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8일 오후 시청 3층 접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파면 선고'가 이뤄진 지난 4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시민과 함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선고 순간을 지켜보던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의 모습이 화제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피청구인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읽자,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 손을 들고 함성을 내질렀지만, 강 시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있다, 뒤늦게 일어나 눈물을 닦으며 기쁨의 순간을 함께 했다.
<오마이뉴스>가 이 장면을 촬영해 <오마이TV> 유튜브 계정에 올린 '윤석열 파면을 대하는 강기정 시장의 시간차 눈물'이라는 제목의 쇼츠는 5일만인 9일 현재 조회 수 333만 회를 넘어서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구, 부산 등 경상도에서도 '과거의 광주가 현재의 대한민국 전체를 살렸어요', '광주가 또 한 번 대한민국을 살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800개 가까운 응원 댓글이 쏟아졌다.
12.3 내란 사태 이후 122일, 탄핵소추 이후 111일간의 긴 기다림 끝에 선고된 윤석열 파면.
강 시장 스스로 밝힌 '주경야정(晝經夜政)', 낮에는 시민을 보호하고 지역의 살림살이를 지켜내야 하는 단체장으로서, 밤에는 내란 세력을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치인으로서 보낸 투쟁의 시간에 대한 소회, 조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광주의 시급한 과제 등에 관한 이야기를 지난 8일 강 시장을 직접 만나 나눴다. 아래는 강 시장과의 일문일답.
"헌재 선고에 여러 감정 뒤섞여…추운 겨울 이겨낸 시민들께 특별히 감사"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8일 오후 시청 3층 접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선고 순간 한참을 앉아있다 일어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시민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것 같다. 그때 심정은 어땠나.
"파면 선고를 보며 기쁘지만은 않았다. '8대 0', 이렇게 간명한 일인데 우리를 가슴 졸이게 한 헌재가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마음이 충돌했다. 정신이 없고 머리가 멍했다. 그리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시민들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공허, 허탈, 감사, 기쁨의 감정이 뒤섞여 눈물도 나고 웃음도 나고 손뼉도 치게 됐다."
-대구, 부산 등 경상도에서도 응원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홀로 외로웠을 80년 광주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광주시민에게 우리는 영원히 빚진 자들입니다. 고맙습니다', '경상도 사람으로 정말 죄송합니다. 광주의 희생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등의 댓글을 봤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는 한강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광주의 힘에 대한 공감, 그에 관한 관심과 반응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80년 5월 광주정신을 유산으로 이어받은 국민이 12.3 계엄부터 탄핵까지 빛의 혁명을 이루면서 광주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한 감정을 더 가지게 된 것 같다. 시장인 저도 12.3 내란 사태 이후 광주가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물론 다른 지역, 재외 동포까지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계엄 직후 죽기 살기로 싸워…
광주정신 짓밟는 세력에 헌법의 자유 보장해선 안 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8일 오후 시청 3층 접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12.3 계엄 순간을 기억하나.
"집에서 혼자 광주FC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후반전을 보고 있는데 이상갑 문화경제부시장이 전화로 "계엄이 내려졌다"고 하더라. 채널을 돌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있는 뉴스를 보게 됐다. 곧바로 시청으로 이동해 긴급회의를 열고 간부들에게 '오늘이 제 광주시장으로서의 마지막 밤이 될 것 같다. 이번 계엄은 부당하기에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광주지역 정치·시민사회 지도자, 원로분들이 시청으로 모일 수 있도록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직원들에게 광주시민은 시가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경찰과 군인들에게는 총부리를 시민에게 겨누지 말고 시민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는 동안 국회가 계엄을 해제시켰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풀 수 없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계엄 해제 이후에도 대한민국과 광주의 위기 상황은 지속됐다. 오월 항쟁의 중심지인 금남로에서 세이브코리아가 탄핵 반대 집회를 연 것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충돌 우려에도 강경 대응을 결심한 이유는.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주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5·18민주광장은 80년 5월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에게 희생당한 곳이자, 지난 45년 동안 광주정신을 지키고 승화시키기 위한 토론의 장이었다. 민주광장은 공간의 개념이 아닌 정신의 개념이다. 그 광주정신을 짓밟으려는 세력에게 광장을 절대 내줄 수 없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회 당일 전국에서 몰려드는 세이브코리아 측 버스를 보며 '광주가 모욕당하고 있다', '극우세력에 의해 또다시 고립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너무나 많은 광주시민이 나와 광장을 지켜내고 있었다. 광주정신으로 내력 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과 힘을 얻었다."
-세이브코리아 광주 집회 이후 '광주에게 미안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 감정이 탄핵의 순간까지 이어지며 강 시장의 눈물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한 것 같다.
"'광주에게 미안하다. 고립된 광주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한다. 오히려 광주는 그분들에게, 그리고 광주 밖에 있는 정말 많은 분께 감사하고 있다. 1980년 5월 고립된 광주는 무서웠지만 이후 45년 동안 5·18 광주를 찾고 응원해 준 많은 분 때문에 광주정신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다. 이번 세이브코리아 집회 때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있는 분들이 광주가 또다시 고립되지 않게 응원해 주셨다. 우리 광주도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
이번 쇼츠 영상 댓글에서도 많은 분이 '아이들과 광주 한번 내려가려고요', '저는 경상도에 사는데 앞으로 전라도에 관광 많이 갈 겁니다. 동서 화합이 목표입니다'라고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광주의 문을 더 활짝 열고 광주를 찾는 분들을 맞이하려고 한다. 5·18 전야제와 기념식이 열리는 5월 17일과 18일에는 광주시민뿐 아니라 광주를 찾는 모든 분이 시내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하루 광주에 머무는 분들에게 수백 동의 텐트를 제공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을 많이 고민하고 있다."
"내란·탄핵을 넘어 5·18정신 헌법 수록…민주시민 양성 기회로 삼아야"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8일 오후 시청 3층 접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광주광역시
- 5·18민주광장 옆 전일빌딩 245에 내건 현수막도 회자됐다. 유튜브 계정에 직접 올리기도 했던데.
"전일빌딩 245는 1980년 5월을 고스란히 지켜본 역사의 산증인이자, 총탄 자국 245개가 여전히 남아 있는 아픔의 현장이다. 또한 광주를 방문한 분들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광주의 가장 상징적인 중심지, 건물에 광주정신을 오롯이 담은 펼침막을 걸어 광주를 찾는 분들에게 광주시민의 마음과 다짐을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께 '힘을 얻고 위로받았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광주에 12.3 내란, 탄핵소추, 파면은 어떤 의미로 기록될 것 같은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이 얼마나 빠른지를 증명했다. 또한 광주의 참모습을 다시 한번 재정립하게 된 기회가 된 것 같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광주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와 교육 체계를 만들어 일상에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조기대선이 치러진다. 광주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광주의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내란 사태 이후 중단되거나 미뤄진 광주의 미래 먹거리 사업을 잘 추진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빛그린·미래 차 국가산단, 인공지능전환(AX) 실증밸리 사업(AI 2단계)과 예타 면제 이후 후속 작업이 멈춘 달빛철도 사업 등 15대 과제·40개 사업 81조원 규모의 '광주시 대선공약'을 준비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정치는 사라졌고 경제는 추락하고 있으며 많은 경제기관들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대로 하향 조정하고 있다. 대선을 통해 유능한 민주정부를 수립해 민주주의는 회복하고 닫혀가는 대한민국 성장판을 다시 열어야 한다.
▲[현장] "윤석열 파면"을 대하는 강기정 시장의 '시간차' 눈물
배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