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 엄마자서전에 싣기 위해 다시 파일로 스캔한, 구순 엄마의 20대 젊은 시절 모습. 오른쪽은 아버지. ⓒ 본인
올해 엄마는 구순이 된다. 지난번 모임에서 가족들은 엄마를 위해 소박한 구순 잔치를 하기로 하고, 규모와 장소 및 참여 인원을 의논했었다.
아무리 백세시대라지만, 사람이 90세까지 사는 것은 귀한 일이 아닌가. 뭔가 뜻깊고 의미 있는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 기사를 보았다.
제주에 온 젊은 부부가 원하는 부수만큼 자서전을 만들어 주는 '메모리얼' 앱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기사였다. 마침 나도 제주에 살고 있기에, '이거다' 싶었다. (관련 기사:
결혼식 없이 제주로 간 신혼부부, 죽음 기록하는 사연 https://omn.kr/2c1xh )
'엄마에게 자서전을 만들어 드리자!'
전화 상담을 하며 소량 인쇄가 가능한지, 금액이 얼마나 드는지 물어보았다. 우리는 어머니 한 부, 우리 오 남매, 합하여 6부만 필요했다. 예상 금액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2월 초, 맏이이자 딸인 내가 주도하여 자서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겪어보니 책을 만드는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1. 우선 책을 만드는 메모리얼의 운영자 김지혜가 100가지 질문지를 보내주었다.
2. 나는 그 질문지를 큰 글씨로 만들고, 질문 아래에 여백을 두어 프린트해서 엄마에게 보내드렸다.
3. 엄마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사진 앨범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백 장 이상 골라줄 것과 질문지에 간단하게 답을 써 두시라고.
4. 사진을 받아 스캔 업체에 보내어, 장당 200원씩에 스캔해서 3월 초 파일을 받았다.
5. 육지에 계신 엄마를 방문하여 질문지에 적어두신 답을 바탕으로 녹음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6. 3월 10일 녹음 파일을 지혜씨에게 보냈다. 지혜씨는 AI를 통해 녹음 파일을 텍스트로 만들었고, 대화체 문장을 글로 고치며 편집했다.
7. 열흘 동안 나는 지혜씨와 이메일을 스무 통 넘게 주고받으며, 자서전 내용을 다듬고 다시 한번 사실 관계 확인을 했고, 중간중간 맞춤법을 바로잡았다. 지혜씨는 이 내용에 맞게 사진을 배치하며 pdf로 만들어 나갔다.
8. 마침내 둘이 모든 내용에 OK!를 했다. 금액을 내고, 인쇄에 들어갔다.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 중간에 앱 운영자 김지혜씨와 앱을 만든 남편, 그리고 우리 부부는 제주 서귀포시 우리 동네에서 만났다. 이미 만들어진 다른 책들을 보며, 우리 책의 표지와 종이의 품질 등을 결정했다. 30대 나이인 김지혜씨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어서 첫눈에 신뢰감이 갔다.
'여여하게 맞는 세 번째 서른'... 1달도 안 돼 나온 자서전

▲자서전 겉표지메모리얼에서 만든 자서전 겉 표지 ⓒ 메모리얼
그렇게 시간이 걸려 마침내 3월 25일, 엄마의 구순 자서전이 탄생했다. 비용은 사진 스캔비 합쳐 20만 원가량 들었다. 그것도 우리는 책의 종이 질을 좀 높여 인쇄했기에 값이 오른 것이다. 전반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책의 표지 디자인을 외주 맡겨 더 고급지게 할까도 고려했지만, 가족의 의견이 소박하게 가자는 쪽이어서 메모리얼이 제시한 옵션 몇 개 중에서 선택했다.
작업 기간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인쇄는 7부 했고, 6부를 받았다. 한 부는 서비스라서 5부 가격만 지불했다. 남은 한 부는 메모리얼 측에서 보관한다고 했다.
세 번째 서른 살, 90세. 90세를 왜 세 번째 서른으로 칭하는지 실감하였다.
보통 30세에 여자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어른이 된다. 60세에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앞으로 남은 인생을 계획하게 된다. 90세에 이르러 자신의 전 생애를 돌아보며, 아쉬움과 만족과 함께 비움을 경험한다. 각 세 번, 큰 전환기를 맞는 것이다.
엄마가 직접 쓴 자서전 구절을 읽으며, 비로소 그 나이가 되어야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 경건해졌다.
'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여여(如如)하여 동요하지 않는 것.'
불경의 이 말은 최근에 가장 위로를 받는 말이에요. 제 지나온 인생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여한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책 구절 중 일부)
'여여하다'는 불가(佛家)의 말이다. 좋고 싫음이 없이 중도(中道)를 취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자성(自性)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좋았다가, 슬펐다가 일희일비 하는 나로서는 아직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다. 엄마는 구순에 이르러 마침내 자유로워졌다. 한편 자서전 안에서는 엄마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자주 보여, 나도 몇 번이나 울컥했다. 책을 편집하면서 지혜씨가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든, 아버님 이야기로 돌아오시네요."
아버지는 2002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와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간병했는데, 마지막에는 통증이 심했다. 집에서 보낸 마지막 날 밤은 내가 함께 보냈다. 밤새 아파하시던 아버지가 새벽에 침대에 묶여서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시는 걸 보면서, '사람이 저렇게 집을 떠나는구나' 싶어 큰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돌아가신 지 23년이 지나도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여전히 가슴에 남는다.
엄마가 한 두 시간 분량의 이야기에는 나도 몰랐던 여러 에피소드가 들어 있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엄마가 아직 몸이 아프지 않고, 정신이 맑기에 가능했다. 그것도 축복이었다.
"고맙다."
책을 받고, 꼼짝하지 않은 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으신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역시 우리 큰딸'을 덧붙이며, 당신만의 자서전에 몹시 뿌듯해하셨다.
3월 말 우리는 가족만 모인 구순 파티와 저자 사인회를 했다. 엄마는 사인 좀 해본 사람처럼 멋진 펜을 들고, 자녀들에게 각각 책의 첫 장에 사인과 함께 우리 이름을 써주었다. 엄마에게 그런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지금이 제일 편하다"는 엄마... 그를 보며 내 걸어갈 길을 찾았다

▲90세엄마의 최근 모습입니다 ⓒ 메모리얼
요즘 엄마는 불교에 의지해 사신다. 일과를 불교 방송을 보며 하루에 예불 세 번을 드리는 데 맞추고 있다. 그리고 불경을 읽으며 기록한다.
지난 12년 동안 지장경을 한 번 읽을 때마다 노트에 숫자를 써가며 천 번을 읽었다. 하나씩 써 내려간 그 숫자가 어머니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언젠가 아는 큰 스님이 말씀하셨다.
"스님도 하기 어려운 일을, (어머니는) 집에서도 하시네요."
그렇게 불경을 읽어 나가며 엄마는 잃은 모든 것 - 젊음, 남편, 재산-의 상실을 극복하고, 평안에 이르렀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서 삶의 지향점을 보고, 세 번의 서른 중 내게 남은 한 바퀴를 꾸려나갈 길을 찾았다.
현재 엄마는 지병도 없고 정신이 맑다. 아파트에 혼자 사신다. 자녀들이 모신다고 해도 당신이 싫어하신다. 아마 가실 때도 고생 안 하고 천사처럼 가실 것이다. 더 이상 "오래 사세요." "건강하세요."하는 인사는 필요 없을 것이다. 엄마는 이미 구순이라는 충만한 나이에 이르렀으니까.
내가 자서전을 만들 결심을 하고, 책을 받기까지 가장 의미가 있었던 시간은 녹음기를 들고 가서 엄마와 나누었던 두 시간의 '찐한' 대화였다. 과거의 이야기, 엄마의 집안 이야기, 자녀들을 낳고 키우면서 느낀 소회들을 엄마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면서, 딸인 나 또한 엄마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외손녀인 내 딸은 책을 pdf로 읽었다.
"할머니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이런 예전 가족사는 처음 들어봐요."
엄마도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씀 하신다. 며칠 전엔 "느네(너네) 아버지 산소에 가고 싶구나" 하셔서, 동생들이 어머니를 부축한 채로 다녀왔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먼 걸음을 걷지 못했는데, 덕분에 오래간만에 가족 나들이를 했다.
부모님의 구순을 맞아 잔치를 계획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이번엔 규모를 가족 식사 정도로 줄이고, 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묻고 들어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자서전까진 아니더라도, 한 번쯤 이야기를 경청해 들어 드리는 것만으로도 부모님들껜 뜻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