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규협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사무국장심규협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사무국장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중행동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8일 전국대표자회의 의결을 거쳐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 이정민
"오늘도 카뱅 심규협했다."
"카뱅 심규협 하자."
윤석열 파면 촉구를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이 말은 인사처럼 오갔다.
계좌번호와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얼굴을 모르는 이가 있다. 심규협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아래 비상행동) 사무국장이다. 그는 최근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카뱅 심규협 선생'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마치 호(號)처럼 보이지만 심 사무국장 이름 앞에 붙은 '카뱅'은 '카카오뱅크'의 줄임말이다. 비상행동은 집회를 여는 데 필요한 무대와 스크린 설치, 행진 차량 대여 등의 비용을 재정을 담당하는 심 사무국장의 카카오뱅크 계좌로 모금했다.
2024년 12월 3일 내란 사태 이후 4개월간 67차례 윤석열 퇴진 집회를 열어온 비상행동이 재정난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다시금 "카뱅 심규협 하자"고 뜻을 모았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후원금 모금 권유가 유쾌하게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5일 많은 이들의 요청 아래 심규협 비상행동 사무국장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18차 범시민대행진' 무대에 올랐다. ⓒ 비상행동 유튜브 계정
그간 집회 무대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실무를 담당하던 그이지만 윤석열 파면이 된 다음날인 5일에는 비상행동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심 사무국장은 이날 무대에서 비상행동의 재정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수줍은 얼굴로 마이크를 잡고 광장을 함께 만들어온 이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중행동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심 사무국장은 "감사하게도 5일 무대에서 발언하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신 덕분에 비상행동의 재정이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심규협 사무국장이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분노한 시민들2024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탄핵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본희의장을 떠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모습을 중계방송으로 보며 투표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 이정민
"이미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광장에서 보내면서 많은 분들이 자신의 모든 걸 내놓고 함께해주셨다. 여유가 있는 분들도 있겠으나 하루하루 묵묵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르바이트비나 연극 티켓 값, 커피 한 잔, 밥 한 끼를 아끼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내가면서 함께 해주셨다. 그저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감사해서 그런 것(후원 요청)까지 말씀드릴 수 없었다."
심 사무국장이 '후원해달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다. 그는 인터뷰 내내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전부터 무대에 서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내가 무슨 대표도 아니고 나서는 편도 아니라 당일(5일) 오전까지 고사했다. 그런데 (윤석열이) 파면됐고, 감사한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었다. 시민분들에게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발언하게 됐다."
그는 광장에서 이름이 자주 불리는 데 대해서도 부끄러운 듯한 얼굴로 "과분하고 황송하다"고 했다. 심 사무국장은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대에서 발언을 급하게 하느라 빼먹은 분들이 있다. 수어통역사분들, 사진 작가님들, 의료 지원단분들, 민변 인권침해감시단분들에게도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스스로 앞세우지 않던 그가 인터뷰 요청을 수락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는 윤석열이 파면되던 4일에도 비상행동 집회에 있었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체포·구속이 됐다가 풀려나고, 파면이 되기까지 신기하게 123일(윤석열은 지난 2024년 12월 3일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이 걸렸다. 이태원참사 유가족 분들을 비롯해서 윤석열 정권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났다. 많은 분들이 함께 싸웠기 때문에 (파면이) 가능했다. 그러나 윤석열'만' 파면된 것일 뿐이니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비상행동 사무국장이기 이전에 전국민중행동 사무국장이기도 하고,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이기도 하다. 공동상황실장으로서도 지난 4개월은 특별했다.
"2024년 12월 14일 여의도에 200만 명이 모인 힘으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요지부동일 것 같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부라도 돌아온 건 200만 명의 힘 덕분이라고 본다. 그날 이정민 위원장(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님이 수고했다고 안아주시는데 나도 모르게 북받쳐 올랐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고서 정부에 의해 영정 없는 분향소가 차려졌는데, 이후 유가족 분들이 본인 자녀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분향소를 차린 날이 12월 14일이다. 그러니까 2022년 12월 14일로부터 딱 2년 뒤인 2024년 12월 14일 탄핵이 가결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희생자 분들도 함께하는 것 같았다."
제일 기억에 남는 12월 7일

▲국민의힘 탄핵안 표결 불참, 자동폐기....분노하는 시민들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 105명으로 인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정족수(200명) 미달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아 자동 폐기된 뒤 2024년 12월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던 시민들이 중계방송을 보며 말을 잇지 못하거나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 이정민
123일 간의 광장에서 심 사무국장이 제일 기억에 남는 날은 2024년 12월 7일이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승리의 순간이 아닌 왜 이날을 골랐을까?
"처음으로 100만 명이 여의도에 모인 날이었는데 표결은 안 되고 다들 엄청난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으나 그 뒤로는 시민 분들이 다 채워주셨다. 집회 문화도 대중가요를 차용해 대중적으로 만들자고 하던 중인데, 그날은 흥겨운 음악을 트는 것도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박민주 (비상행동 행진팀장)님이 사회자로 올라가 위플래쉬(Whiplash)라는 곡을 틀고 구호를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이라고 외쳤다. 분노도 즐겁게 담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심 사무국장의 눈에는 분노한 시민들이 든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그즈음이 기말고사 기간이었나 보다. 시민 분들이 휴대폰으로 '기말고사 공부해야 하는데 윤석열 너 때문에 추위에 나와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글자를 띄우시더라. (웃음) 각자가 나름대로 집회에 나온 이유나 요구를 각양각색으로 표출했고, 이것을 저희는 중계 카메라에 담았다. 참가자 분들과 집회 주최 측이 함께 만들어간 다이내믹한 현장이었다. 그때 '아 이 싸움은 우리가 절대 질 수가 없겠다' 싶었다. 그 다음 주 표결도 겁나지 않았다. 이분들과 함께 가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심 사무국장은 2024년 12월 3일 밤에도 여의도 국회 앞에 있었다. "평소처럼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상 계엄이 선포됐다는 속보를 접했다. 이전부터 자유통일당 집회에서 그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전국민중행동에 대해 "빨갱이"라고 공공연히 연급돼 왔기에 갑작스런 비상계엄 선포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돌아 나와 여의도로 갔다. 그리고 그날 맨몸으로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계엄군이 헬기로도 내려오고 버스로도 왔는데 시민들은 맨몸으로 총칼을 든 군인들을 막아섰다. 계엄이라고 하면 1980년 광주가 먼저 떠오르는데, 40년이 지난 오늘도 시민들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저렇게 맞서는구나 싶었다.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사회대개혁은 '거부권 거부부터'

▲심규협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사무국장이 9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중행동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8일 전국대표자회의 의결을 거쳐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 이정민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끝없이 밀려드는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일의 과중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 사무국장의 인터뷰를 진행한 9일 오전, 비상행동은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전날에는 전국대표자회의를 열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라는 단체 이름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바꾸면서 투쟁 의제를 재정립했다. 그에게 당면한 과제를 물었다.
"우선 거부된 법안들이 빠르게 통과돼야 한다. 결국 현실 정치에서는 법안이 시민들의 삶에 적용되고, 현실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노조법 2·3조, 양곡관리법, 방송법, 전세사기 특별법부터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내란 특검법이 (통과)돼야 사회대개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의힘 재집권도 막아야 한다. 국민의힘이 다시 정권을 잡는 것은 다시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정권이 들어선다는 의미기 때문에, 이를 사회대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민의가 민의대로 반영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만들어져야 한다. 내란 과정에서 많은 시민 분들이 함께 해주시고 계시지만 (앞으로도)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 같다. 우리 역사로 보자면 친일 청산이 되지 않았고 내란 세력이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 두 번의 대통령 파면을 이끌었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가 많다. 내란이 청산되지 않고는 보다 나은 내일이 올 수 없기에 그 길에 시민 분들께서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