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장에서 휘날리는 '빨강은 혁명의 색이다' 깃발 ⓒ 트위터 '영원한 기록자'@photo_ahmm
내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찰 알박기를 하던 최상목에 이어 한덕수가 헌재에 대법관을 알박기하고 EBS 사장, 인천국제공항보안 사장 등 수많은 알박기를 통해 제2의 내란, 일상적 헌법유린을 획책하고 있다. 파면이 끝이 아니고 탄핵은 사회대개혁의 시작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안하무인으로 헌법과 국민을 농락하는 저들의 몰염치가 예상보다 심각하다.
일상으로 돌아가려던 우리는 다시 광장을 열기로 했다. '다시 민주주의'다.
춘류(만 25세, 여성, 취준생, 대전 중구)는 그래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평생, 죽는 순간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길게 내다보려 한다. 막연하게 고민하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광장에서 얻었으니 일단 숨고르기부터 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 주는 세월호 행진이 예정되어 있었으니 참여하겠지만.
2차 남태령-경복궁 집회가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금토일월은 서울로 가고, 화수목은 대전집회에 참여하고 있어서 수요일인 남태령 집회는 원래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덕수가 기각되는 걸 보면서 가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길게 늘어선 경찰들을 보고 그는 철야투쟁을 각오했다. 1차에서 배운 게 있다면 길을 열겠지 했는데, 그들은 배운 게 없는지 트랙터를 "불법탈취"했다.
트랙터를 되찾기 위해 달려간 경복궁에는 더 많은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스크럼을 짜서 출구를 막고 있었고 경찰버스는 계속 불어났다. 마침 거기는 춘류가 가본 적 있는 대여한복상점거리였다. 길을 아는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뒷길로 달려가는데 골목 여기저기를 경찰오토바이가 누비고 있었다.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달려 도착한 곳에서는 채증이 끝났으니 즉시체포하겠다는 엄포와 함께 경찰이 와락 들이닥쳤다.
춘류는 그때 알았다. 투쟁현장을 못 떠나겠구나. 일반시민이 없었다면 벌써 다 잡아갔을 것이다. 나 한 사람이 떠나면 동지들이 다친다. 결국 연대만이 살길이다.
"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지만, 말도 안 되는 짓을 버젓이 하는 게 더 무서웠어요. 12·3 계엄 이후로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을 많이 해요."
"관심을 놓을 수가 없어요. 눈을 떼면 죽는 거예요"

▲붉은 한복을 입은 춘류 옆에 파란색은 한복 메이트 ⓒ 정유정youjung.jung@gmail.com
그는 2월부터 광장에 나왔다(정확히는 12월 첫 주에도 국회 앞에 갔고 가끔 퇴근길에 잠시라도 대전광장에 들르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다). 하필이면 계엄이 일어난 그 주에 이직을 했다. 불행히도 그곳은 주 16시간 이상을 일하게 하고도 최저시급도 제대로 주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대표는 계엄을 옹호하는 가짜뉴스를 떠들어댔다. 과로사 직전이기도 했지만 대표가 사상검증에 가까운 질문을 해대자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동안 탄핵가결집회나 남태령, 한강진 집회에 못 갔던 한을 풀 듯이 그는 매일 광장으로 달려갔다. 극우들 사이에서 일하며 속으로만 외쳤던 것들을 실컷 표출했다. 당장 깃발부터 만들었다.
"깃발을 흔들며 '나 여기 있다'를 말하고 싶었어요. 아무 말 깃발도 있지만, 이왕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었죠."
원래 빨강을 좋아했다. 특정정당에 빨강을 뺏긴 게 억울했다. 선거철에는 특히 더 빨강을 피해야 하고 가끔 친구들이 놀리는 것도 서러웠다. 저들에게서 내 것을 되찾아올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빨강은 혁명의 색이다'라고 정했다. 친구들은 너무 튀어 특정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해 주었다. 그는 오히려 보호색이 되어준다고 한다. 강렬한 인상 때문에 빨강만 벗으면 못 알아본단다.
빨강만큼 그는 어릴 때부터 한복을 좋아했다. 곡선을 그리며 길게 한들거리는 특유의 풍성함이 멋스러웠다. 특히 신라시대의 화려하고도 빛나는 한복을 좋아한다. 오랜 시간 국가의 흥망성쇠를 겪었으면서도 한복이라는 고유함을 지켜온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하늘의 옷'이라 불리기도 하는 한복을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하기 위해 그는 발품을 팔았다. 지금은 단골집이 생겨 좀 더 간편한 소재로 현대화해서 원하는 한복을 마음껏 입는다. 그러려면 따가운 시선쯤은 견디고 당당히 무시해야 한다. 다행히도 광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나도 입어보고 싶었다는 반응까지 있다. 처음으로 한복 입고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드러내는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 한 사람의 정체성이 되고, 나아가 '고유한 나'로 살게 하는 것은 덕질의 힘이자 매력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뉴스나 칼럼을 스스로 챙겨보았고 친구들도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 본격적인 인터넷 세대이기도 하고, 덕질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SNS도 하게 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었다. '덕후가 정치 얘기를 하면 세상이 뒤집어진 거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10년 지기 트친(트위터 친구)들도 모두 광장에 나왔다.
"관심을 놓을 수가 없어요. 눈을 떼면 죽는 거예요. 눈을 번히 뜨고 쳐다보는데도 저러잖아요."
그럼에도 춘류는 그동안 직장생활에 매여 청원이나 후원 정도밖에 못했다. 퇴사 이후에야 겨우 원하던 광장에 나갈 수 있었고, 못 한 만큼 더 많이 투쟁하려고 애를 썼다.
눈앞 과제들에 집중... "안 그러면 몇 년 뒤 또 어떤 일이 닥칠지"
깃발을 들면서 다른 연대투쟁에도 참여했다. 그중 세종호텔이 가장 마음이 쓰인다. 동종업계라 공감이 되어서 더 그런 것 같다. 탄핵집회 때문에 자주 가지 못 해 지금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몰랐던 투쟁의 장이 많다. 구미옵티컬 투쟁이 450여 일이 넘었다는 것도, 대전에서 코웨이 투쟁이 있는 줄도 몰랐다. 당장 연대가 필요한 곳을 찾는 것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많은 동지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했지만 그는 당분간 일반시민의 위치에서 연대하고자 한다. 일반시민의 눈을 두려워하는 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정당 해체, 검찰과 언론개혁, 그리고 노동시장개혁을 해내야 해요. 어느 것이 먼저랄 것 없이 다 중요해요. 안 그러면 몇 년 뒤에 또 어떤 최악의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어요."
글을 쓰는 현재도 지귀연 판사가 국민을 우롱하고 법정을 모독하는 걸 보면, 그의 말대로 '눈을 떼면 죽는다.' 두 눈 부릅떠야 한다.
"최대한 광장에 많이 나오는 수밖에 없어요. 머릿수라도 채우고 잠깐 앉았다 가더라도 꼭 나와 주세요."
노동시장개혁은 그에게도 중요한 과제다. 경기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위협을 느끼는 업종의 노동자로서, 6년이라는 애매한 경력의 노동자로서, 노동시장에서 착취와 피해를 받아온 피해자로서. 지난번 회사에서도 그는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수습기간까지 요구했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 쓰고 버리는 노동시장을 개선하지 않으면 언젠가 모든 산업이 허리가 부러져 거꾸러질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은 사라져야 한다. 이 광장을 건너오면서 우리는 비정규직을 철폐하라는 노동자들의 절규를 들었고, 공정을 앞세운 엘리트들의 위선을 알아버렸다. 광장의 여론이 변했다는 걸 정치인들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광장은 '전환점'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사회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이전 세대의 노하우가 단절될 위기였거든요. 급속 운동권화 되면서 민주시민으로서 어떻게 투쟁을 해나갈지 전수받은 느낌이에요."
코로나 때부터 동아리활동이나 덕후들의 행사가 맥이 끊기고 있었다. 집회문화도 마찬가지였다. 기성세대가 아니면 더 이상 이어갈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전수를 받는 차원을 넘어 주도권을 잡았다. 지난 박근혜 탄핵 당시에만 해도 노동권이나 장애인, 성소수자는 뒷전이었다.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며 다른 이슈는 꺼내지도 못 하게 했다. 지금은 다르다. 아무도 뒤에 있지 않다. 어떤 이슈든 가시화하는 데 동의하고 지지한다. 정상성에 대한 전복을 꿈꾼다.
나는 당사자성에 대해서 물었다. 왜 자기 이슈를 중심으로 모이지 않고 연대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느냐고. 그는 다리를 다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장애인과의 연결성을 말했다.
"모든 의제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타인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나를 지탱할 수 없다는 걸 폭넓게 이해하게 된 거 같아요."
광장은 어쩌면 타인의 존재를 발견한 계기가 된 것 같다.
파면선고 후 며칠 동안 그는 미뤄두었던 약속들을 청산(?)했다. 영화를 보고 생일날 종일 잠을 자고 아침수영과 베이킹을 했다. 슬슬 취업준비도 시작하려 한다. 그가 일상으로 돌아가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러면서도 계속 정치에 관심을 갖고 연대투쟁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는 노동환경이기를.
그는 분명 그런 세상을 이루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