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 도시 쇠퇴, 지방 소멸 등 복합 위기에 처한 지역/지방을 살리려면 어떤 조치가 따라주어야 할까. 사회적금융연구원은 3.17일 국회에서 열린‘지역경제 활성화 전략 포럼’에 참여했다. 이글은 이번 포럼에서 논의된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 방안을 소개할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력을 알 수 있는 두 개의 지표가 있다. 자립도(自立度)와 자주도(自主度)인데, 전자는 수입의 자체 충당 능력을, 후자는 재원 사용의 자율권을 나타낸다. 지자체 관점에서는 자립도보다 자주도가 더 중요하다. 자립도는 낮아도 자주도가 높으면 재정 운용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광역별 재정자립도 & 재정자주도 현황 (2024년 기준)통계청 (e-지방지표) / 기자 재편집 ⓒ 통계청
위 그림은 우리나라 광역 자치단체별 재정 여력을 표시한 것이다. 왼쪽이 자립도, 오른쪽이 자주도다. 자립도를 살펴보자. 70%가 넘는 지역은 1곳(서울시) 뿐이다. 30%가 안 되는 지역도 4곳(강원, 경북, 전북, 전남도)이나 존재한다.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곤궁한지를 보여준다.
자주도를 보자. 빈 공백을 정부 예산으로 메워주고 있지만, 80%가 넘는 지역은 1곳(서울시)뿐이다. 70∼70%가 8곳, 70%에 미달하는 지역이 8곳이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주지 않으면 지자체 행정 기능은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지자체는 정부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신세가 된 지 오래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총 세수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연방국가가 높고 단일국가가 낮다. 우리나라의 지방세 비중(2021년 기준)은 24.7%로, OECD국가 평균(19.7%)보다 높지만, 우리와 조세 환경이 비슷한 일본(37.7%)과 비교하면 13% 포인트 낮다.

▲OECD국가의 지방세 비중 (2021년 기준)OECD국가 재정분권 국가 비교 ⓒ 한국지방세연구원
한국도 일본도 많은 지자체들이 인구 감소와 재정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지자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생긴다는 건 가문 날의 단비와 같다. 중앙에 의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큰 우리나라 현실에서 자주 재원이 갖는 의의는 클 수밖에 없다.
고향납세를 통해 일본 지자체에 유입되는 돈은 얼마나 될까. 2023년 기준으로 약 1조 1175억 엔이다. 일본 일반회계 세입예산(약 72조 엔)의 1.49%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023년도 우리나라 일반회계 세입예산은 497조 원이었다. 같은 비율로 계산하면, 약 7조 4000억 원이다. 정부가 지방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 매년 출연하는 기금(1조 원)보다 7배 이상 많은 돈이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정착되어 지자체의 재정 여력에 숨통을 틔워준다면, 지역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소상공인을 살리고,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관계 인구를 늘리는 마중물로 쓰여 소멸의 속도를 늦추는 데 기여할 게 틀림없다. 분권의 핵심은 곧 재정자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후루사토납세총합연구소(FTRI)에 따르면, 고향납세의 경제 파급 효과는 모금액의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고향납세로 모인 총액은 약 8300억 엔이지만, 답례품 제공 등 지역경제에 기여한 효과를 종합해 보면 2조 8000억 엔이 넘는 가치(338%)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2024년에 전국 지자체 중 1위를 한 광주시 동구가 분석한 내용도 유사하다. 기부금이 지역에 유입+순환하면서 창출되는 승수효과(local multiplier effect)는 3.3∼5.0 사이로 추정되며, 역외 소비 유출을 감안해도 최소 2배 이상의 경제 파급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고향사랑기부금과 정부 보조금·공모사업 비교지역경제 활성화 전략 국제포럼 발표자료 ⓒ 광주광역시 동구청
기부금과 보조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부 보조금이나 공모사업은 ①지자체 자율성이 제한되어 있고, ②공공사업이나 기반 조성에 쓰여 소비 진작 효과가 낮고, ③정부 정책 변경에 따라 변동성이 크며, ④배분 경쟁 방식이어서 소외지역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⑤행정절차도 복잡하고 ⑥국민 체감도도 낮다.
이에 반해 고향사랑기부금은 ①지역 맞춤형 사업을 진행할 수 있고, ②답례품 조달 등을 통해 경제 순환 효과가 창출되고, ③지자체의 노력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자립 재원이며, ④참여가 늘수록 재정이 증가하게 된다. 나아가 ⑤절차도 간소하고 ⑥기부자와의 교류를 통해 관계 인구를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고향납세는 돈의 이동 경로를 바꿈으로써 단순한 세금 이전을 넘어 낙후된 지역·지방을 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내나 각자가 지정한 곳에 내나 납세자가 부담하는 돈은 차이가 없다. 그런데 시민이 세금 낼 곳을 직접 고르게 하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낡은 경로에서 벗어나 다른 상상력과 실험으로 혁신을 도모할 때 창출되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다. 일본은 확실한 '보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를 촉진하고 있다. 나눔과 기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다.
대형산불로 초토화된 마을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자발적 기부에 동참하는 이들을 보라. 정부의 역할은 시민들의 선한 마음이 망가진 지역을 회복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도록 돕는 것이다. 좋은 제도는 시민들의 행동을 조직화해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사회적 통합에 기여한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