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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는 시민들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있는 공간입니다. 시민들은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서울혁신파크부지를 기업에 매각하는 절차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2월 20일 기업매각 공고 이후, 오는 4월 21일 기업과의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민의 땅 시유지, 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 시민들이 누려왔던 공간을 기업에 팔아넘기며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훼손하는지 몇 편에 걸쳐 전합니다.
서울혁신파크.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름만 듣고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어렵게 느껴졌다. 일단 발음이 쉽지 않다. 이 공간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혁.신.파.크. 이렇게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하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혁신이라는 어려운 한자에 파크라는 영어를 갖다 붙이다니.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몰라도 참 작명 센스가 없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공간은 예전에 국립보건원이었다. 나는 이곳이 보건원이었던 시절에 은평구로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서울시가 이 공간을 민간 기업에 팔아 넘기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21년 차 은평구 주민으로서 혁신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건원 바로 뒤편 가파른 언덕 위 낡은 다가구 주택에 사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곳 담벼락을 따라 걸어다녔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보건원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왠지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공간이 혁신파크로 바뀌고 나서야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때 이 안이 이렇게나 넓었구나. 진작 시민들에게 개방이 되었더라면 시민들의 좋은 쉼터가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서울혁신파크라는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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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라는 이름에서 파크는 공원이다. 오래 전 이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 하면서도 감히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내가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이 곳이 공원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많은 시민들이 반려동물과 산책을 즐기고,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배우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이었다.

달리기를 즐기는 나는 이곳에서 동네 사람들과 달리기 모임을 열었다. 정문 앞 피아노 숲에서 출발해서 미래청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피아노 숲으로 돌아오면 거의 500미터였고, 두 바퀴를 돌면 약 1킬로미터였다. 은평구에는 트랙을 돌 수 있는 체육시설이 없는데, 이곳은 트랙은 아니지만, 한 바퀴에 500미터라는 일정한 거리를 돌 수 있는 만큼 달리기 모임을 운영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은평민들레당에서 주관한 "공공성을 지켜라! 혁신달리기!" 은평민들레당에서 혁신파크를 지키기 위해 달리기 모임을 주최했다.
은평민들레당에서 주관한 "공공성을 지켜라! 혁신달리기!"은평민들레당에서 혁신파크를 지키기 위해 달리기 모임을 주최했다. ⓒ 은평민들레당

공원은 누구나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건 페스티벌과 도시농부 장터, 쓸어담장 등 많은 축제와 행사들이 이곳에서 열렸다. 혁신파크라는 공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많은 시민들이 이 공간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이런 다양한 행사들 덕분이었다.

외부 공간만 시민들에게 열려있었던 건 아니다. 혁신파크 안에 있던 다양한 형태의 공유 공간들은 대부분 시민들에게 열려있었다. 미래청과 상상청 등 각 동의 1층과 로비 공간들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피아노숲에서 놀다가 실내로 들어와 간단하게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공용 부엌도 있었고, 심지어 샤워실도 있었다. 또 공간의 성격에 따라 소액의 대관료를 납부하면 빌릴 수 있는 강의실과 강당도 있었다. 은평의 시민사회단체, 작은 모임을 꾸리는 많은 시민들에게 서울혁신파크는 크고 작은 모임과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었다. 거기에 2016년부터 해마다 은평상상콘퍼런스를 열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서울혁신파크라는 혁신

자, 이제 혁신파크의 이름 중 혁신(革新)이란 글자 이야기를 할 차례다. 서울시는 혁신파크라는 공간을 사회혁신의 실험공간이라고 했었다. 혁신이란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면, 낡은 것을 바꾸거나 아주 새롭게 함이라는 뜻이 나온다. 아마도 낡은 이 사회를 새롭게 바꾼다는 뜻인 듯하고, 긴 시간 고착되어온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바로 잡고 해결하기 위한 실험을 하는 공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실험 단위들(벤처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민간단체 등)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입주해 서로 협업하고 연대하며 다른 삶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운영하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혁신파크가 운영되었던 기간에 그런 실험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뤄졌는지,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그런 시도들이 다양하게, 신나게, 알차게 추진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 과정들이 지나는 동안 지켜봐 왔으니까.

(좌)구비전화공방 앞 텃밭 조성 (우)파머컬져 홍보물 (좌)구.비전화공방 건물 앞에 텃밭을 조성하고 있다. 100여종이 넘는 식물이 살고 있다. (우)은평기후농부들은 서울펵신파크에서 파머컬쳐 텃밭을 만들고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좌)구비전화공방 앞 텃밭 조성 (우)파머컬져 홍보물(좌)구.비전화공방 건물 앞에 텃밭을 조성하고 있다. 100여종이 넘는 식물이 살고 있다. (우)은평기후농부들은 서울펵신파크에서 파머컬쳐 텃밭을 만들고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 서울혁신파크

평소 어디에서도 해볼 수 없는 시도들이 이곳에서 추진되었었다. 전기와 화학물질 없이 살아보자는 비전화공방이 만들어졌고, 나중에 공방이 문을 닫은 후에는 '쓸'이란 이름의 대안적인 카페로 운영되었다. 넓은 운동장 한 켠에서는 텃밭을 조성해 다양한 작물들을 길러 도시농부가 되어보기도 했고, 여기저기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햇빛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농부가 되어보기도 했다.

한 평 책방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이어가는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며, 양천리 갤러리는 시민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관람하는 작은 미술관으로서 시민들이 단순히 문화를 소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그리고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 게다가 녹번동의 옛 지명인 양천리를 이름에 붙여서 남쪽으로는 부산까지 천리, 북으로는 의주까지 천리여서 조선시대 한반도의 정 가운데였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업사이클과 리사이클의 시도들을 펼칠 수 있었던 재생동, 적정기술의 실험들을 펼칠 수 있었던 제작동과 목공동, 청년들이 그들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다양한 실험들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청년청 등이 있었다.

미래청 옥상에서 대안을 만들고 있는 태양과바람4호기, 태양광 발전소

혁신파크 가운데 가장 큰 건물인 미래청 옥상에는 제법 큰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가 있다.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에서 만든 태양과바람4호기 발전소이다. 2016년 12월에 완공했고, 2017년 1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발전 용량 88.2kW 로 연간 약 11만3500kWh 의 전기를 생산하며, 약 28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햇빛 만으로 생산한다. 이 발전소는 30년생 소나무 약 350그루만큼 온실가스를 흡수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은 2013년 창립한 협동조합으로 은평 시민들이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와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운동을 접하면서 에너지 문제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깨닫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결사체이다. 수도권 도심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그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송전탑을 세웠다. 그 지역들의 주민과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은 모른채 서울에서 전기를 아낌없이 쓴다.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은 이러한 문제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도시의 에너지 자립을 꿈꾸며 만들어졌다.

2025년 4월 현재 약 440명의 조합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총 9기의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혁신파크 미래청에 있는 태양과바람4호기는 학생, 시민 대상 발전소 탐방과 견학 등의 재생에너지 현장 교육을 할 때 가장 자주 이용하는 발전소이다. 혁신파크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와 그 안에서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가치 그리고 사회적으로 에너지 문제를 풀어가야 할 우리의 숙제를 펼치고 상상하고 이야기 나누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이 발전소를 다녀가며 수도권 도시와 지역간의 착취 문제를, 기후위기의 불평등 문제를 접하고 그 대안으로 로컬 재생에너지 확대의 꿈을 키웠다.

(좌)상상청에서 미래청을 바라본 미래청 (우)미래청 옥상에 설치된 태양과바람4호기 발전소 2016년 12월에 완공했고, 2017년 1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발전 용량 88.2kW 로 연간 약 113,500kWh 의 전기를 생산하며, 약 28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햇빛만으로 생산한다.
(좌)상상청에서 미래청을 바라본 미래청 (우)미래청 옥상에 설치된 태양과바람4호기 발전소2016년 12월에 완공했고, 2017년 1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발전 용량 88.2kW 로 연간 약 113,500kWh 의 전기를 생산하며, 약 28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햇빛만으로 생산한다. ⓒ 태양과바람협동조합

그런데 2023년 서울시는 이 조합에 해당 발전소 철거를 통보했다. 계약기간인 10년까지 3년이 더 남았고, 이 조합과 서울시가 맺은 실시협약에 따르면 첫 10년 계약 이후 1차례 더 10년을 계약하여 총 20년이 발전 사업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는 계약서의 맨 뒷장 특수조항에 있는 "건물의 리모델링 등 구조변경이 결정되거나, 서울시 정책으로 공익사업의 시행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사용허가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를 근거로 발전소를 철거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해당 발전소는 이 조합의 440여명 조합원들의 재산이며, 에너지 생산은 거의 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 척박한 서울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로서 큰 의미를 지닌 곳이다. 조합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고, 서울시는 혁신파크 부지 개발 진행 과정에서 일단은 미래청을 철거 유보 건물로 두고 일정 시간 동안 계약을 연장하는 것으로 통보했다.

태양과바람4호기는 지금도 미래청 옥상에서 열심히 햇빛을 받으며, 하루 하루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언제 서울시가 입장을 바꿔 미래청까지 철거 하겠노라고 발전소를 치우라고 할지 모를 일이다. 이제 곧 혁신파크가 민간 기업에 팔릴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시민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만든 발전소를 쉽게 치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두어서도 안된다. 시민들이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밀양 765kV 송전탑 투쟁,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의 의지의 표현이자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온 공간이 사라지게 둘 수 없다. 시민들의 의지가 담긴 공간을 그저 돈으로 바라보는 서울시가 기업에 매각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소중한 뜻이 담긴 공간을 시민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지켜나가야 한다.

혁신파크는 공원으로서도, 공공의 공간으로서도 지금까지 긴 시간 시민들이 이용해 온 소중한 공간이다. 임기가 겨우 4년에 지나지 않는 시장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민간 매각 계획을 철회하고, 시민들과 함께 이 공간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 한다. 기업에 의해 허락된 만큼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시민들의 상상력과 뜻이 담긴 공간 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보다 더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지금까지보다 더 시민들에게 유익한 공간으로.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 김원국(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
23년차 활동가. 21년차 은평구 주민. 공동체의 힘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서로를 돌보는 삶을 꿈꾼다.


#서울혁신파크#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기후위기#에너지전환#공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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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 기업매각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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