핵소추를 유발하여 자진사퇴한 뒤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는 포석이라는 가설도 주장된다. 한 총리가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가설과 결합되면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한 총리의 위헌적 월권행위를 저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었다. 재판관 지명행위의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이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안으로 거론되었다. 실제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당사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를 주장하며 가처분을 신청했고, 헌법재판소는 새로 임명된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주심으로 지정하였다. 곧이어 국회의장도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면서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권한쟁의심판에서는 가처분이 인정되지만 헌법소원심판에서는 가처분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헌법소원심판에서도 가처분이 인정된다는 점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2000헌사471).
헌재 2000. 12. 8. 2000헌사471 결정 |
헌법재판소법은 정당해산심판과 권한쟁의심판에 관해서만 가처분에 관한 규정(같은 법 제57조 및 제65조)을 두고 있을 뿐, 다른 헌법재판절차에 있어서도 가처분이 허용되는가에 관하여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위 두 심판절차 이외에 같은 법 제68조 제1항 헌법소원심판절차에 있어서도 가처분의 필요성은 있을 수 있고, 달리 가처분을 허용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위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에서도 가처분이 허용된다고 할 것이다. |
중요한 것은 가처분이 인용될 수 있는 요건인데 최근 선고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가처분 결정(2024헌사1250)에 이르기까지 헌법재판소는 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의 예방필요성과 ② 가처분의 긴급한 필요성 ③ 가처분이 인용될 때와 기각될 때의 불이익에 대한 비교형량의 결과를 가처분 요건으로 제시한다.
헌재 2024. 10. 14. 2024헌사1250 결정 |
헌법재판소법 제40조 제1항에 따라 준용되는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의 집행정지규정과 민사소송법 제714조의 가처분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가처분결정은 헌법소원심판에서 다투어지는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의 현상을 그대로 유지시킴으로 인하여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야 하고 그 효력을 정지시켜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 그 요건이 된다 할 것이므로, 본안심판이 부적법하거나 이유없음이 명백하지 않는 한, 위와 같은 가처분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인정되고, 이에 덧붙여 가처분을 인용한 뒤 종국결정에서 청구가 기각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과 가처분을 기각한 뒤 청구가 인용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불이익에 대한 비교형량을 하여 후자의 불이익이 전자의 불이익보다 크다면 가처분을 인용할 수 있는 것이다. |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한 총리가 재판관을 임명하는 행위에 헌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가 지명한 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반대로 권한대행에 불과한 한 총리가 재판관을 임명하는 행위가 위헌적 월권행위라면 그가 임명한 재판관의 헌법재판은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제27조 제1항)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재판을 받을 권리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하며 그 재판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을 갖춘 법관'을 뜻한다. 헌법이 정한 법관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가진 주체가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임명한 법관이다. 헌법재판도 헌법이 정한 자격을 갖춘 재판관의 재판을 의미한다.
문제는 재판관 임명권이 없는 총리가 지명한 재판관 후보자 두 명을 결국에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경우다. 법률상 후임자를 지명하면서 인사청문회 요청을 한 뒤 빠르면 3주가 지나면 재판관 임명이 가능하므로 4월말이면 임명절차가 완료된다. 이미 임명된 재판관의 임명에 관한 효력을 사후에 뒤집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헌법재판을 받는 당사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의 발생이 예상되어 이를 예방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이유다.
가처분 인용의 조건

▲마은혁(왼쪽 네번째) 헌법재판관이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재판관들과 함께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한창 재판관, 정형식 재판관, 김형두 재판관, 마은혁 재판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권한대행, 이미선 재판관, 정정미 재판관, 김복형 재판관, 정계선 재판관 ⓒ 공동취재사진
두 명의 헌법재판관 퇴임은 4월 18일로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날이 지나면 헌법재판소는 7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심리가 진행될 수 있으므로 7인 체제에서도 심리는 가능하다.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 후보자에 대해서 국회는 20일 이내에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수 있다. 20일이 지나도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대통령에게 도달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서 기간을 정하여 보고서의 제출을 다시 요구할 수 있다. 그래도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대통령은 지명한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가처분이 시간적으로 긴급하게 필요한 이유도 확인된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본안심판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선거가 실시된 뒤 차기 대통령이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본안심판에서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행위가 합헌이라는 기각결정이 나오면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은 권한대행에 의해 지명된 후보자가 재판관이 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이다.
반면에 가처분이 기각되면 본안심판이 종료되지 않은 채로 권한대행은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에 권한대행이 임명한 재판관은 본인의 자격에 관한 사안이므로 본안심판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료 재판관의 자격을 심사해야 하는 재판관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하면 차기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에도 헌법재판소가 권한대행에 의해 임명된 동료 재판관의 자격에 대한 심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튼 본안심판에서 권한대행의 재판관 지명행위가 위헌이라는 인용결정이 나오면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은 헌법에서 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 했음에도 임명된 재판관의 재판을 청구인이 받게 됨으로써 입게 되는 불이익이 된다. 이러한 청구인의 불이익이 지명된 후보자의 불이익과 비교하여 전자가 더 크다고 판단되면 가처분은 인용된다.
만약 가처분이 인용되어 재판관 후보자 지명의 효력이 정지되면 헌법재판소는 새 정부 출범 이후에 재판관 후보자의 자격을 부담없이 심사할 수 있다. 원래대로 차기 대통령이 전 정부에서 권한대행이 행한 후보자 지명을 철회하고 새로운 후보자를 지명하면 된다.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후보자가 임명되기 전, 그것도 두 명의 재판관이 퇴임하기 전에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준일씨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