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각에서 정부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획재정부 정정훈 세제실장(왼쪽 세 번째)이 지난 3월 11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완수 상속세개편팀장, 김건영 조세개혁추진단장, 정 실장, 김병철 재산소비세정책관 ⓒ 연합뉴스
지난주 종언을 고한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남겼을까. 헌재가 엄숙히 지적한 민주주의의 훼손과 헌정질서 교란의 상처는 어둡고 깊다. 간신히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는 있었지만, 치유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내상도 있다. 대표적으로 감세다. 법인세부터 보유세, 유류세와 소득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감세가 이뤄졌다. 결과는 2년간 87조 원에 이르는 유례 없는 세수결손과 연 100조 원을 넘나드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약속한 낙수효과는 온데간데 없는 1% 대 저성장, 최악의 법인실적과 저점을 찍은 설비투자다. 도널드 트럼프가 만들어낸 글로벌 불확실성을 헤쳐나가야 하는 새 정부는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지 않는다면 당장 2026년부터 재량으로 쓸 수 있는 재원 자체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감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3월 12일 기획재정부는 유산취득세 개편이라는 이름을 빌린 상속세 감면안을
발표했다. 비록 윤석열은 떠났지만 감세안은 대선 전인 5월에
정부안으로 제출될 예정이다. 7월 세법개정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별도 법안으로 낸다는 데서 정부의 의지가 읽힌다. 어떤 방식으로든 추후 심의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유산취득세라 쓰고 '폭풍 감세'라고 읽는다
유산취득세 방식이 현대적 과세체계에 좀 더 부합한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유산 전체에 통으로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상속인들이 취득한 유산에 과세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다. 현행 상속세제에서 100억 원 유산을 두 명이 상속받을 때보다 50억 원 유산을 한 명이 상속받을 때 세금을 20%가량 덜 내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OECD 국가 다수가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이런 연유다. 그런 측면에서 유산취득세로의 개편 자체는 명분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형평을 따지는 정책도 전체적인 조세체계가 형평에 맞도록 노력하는 행위를 수반해야 설득력이 있다. 상속인 수에 따른 형평은 그렇게 꼼꼼히 따지면서 10억 원의 유산과 10억 원의 근로소득과 10억 원의 주식양도소득 사이의 형평은 왜 무시하는가. 유산취득세가 OECD 대세임을 강조하면서도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소득세율이나 보유세율은 왜 못 본 척하는가. 자본소득 과세는 외면하고 낮은 소득세율을 고집하고 기껏 만들어놓은 자본이익세(금투세)는 폐지하는 정권에서 극소수 상속인들 사이의 형평을 맞춘다며 던진 유산취득세를 마냥 정의로운 과세로 치켜세우기도 어렵다. 선택적 형평, 선택적 글로벌 스탠다드다.
만약 상속인 사이의 형평을 맞춘다는 명분이 중요하다고 하면, 각 상속인이 현행 유산세 부담에 가까워지도록 과표와 세율을 상향하는 방식을 채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재부의 선택은 왕창 깎아서 맞추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과표와 세율이 그대로면 세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과표 4억 원(공제를 뺀 것이므로 실제 상속재산은 10~20억 원)을 4명이 물려받는다고 할 때 현행 상속세제에서 총 과세액은 7000만 원 정도다. 그런데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개편하면 4명의 총 과세액은 4000만 원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1인당 3~5억원의 재산을 물려받는 이들에 대한 세금 2000만 원을 반으로 깎아줘서, 홀로 그 정도의 재산을 상속받는 이들만큼 내도록 하는 것을 형평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이다.
숨겨진 선물, 공제 확대의 위력

▲지난 3월 12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유산취득세'는 지금처럼 물려주는 총재산을 기준으로 세액을 산출하지 않고, 개별 상속인들이 각각 물려받은 재산에 과세하는 방식이다. ⓒ 연합뉴스
선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산취득세라는 서랍 바닥 아래 공제 확대라는 추가 혜택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전체 유산에서 5억 원만 일괄공제했지만, 기재부 안에서는 상속받는 직계존비속마다 5억 원, 나머지 상속인마다 2억 원이 기본 공제된다. 기존 5억 원 공제가 그대로 상속인 각자에게 적용되면서, 상속인 수가 많아질수록 파격적 감세 효과를 얻게 된다.
올해 재산으로 45억 원을 신고한 최상목 경제부총리 사례로 살펴보자. 성인인 그의 두 자녀가 부모의 재산을 전부 상속한다면, 현행 세법에서 15억 원의 상속세가 발생하고 각 15억 원씩의 재산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기재부 안에서는 상속인 각 22.5억 원에서 5억 원의 공제가 적용된 후 과세되므로 상속세는 각 5.2억 원이 발생하는 데 그친다. 즉 두 자녀는 현행 세제에서보다 2.3억원이 많은 17.3억 원을 가져갈 수 있으며, 총 과세액은 4.6억 원이 줄어든다(-31%).
이중 유산취득세 제도 자체의 특성(과표 축소로 인한 저세율 적용)에 따른 감면액은 2.6억 원, 전체 감면액의 57% 정도다. 나머지 2억 원, 43% 감면액은 공제 확대 효과에서 비롯한다. 상속인 수가 많아지면 이 효과는 함께 증폭한다. 만약 최상목의 자녀가 네 명이라면 상속세 감면액은 4.6억 원에서 10.1억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5.8억 원은 유산취득세 제도 특성에 따른 감면이고, 4.3억 원은 공제 확대에 따른 감면이다.
백번 양보해 유산취득세가 형평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기에 슬쩍 끼어들어 온 기본공제 확대는 이런 취지와 상관 없는 감세 선물에 불과하다. 특히 유산취득세 특성과 결합하면서 상속인 숫자에 따라 그 파괴력을 몇 배로 늘리는 효과가 있다. 근시일에 상속인이 될 가능성이 높은 1960~1970년대의 출생률이 4~5에 이르고 생존율이 80%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속세 납부 대상인 상위 7%의 자산가들과 그들의 재산을 상속받을 연 5~10만 명에게는 만면에 희색이 돌 만한 정책이라고 봐야 한다.
국회의원-고위관료 맞춤형 감세
유산취득세 도입의 혜택은 독특한 면이 있다. 초고소득일수록 수혜가 커지는 보통의 감세와 달리 고위 관료나 국회의원 수준의 재산 규모에서 가장 큰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다. 유산취득세 감세효과의 진정한 파워는 상속인 수가 많아질 때 상속재산이 나눠지면서 과표가 축소하는 데서 발휘되는데, 21대 국회에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현 세율 구조하에서 가장 이 효과가 극대화되는 구간이 과표 기준으로 30~50억 원 정도에서다. 공제를 감안한 실제 상속재산으로는 40~60억 원 수준이다.
조 단위의 천문학적 유산을 물려주는 재벌들에게는 혜택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속인에 따라 상속재단이 나눠 과세된다 하더라도 각각의 상속인이 상속재산 대부분에서 최고 세율을 적용받을 정도로 유산액이 많으면 현행 유산세와 세율 차이는 없기 때문이다. 1조 원에 통으로 과세하든, 4명으로 나눠서 2500억 원에 각각 과세하든 대부분의 구간에 최고세율이 적용되므로 세율상의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이다. 감면액의 절대적 크기는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증가하기는 하지만, 세율상 이익은 상속인 숫자가 엄청나게 많지 않은 한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유산취득세 개편과 별개로 공제 확대의 효과도 상속재산이 많을수록 크게 증가하지만 재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최고세율 자체의 인하나 과표구간 조정, 주식 평가의 할증 폐지, 가업상속공제의 확대 같은 것들이다. 즉 '초부자'가 아닌 20~100억 원 규모의 자산을 가진 '꽤 부자'들이 유산취득세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자 집단에 집중되어 있다.
상속세 완화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기재부 고위 관료들의
재산을 보자. 장관 최상목 45억 원, 1차관 김범석 35억 원, 2차관 김윤상 42억 원, 그리고 세제실장 정정훈의 재산은 46억 원이었다. 같은 조사에서 2047명의 고위공무원들의
재산 평균은 20.6억 원이었고 20억 원 이상의 재산 소유자는 전체의 32%였다.
세법을 심의하고 통과시키는 국회의원들은 어떨까? 22대 국회의원들의
평균 재산은 1인당 32.7억 원으로 나타났다. 상속세 과세 대상인 10억 원 이상의 재산 보유자가 전체의 72%인 215명이었고, 유산취득세의 혜택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20~50억 재산 보유자가 이들 중 전체의 29%인 88명에 달했다. 윤석열 정부의 유산취득세 안은 정파와 상관없이 이들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준다.
대한민국 정치엘리트들의 동질한 구성과 이해관계는 세법의 편향적 변화의 구조적 배경이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그들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라는 목소리에 더욱 쉽게 노출되고, 그들의 이해는 그런 목소리에 더욱 쉽게 공감하게 만든다. 글로벌 스탠다드니 형평성의 제고니 낡은 세법을 손질한다느니 하는 온갖 명분을 능수능란하게 만들어 내지만, 결국은 그들이 보고 있는 시야를 벗어날 수는 없고 그들이 딛고 서 있는 땅을 허물지도 못한다.
저들이 능란하게 만들어 낸 명분에 이해와 하등 상관없는 무산자나 중산층마저도 그들의 이해에 수긍하고 동의하며, 그것이 과반을 넘는 상속세 완화 여론으로 나타난다. 민주정체에서 여론은 곧 힘이며 여론주도층의 핵심이익을 수호하는 방패막이가 된다.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작동하는 방식이다.
적당한 부자감세냐, 더 많은 부자감세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스텝이 꼬였다. 서울에 있는 집 한 채 정도, 이재명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18억 원까지는 과세 없이 상속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수도권 상류층을 타깃으로 상속공제 확대를 선제적으로 추진했는데, 이들에게 훨씬 큰 혜택을 부여하는 개편안을 윤석열 정부가 던졌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정부안을 비난하는 민주당의 언어도 궁색하다. 민주당의 상속세 감면을 이끌고 있는 임광현 의원은 유산취득세를 "부자감세"라며 "국민의힘과 기재부 안으로 한다면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고
비난했다. 바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임 의원이 낸
상속공제 확대안은 부자감세가 아닌가? 살펴봤다시피 상속세 공제확대는 이론의 여지 없이 상속자산이 클수록 그 이익이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기재부 차관을 지냈던 안도걸 의원도 "최근의 세수여건을 감안할 때 제도개편의 적기가 아니"라며 큰 폭의 세수감소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연 10조 원 이상의 세수감소를 불러올 소득세 물가연동안을 비롯해 금투세 폐지와 상속세 축소, 100조 규모의 반도체기업 지원을 말하는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비판은 아닌 듯하다. 5년간 2.5조 원의 세수가 줄어드는 안 의원의 상속세
감면안에도 세수대책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고도성장기에 자산을 축적한 상류층들이 고스란히 그 재산을 넘겨주어 자식에게 자신의 신분까지도 물려주고 싶은 욕망이 대한민국의 온갖 세법을 뒤흔든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상속세 개편 움직임은 대한민국 역사의 분기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회의 평등이나 경제의 혁신성, 다수 시민의 보편적 지배 같은 이상과는 작별을 고하고 실질적 세습귀족이 지배하는 봉건적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을 노리는 것이다.
현재의 거대양당과 행정부 관료집단은 이미 그 귀족들에게 접수되고 있다. 자신을 중산층의 대변자라고 애써 최면을 거는 집단과 대놓고 부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훈구와 사림 이상의 차이는 아니다. 12.3 불법계엄이 공화국을 전복하는 '경성적 내란'이라고 한다면, 윤석열의 상속세 와해 시도는 양당의 감세 동맹 위에서 공화국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연성적 계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