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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어린이집 만3세 교실 한켠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신나게 자랑한다.

"이건 고양이에요", "이건 콧수염이에요.", "분홍색 머리 영양사 선생님이에요."

그렇게 첫 번째 푸드브릿지 활동, <오이와 함께 놀아요!>가 막을 올렸다.

만 3세 오이 푸드브릿지(오이와 함께 놀아요!) 매곡리에서 직접 재배한 오이로 그림을 꾸며 본다. 원형 도안에 밑그림을 그린 뒤, 오이를 이용해 화사하게 장식한다.
만 3세 오이 푸드브릿지(오이와 함께 놀아요!)매곡리에서 직접 재배한 오이로 그림을 꾸며 본다. 원형 도안에 밑그림을 그린 뒤, 오이를 이용해 화사하게 장식한다. ⓒ 문혜진

푸드브릿지 왜 필요할까

푸드브릿지(Food Bridge)는 아이들이 낯설어하거나 싫어하는 식재료를 단계적으로 친숙해지도록 돕는 방법이다. 노출량을 늘려가며 음식으로 제공하기도 하며 오감 놀이, 미술, 요리를 매개로 식재료와 가까워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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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인사하고 함께 노는 것처럼, 아이와 채소 사이에도 연결고리를 천천히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억지로 먹게 하기보다, 놀이와 요리로 자연스럽게 접근해 즐거운 기억을 쌓게 하는 것이다.

알록 달록, 모양도 제각각인 채소를 만지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가장 첫 단계 '친해지기-감각 놀이'가 필요하다. 텃밭에서 채소를 함께 키우고, 시장에서 장을 보며, 채소와 관련된 동화책이나 오감 놀이, 미술 놀이를 통해 감각적으로 접근하면 거부감이 서서히 줄어든다.

내가 10년 동안 영양사로 일했던 생태어린이집, 유치원 아이들은 매곡리 자연학교 텃밭에서 사계절 채소 농사를 짓는다. 덕분에 그날의 푸드브릿지 놀이는 알록 달록 채소에도 거리낌 없이, 더욱 풍성했다. 처음엔 주저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흥미롭게 빠져들었고, 그 손에서 펼쳐진 창의적인 세계는 한 편의 동화 같았다.

놀이가 만든 변화, "이젠 채소를 만질 수 있어요!"

한겨울, 만5세 형님들은 거침이 없다. 텃밭에서 갓 뽑아온 배추, 피망, 고추, 깻잎, 미나리, 당근, 오이 채소들은 살아있는 물감이 되어 하얀색 도화지를 천연색으로 가득 채운다. '배추 요리조리! 고추잠자리와 텃밭 친구들' 작품은 사진으로 남겨 어린이집의 앱을 통해 부모님과 공유했다.

만5세 배추 푸드브릿지(배추 요리조리!)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로 배추나비·고추잠자리·꿀벌·꽃 등 자연을 표현했다.
만5세 배추 푸드브릿지(배추 요리조리!)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로 배추나비·고추잠자리·꿀벌·꽃 등 자연을 표현했다. ⓒ 문혜진

아이들은 배추와 텃밭 채소를 가지고 고추잠자리, 꿀벌, 유니콘을 꾸몄고, 자기 얼굴과 똑닮은 배추 인형까지 만들었다. 작품은 유치원 마당에 전시돼, 하원 길의 부모님과 지나가는 주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어느새 아이들은 채소와도 친해졌고, 자신감도 함께 자라있었다.

만5세 배추인형 아이들은 자기 얼굴을 똑 닮은 배추 인형을 만들어 유치원 마당에 전시했고, 하원 길의 부모님과 지나가는 주민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인형마다 표정이 살아 숨쉬는 듯했다. 며칠 뒤, 그 배추는 깨끗이 세척·소독되어 김장 김치가 되었다.
만5세 배추인형아이들은 자기 얼굴을 똑 닮은 배추 인형을 만들어 유치원 마당에 전시했고, 하원 길의 부모님과 지나가는 주민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인형마다 표정이 살아 숨쉬는 듯했다. 며칠 뒤, 그 배추는 깨끗이 세척·소독되어 김장 김치가 되었다. ⓒ 문혜진

채소를 만지기 싫어하는 몇몇 아이들도 놀이를 통해 채소에 익숙해졌다. "오이는 차가워요!", "배추 흰 부분이 통통해요!" 느낌을 말로 표현하며 스스로 채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먹어야 한다'는 부담감 대신 놀이를 매개로 '호기심'과 '애착'이 싹튼 것이다. 이렇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5가지 감각으로 흡수된 경험은 아이들의 뇌를 자극하고 채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자연스레 심어 준다.

실제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어린이집 만 5세를 대상으로 10차시 동안 채소 중심 오감 놀이·푸드아트·요리 활동을 한 결과, 유아들의 채소 기호도가 증가했으며 (김순란 외, 2023), 컬러푸드 원예 활동에 참여한 만 4세 유아들도 채소 편식이 줄고 정서 지능이 향상됐다(손효정 외, 2015).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는 단순 반복 노출만으로도 싫어하던 대상에 점차 호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바른식습관연구소가 제시한 푸드브릿지 4단계 ① 재료의 탐색(감각 놀이) ② 애착 형성(영양 교육, 미술) ③ 소극적 맛의 노출 ④ 적극적 맛의 노출은 단계적으로 과정을 반복하며 낯선 음식에 점점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친구가 천천히 마음속으로 다가오듯, 식재료와 아이 사이의 벽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아이들의 내면엔 채소를 향한 즐거운 호기심과 애착이 자리 잡는다.

집에서도 실천하는 푸드브릿지, " 채소는 조기 교육이다"

푸드브릿지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배추 밑동, 파프리카, 브로콜리 같은 채소 자투리로 도장 놀이를 해보자. 장미 모양, 꽃 패턴, 점 무늬 등 다양한 형태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장 놀이는 자연스럽게 채소와 친해지고, 창의성도 함께 자라난다.

어릴 때 식습관 교육은 일생의 건강을 좌우한다. 그래서 채소도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 푸드브릿지는 식습관 교육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즐거운 '놀이'이자 '먹는 공부'로 이어주는 다리이다.

아이와의 소통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읽듯 채소를 주제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의 씨앗을 틔워 보자. 채소는 아이의 상상력과 정서를 표현하는 훌륭한 재료가 되어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에 녹아든다. 채소·과일 끝말잇기, 색깔별 채소 분류 말하기와 같은 말 놀이로 확장해도 좋다. 이때 긍정적인 언어로 반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텃밭(화분도 충분하다)을 가꾸면 아이들의 '생각 나무'가 무럭무럭 자란다. 로컬 푸드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자연에 대한 감응력과 지구를 생각하는 태도까지 자라나게 한다. 어릴 때 쌓인 채소와의 친밀감은 편식을 예방하는 든든한 기초가 되고, 가정에서도 지구 건강을 향한 식생활 실천으로 이어진다.

오늘, 냉장고 속 채소 꾸러미를 꺼내어 놀아보자. 그 순간, 아이는 건강을 먹고 지구를 위한 미래 수업을 듣는다. 그때부터 푸드브릿지 여행이 시작된다.

#푸드브릿지#움사랑생태어린이집#메이플유치원#편식예방#바른식습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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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진 (jmhj81) 내방

10년 간 생태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영양사로 근무, 현재 영양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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