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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이자 숭실사이버대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입니다. 2005년 독일에 첫 발을 디딘 뒤 독일과 한국을 오가다가, 2016년부터 독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배우 A씨와 고인이 된 아역 출신 배우 B씨와 관련된 사건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일부 사람들은 "미성년자와 사랑하는 게 무슨 죄가 되느냐"고 한다. "미성년자일 때 사귀었다 해도, 지난 과거니까, 형사 처벌도 안 되니 더 이상 문제 삼지 말자"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 대부분의 나라에서 성인-미성년자 교제는 형사 처벌 가능한 사안이다(형법 제305조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죄 참고). 그러나 설혹, 법을 피해간다고 해도 성인-미성년자 교제가 괜찮은 건지 반문해야 한다. 이것은 이 사회의 도덕 윤리적 수준과도 관련 있다.

배우 A씨의 미성년자 연애 문제는 개인 스캔들 이상의 여러 시사점을 포함한다. 미성년자 교제에 대한 형사 처벌 여부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의 법과 도덕 윤리, 아동권리 보호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반응, 관련한 시스템이 없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 등에 대해 따져볼 수 있는 사례여서다.

나이 전에 권력 관계의 불평등을 따지는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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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는, 인권 용어인 의무담지자(Duty Bearer, 독일어로는 Rollenverantwortliche)가 제 역할을 한다. 기자, 교사, 콘텐츠 제작자, 관리자 등이 미성년자와 연관된 사안에서 어떤 책임을 다했는지 점검하고, 그 책임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들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을 평가하고 그 책임을 방치, 방조한 제도와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반면 개인을 단죄하는 것은 쉽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쉬운 방법을 택하고 있어 보인다. 특정 한 사람의 죄를 추정하고 단죄하려는 듯한 보도가 많다. 배우 A씨의 편을 들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즉각적인 '정죄'보다는, 사회적 토론과 제도 분석으로 이어져야 이번 일이 배우 A씨 개인의 일로 끝나지 않고 제2, 제3의 사건도 재발하지 않을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미성년자와 사랑하는 게 왜 죄가 되나요?"묻는 이들이 있다. 의사결정 능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그들은 성인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당하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 가스라이팅의 희생자가 될 위험이 크다(자료사진).
"미성년자와 사랑하는 게 왜 죄가 되나요?"묻는 이들이 있다. 의사결정 능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그들은 성인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당하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 가스라이팅의 희생자가 될 위험이 크다(자료사진). ⓒ tingeyinjurylawfirm on Unsplash

한국처럼, 독일 형법도 미성년자 보호에 있어 '성적 자기결정권'을 핵심 개념으로 삼는다. 독일에서는 만 14세 미만 아동은 절대적 보호 대상이며, 14세 이상 16세 미만의 경우, 상대방이 21세 이상일 때 관계의 권력 불균형 여부를 따져 처벌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단순히 '나이 차이'가 아닌, 관계의 구조, 즉 누가 더 많은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연예인이나 교사, 감독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성인의 경우, 설령 미성년자의 '동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동의가 정말 온전히 자율적이었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이 핵심이다. 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사회적, 경제적, 법적, 심리적 힘이 훨씬 우세한 데서 나타나는 권력 불균형을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계의 불균형을 인식할 수 있을까? 독일에서 성적 동의에 대한 교육은 주로 5학년(10세)부터 16세까지 진행한다. 이 교육에서 사용되는 FRIES 모델은, 우리나라 성교육에도 소개되고 있다.

여기선 '동의'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알려 준다. 동의란 Freely Given(동의는 자발적이어야 하고), Reversible(동의는 중간에 철회가 가능하며), Informed(중요한 정보들을 알고 내려야 하고), Enthusiastic(적극적인 동의가 표현되어야 하며), Specific(구체적인 동의 표현이 있어야 한다)이다.

FRIES 교육 후 학생들은 이런 구체적인 질문으로 관계의 불평등성을 익힌다.

-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가?
- 상대가 거절했을 때, 실제로 관계는 지속 가능한가?
- 상대에게 나를 거부하거나 비판할 현실적 권한이 있는가?
- 나의 지위, 사회적 위상, 경제력 등이 관계에 영향을 주는가?
- 상대가 나와의 관계를 '의무'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은 아동이 권리 주체자로서 자각을 갖게 한다. '표현할 권리, 참여할 권리'가 이 과정에서 지지된다. 성인은 이러한 권리를 보장해줄 의무를 진다. 성인은 자신의 위치와 상대방의 취약성을 자각할 수 있으며, 이는 단지 도덕적 양심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법적·교육적 체계 속에서 학습되고 규범화되어야 한다.

미성년자는 '작은 성인'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는 성인과 비슷해 보인다 해도, 아동. 청소년은 심리적, 인지적으로 발달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성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 어렵고 그렇게 맺어서도 안 된다. 특히, 의사결정 능력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 성인과의 관계는 동등해지기 어렵다. 그들은 성인에 의해 길들여지고 조종당하는, 이른바 그루밍(Grooming), 가스라이팅의 희생자가 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미성년자가 성인과의 교제에 합의했다거나 '동의했다'는 게 어떤 건지 말이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자유로운 동의'였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일부 성인들이 미성년자와 합의했다거나 그(녀)의 동의를 받았기에 교제하는 데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다.

미성년자의 동의는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내가 아동을 위험에서 보호하자는 '보호주의'만 강조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는 미성년자가 가진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와 자기 결정 능력을 바탕으로 관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선택의 기준은 성인에게 유리한 해석이 아니라, 미성년자의 실질적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독일 언론의 철저한 익명보호

 한국 언론과는 달리, 독일 언론은 무죄 추정의 원칙, 인격권 보호,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낙인 방지를 이유로 실명 언급을 극도로 자제한다. (자료사진)
한국 언론과는 달리, 독일 언론은 무죄 추정의 원칙, 인격권 보호,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낙인 방지를 이유로 실명 언급을 극도로 자제한다. (자료사진) ⓒ alterego_swiss on Unsplash

또한 내가 이 글에서 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해당 사건 이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유튜브 콘텐츠와 자극적인 기사들이다. 익명 커뮤니티에는 추측성 글들이 넘쳐난다. 이미 사망한 B씨는 미디어와 개인들에게 무분별하게 그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실명과 개인정보를 과하게, 서슴없이 공개하고 아동권리를 침해한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란 이유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것을 문제시 한다. 내가 굳이 이 기사를 쓰면서 배우 A씨와 B씨라고 한 이유다.

독일 언론은 무죄 추정의 원칙, 인격권 보호, 사건의 본질과 무관한 낙인 방지를 이유로 실명 언급을 극도로 자제한다. 독일에서는 기사를 보도할 때 원칙적으로 실명, 사진, 관계가 전부 비공개이다. 비실명이므로 개별적인 사건의 검색이나 추적이 매우 어렵다.

독일기자협회 윤리강령(DPJ Kodex)은 실제 영향력도 크고 기자들은 아동권리에 대한 특별교육을 받는다. 기사 내용에 대한 법적 기준도 형사소송법, 청소년법(JGG) 까지 포함돼 엄격하다. 게다가 보도 후에는 언론윤리위원회, 시민, NGO 감시, 자율감시도 일상적이다. 이를 위반하고 정정된 후 기사가 삭제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우리나라처럼 포털에 치면 쉽게 나오는 아동청소년 사건의 전모를 독일에서는 대부분 알 수 없다. 철저한 익명보호.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과거 독일에서 성인-미성년자 간 연애 이슈가 있었는지 구글이나 AI 검색, 판례집을 뒤졌지만 구체적인 사례는 찾아내기 어려웠다. 독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최고는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EU 권고와 UN아동권리협약을 실행하기 위한 변화 속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는 다르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편 한국에서는 최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적 동의 연령을 19세로 올리자는 청원이 등장했다고 한다(지난달 31일 국회에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상향 및 처벌 강화법안' 청원이 올라왔다. 미성년 대상 성범죄 기준 연령을 현행 16세에서 19세로 상향하자는 게 골자다).

그러나 동의 연령을 높이는 데에는 토론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 이는 아동권리 분야의 오랜 쟁점이자 논쟁거리인데, 아동보호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한편으론 아동의 자유(선택)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현행법에서 정한 성적 동의 연령(16세)은 독일(14세), 프랑스(15세)보다 이미 더 엄격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활발한 사회적 토론을 하고, 그걸 기초로 미흡한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을 어떻게 정비할지를 논의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성인과 미성년자의 연애, 동의, 대중의 분노. 이 모든 키워드가 돌아와 묻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누가 아동의 권리를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내가 지금껏 경험한 독일 사회는 이렇게 답한다.

"개인이 아닌, 시스템과 제도가 책임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아동권리#독일#미성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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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은 (argon24) 내방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이고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교수. 현재 독일에 체류하며 소수자와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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