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묻고 있는 그대로 답을 전하겠습니다. 매주 주요 경제 현안이나 과제를 다룹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대한 자동차산업 대응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종철
"아마 자동차 쪽에서만 3만 명 정도가 사라질 수 있어요. 완성차와 부품쪽 포함해서…지역경제 등에 미치는 것까지 포함하면 10만 명까지 보는 거죠."
그는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거침없었다. 머릿속에는 온갖 자동차 관련 통계와 숫자들이 녹아 있는 듯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이다. 그는 30년 넘게 국내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조사와 연구를 맡아온 몇 안 되는 전문가다. 게다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과 기술이 전동화 시대로 급변하면서 들여다 볼 주제와 연구도 크게 늘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기술변화에 따른 산업 고도화, 구조개편을 이야기해 왔다. 이 연구위원은 기자에게 "심각하다"고 했다.
그와 마주앉았다.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전시장에서였다. 이곳에선 지난 4일부터 서울모빌리티쇼가 열리고 있었다. 옛 서울모터쇼의 새 이름이다. 자동차뿐 아니라 자율주행 등 새로운 이동수단에 맞춘 각종 신기술 등이 공개됐다. 이 연구위원은 이날 한국산업연합포럼에서 주최한 자동차 통상 세미나 참석에 앞서 기자와 만났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따른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해법을 듣고 싶었다.
작년 대미 수출액 기준 1~3위 품목이 자동차와 반도체, 자동차 부품이다. 그만큼 국내 자동차 산업 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상호관세 25% 부과를 중국을 빼고 90일 동안 유예한다고 했다. 국내 산업계에선 '시간을 벌었다'고 하지만, 정작 자동차와 철강, 알루미늄 등에 부과된 품목별 관세 25%는 유지된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관세 폭탄은 그대로인 셈이다. 이 연구위원은 "자동차에는 25% 관세가 그대로 부과됐다"면서 "작년 말 기준으로 대미 수출 물량 143만대에서 (관세인상으로) 60만대까지 줄어들 수 있고, 일자리 10만개 감소 등까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2.3 내란과 대통령 탄핵에 따른 정치적 공백에 대해 "아쉬울 수밖에 없다"면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협상을 주문했다. 이 연구위원은 "두 달 후에 들어설 차기 정부에서 대미 협상 뿐 아니라 근본적인 산업 구조 개편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기아차 등 수출물량 83만대 줄어... 10만 명 일자리 잃을 수도"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트럼프발 관세전쟁으로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기본관세 이외 상호관세 부과로 혼란스럽기도 하고, 우리의 경우 25% 관세가 자동차쪽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연합간 (무역)마찰이 있었다. 유럽에서 미국산 닭고기 수입을 막았는데, 미국에서 유럽산 픽업 트럭에 관세 25%를 부과했다. 당시 독일 자동차회사들은 픽업을 한 대도 수출 못했다. 25% 관세를 매기면 사실상 차를 팔 수 없다. 왜냐하면 완성차 업체들 영업이익률이 10% 미만인데, 25% 세금을 매기면 어떻게 버티나."
- 작년에 보니까 현대기아차를 포함해서 대미 수출물량이 꽤 많던데.
"작년 말 기준으로 143만대를 수출했다. 25% 관세를 그대로 받게 되면 물량이 60만대(예상치)까지 줄어들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일단 관세인상에 맞춰 두 달치 물량을 이미 수출해 놓은 상태다. 이번에 두 달 동안 가격동결을 한 것도 재고물량으로 버티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기아차 입장에선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소 30만대 이상 수출이 줄어들 것 같다."
- 한국지엠(GM)도 생산물량의 86%(42만대)가 미국 수출인데, 영향을 받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며) 42만대를 수출하고 있는데, GM 본사 입장에선 한국공장이 알짜배기다. 한국 수출 차량이 소형차 중심인데, GM 글로벌 사업장에서 유일하다. 미국내에서도 가성비가 높아 인기도 좋다. 그런데 25% 관세를 매기면, 당연히 수출하기 어렵다. 만약 한국지엠 수출이 중단되면 국내 뿐 아니라 미국도 손해가 될 것이다."
- 한국지엠은 과거 군산공장 패쇄 등으로 트라우마가 있다. 이번 트럼프 관세전쟁으로 'GM 한국 철수설'이 나돌기도 했는데.
"과연 미국 GM에서 한국 사업장을 쉽게 버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GM본사 쪽에서 우리정부든 관련기관에 먼저 협상을 해올 수도 있다고 본다. 25% 관세에 대한 고통분담 차원에서... 물론 개인적인 예상일 뿐이다. 만약 (관세 부과로) 인천 GM 부평공장이 폐쇄된다면, 미국 본사 뿐 아니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 현대기아차 뿐 아니라 지엠물량까지 수출이 막히면, 고용도 심각해질 것 같다.
"당장 현대차의 경우 아산공장이 타격 있을 것이다. 전기차와 중형차 생산라인이 중심인데 대부분 수출물량이다. 그쪽 인력만 4000명이 넘는다. 한국지엠까지 수출이 막히면 인천 부평과 창원공장까지 인력이 6000명 정도 된다. 그리고 관련 부품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고.."
"정부 자동차 대응방안은 단기처방...폭탄돌리기일 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0일 오전 조현동 주미대사, 방미중인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등과 화상회의를 하며, 트럼프 미대통령과의 전화통화 이후 후속조치 지시, 대미 협의동향 점검을 했다. ⓒ 국무총리실 제공
- 부품업체들은 얼마나 영향받을까.
"미국에서 연구한 내용이 있는데, 보통 완성차 업체 대비 부품 업체 고용을 2.6배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부품업체들의 고용도 1만 6000명 정도 영향권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번 관세인상에 따른 완성차와 부품업계 고용이 3만 명 정도 줄어들 수 있다. 최악으로 가정할 경우..."
그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3만 명에 가까운 자동차 제조 노동자의 일자리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관련 업계나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있지 않은가"라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연구위원의 말을 옮겨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죠. 이것이 자동차 공장 문을 닫거나, 인력을 줄이게 되면 당장 주변 음식점부터 영향을 받게 되죠. 과거 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생각해보면, 지역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죠. 최악으로 3만 명 정도로 (고용이) 줄어들면, 추가로 소상공인 등으로 8만에서 10만명까지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 등(에 미치는 영향)은 빠져 있죠."
정부도 대책을 내놨다. 9일 트럼프의 상호관세 발효에 맞춘 자동차 긴급 대응방안이었다. 이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을 위해 자문을 해왔다고 했다.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눴다.
- 정부도 긴급 대응방안이라고 내놨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책 금융으로 2조 원을 추가로 지원하고, 1조 원은 현대기아차에서 금융권하고 함께 해서 총 3조 원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다. 당장 관세 인상으로 경영에 타격을 입게 되는 기업 입장에선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 정부에선 향후 수출시장 다변화를 비롯해 민간과 공동 대응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목소리를 높이며) 이미 오래된 이야기들이다. 과거 전략을 답습하고 있다. 미국 이외 중남미 국가들로 다변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중국 업체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쉽지 않다. 민간과 공동대응도 마찬가지다. 이미 기업들 스스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제대로 된 산업정책도 보이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앞으로 3년... 기술고도화와 산업 구조개편 없으면 추락"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대한 자동차산업 대응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김종철
-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
"국내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정책이 2003년 이후 없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정부 차원의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 대신 정부와 지자체 중심의 정책 금융으로 경쟁력 없는 중소업체들만 난립하고 있다. 1만여개가 넘는 부품업체들이 보조금으로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종의 폭탄돌리기다."
- 그 정도로 심각한가.
"그렇게 돼 버렸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 조사를 해보면 부품업체가 1만 5600개 정도 된다. 우리보다 시장규모가 2.5배 이상 훨씬 큰 미국도 1만 8000개 정도다. 말이 안 된다. 통계청 조사를 보니까 10인 이상 고용하는 부품업체가 4500개다. 한국은행 기업경영 분석을 통해 조사를 해보니까 4500개 중에 1485개 업체 정도만 쓸만한 곳이다. 이들 업체들이 전체 부품시장 매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전체 부품업체 가운데 1만여개가 사실상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끊어지면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과거와 같은 방식의 자금지원이나 전략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나 무역환경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향후 3년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친환경, 전동화 중심의 산업 전환기에 맞춰 제대로 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두 달 후에 들어설 차기 정부에 대한 당부도 이어졌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내년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는 계속되겠죠. 지금 당장 정부 협상력이 아쉽긴 하지만, 미국을 상대로 양보와 협조를 얻어 내야죠. 앞으로 3년이 정말 중요해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기라고 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국내 자동차 산업도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습니다. 완성차와 부품업체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의 선택과 집중,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력 양성 등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죠. 시간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