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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령 선포 이후 탄핵 인용까지 일상의 민주주의가 흔들렸던 경험을 시민 릴레이 기고로 싣습니다.

2024년 12월 3일.

새벽같이 일어났다. 출국하는 딸을 공항행 리무진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주었다. 11월 일본에서 결혼식을 올린 딸이 배우자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언제 이런 날이 또 오겠냐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주일을 한 이부자리에서 잤다.

"엄마 자?"
"아니."

마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 엄마 말이라서 안 들었던 달콤살벌 사춘기, 별처럼 빛나고 싶었던 스무 살의 욕망과 좌절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로 지난 시간을 추억했다.

사람 난 자리는 표가 크게 나는 거라 했던가. 딸이 일본으로 돌아간 후,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 해 봐도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짧은 해라 10시가 넘어서면 한 밤 중이었다. 딸 대신 TV나 보며 잠을 청할까 싶어 스위치를 켰다.

비상계엄.

이게 무슨 말인가.

내란의 밤. 불면의 밤이 딸아이의 소곤거림과 새댁의 향긋함을 걷어차고 나의 침실로 들이닥쳤다. 정신은 번쩍 들었는데 마음은 혼미하고 두방망이질 쳤다. 단호하고 결의에 찬 일국의 대통령 말이 새빨간 거짓말처럼 들렸다. 정확한 정보를 내 손으로 직접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가 소식에 능통한 친구가 국회로 가고 있다면서 라이브 방송 채널 하나를 공유해 주었다. 국회의장 우원식 TV였다. 속보라며 비슷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공중파 TV와는 다르게 국회 본회의장 분위기가 그대로 방송되고 있었다. 그날 밤 이렇게 유튜브의 세계가 나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공중파 TV와 우원식 유튜브 방송을 동시에 켜 놓고 뜬 눈으로 지새우다 4시쯤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나오지 않아 일단 눈을 붙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모두 술렁술렁 간 밤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보다 유튜브에 능한 젊은 사람들이 몇 개의 채널을 더 소개해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포털사이트 제공 뉴스에서 유튜브의 라이브 세계로 이사를 감행했다. 라이브로 방송했던 걸 10분, 20분, 15초 등 한 번 눈도장 찍은 영상이 친절하게 다른 영상도 데리고 왔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나는 빽빽하게 도열하고 있는 숏츠 영상들을 검색하며 마음을 달랬다.

12월 7일과 14일, 2주 연속 국회의사당 앞 여의도 갔다. 현실의 광장 속으로 들어가니 영상에서 얻던 위안하고 다른 알찬 힘을 느꼈다. K-POP, 응원봉, 눈발 속의 키세스, 전봉준 트랙터를 보며 시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낌과 동시에 무작정 낙관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도 속속 드러났다.

어느새 3월이 되었다. 눈도 내리고 얼음도 얼고 바람도 세차니 봄은 아니었다. 구속된 사람이 뜬금없이 나오고, 때맞춰 감자를 심었건만 바람 불어 멀칭이 다 날아가고, 목련은 뽀얗게 피다가 눈을 맞고 갈색으로 변했다.

위안을 주던 유튜브의 저명 앵커들도 하나 둘 힘들어했다. 점잖기가 둘째 가라면 서러울 클래식 FM의 한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선곡 모다세데스의 '에레스 뚜', 김민기의 '봉우리'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뭐 사는 게 이래. 진짜 떠나고 싶다."

투덜거렸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지인이 하는 말,

"딸네 집에 가려구요?"

딸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엄마 오지 마. 서울로 가. 나라 지켜."

나는 봄을 맞이하는 데 결코 후위가 아닌가 보다. 겨울 끝, 봄의 시작을 목련에게만 맡길 수 없었다. 3월의 후반은 시간 나는 대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광장과 유튜브의 정보와 나의 삶이 분열되지 않도록 행동하고 공부하고 일하며 불안을 힘으로 치환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4월 4일 오전은 긴장에서 빗겨 서 있고 싶었다. 무작정 일에 매달렸다. 딸에게 카톡 전화가 왔다. 11시 23분.

"나 실시간으로 중계방송 들었어. 너무 기뻐."

목련도 갈변한 꽃봉오리 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활짝 피었다.

이제야 험한 것으로 채워졌던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오려나 보다.

 김현주 산안마을 
김현주 산안마을  ⓒ 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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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김현주#파면이후#일상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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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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