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윤석열퇴진하면사라질동아리 회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기 이전까지 국립창원대학교와 경남대학교 앞에서 계속 1인시위를 벌여왔다.
윤석열퇴진하면사라질동아리 회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기 이전까지 국립창원대학교와 경남대학교 앞에서 계속 1인시위를 벌여왔다. ⓒ 윤퇴사동

"'윤석열 퇴진하면 사라질 동아리(윤퇴사동)'는 목적 달성을 했으니 사라진다. 1인시위를 마무리 한다는 인사도 필요 없이 사라진다. '진짜 끝을 냈구나'라는 의미다."

국립창원대 앞에서 넉 달 동안 '윤석열 퇴진'을 위한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던 김지현(26) 윤퇴사동 회장의 말이다. 김 회장은 국립창원대 앞에서, 윤퇴사동 회원인 김정우 학생은 경남대(사립) 앞에서 1인시위를 벌여왔다.

윤퇴사동은 지난해 10월에 경남대‧창원대 학생들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윤석열 퇴진 경남 대학생행동'에서 활동하던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다. 네 글자로 줄여 부르는 유행에 따라 '윤퇴사동'이라고 불렀는데 동아리 이름으로 굳어졌다. 3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었던 윤퇴사동은 대학 앞에서 평일 거의 매일 아침에 1인시위를 벌였고,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응원봉 합창단'을 구성해 창원광장에서 열리는 '윤석열 퇴진 집회' 때 무대에 올라 공연도 했다.

이들은 집회 때 마다 '윤퇴사동'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광장에 섰다. 12.3 불법비상계엄이 벌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졌던 동아리가 내란사태 이후 '신나게' 광장에 나와 '윤석열 파면'을 외쳤다.

김지현 회장은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경남비상행동이 지난 4일 저녁 창원광장에서 열렸던 '윤석열 파면 창원시민 승리대회' 무대에 올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학내에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을 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지금은 우리가 탄핵 정국을 열어낸 것 같아 매우 뿌듯하다. 꾸준함과 간절함은 승리한다는 걸, 그리고 우리가 힘을 모으면 그 어느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헌법재판소) 선고를 통해 확신했다. 아직 남아있는 내란세력까지 모두 척결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저희도 다른 이름으로 끝까지 함께 투쟁하겠다."

"청년세대가 정치에 관심 없다? 사실 그렇지 않다"

 4월 4일 저녁 창원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창원시민 승리대회’에서 김지현 윤퇴사동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4월 4일 저녁 창원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파면 창원시민 승리대회’에서 김지현 윤퇴사동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윤성효

다음은 김 회장과 7일에 나눈 대화다.

- 동아리 이름이 재미 있었다.

"지난해 10월에 만들었다. 당시 응급실 뺑뺑이라든지 역사왜곡, 전쟁위기 등 여러 문제들이 벌어지는 때였다. '윤석열을 가만히 두면 나라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하자는 생각에 학생들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장난식으로 이름을 냈는데, 괜찮다는 반응이 있어 확정했다. 광장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거나 무대에 올라 발언하면서 동아리 이름을 소개하면 다들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졌던 것 같기도 하다."

- 1인시위는 어떻게 하게 된 것인지?

"제가 창원대 앞에서 하고, 김정호 학생이 경남대 앞에서 했다. 평일 거의 매일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씩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반응했다. 지난 3월 어느 날, 그날은 매우 추운 날씨였다. 학생들이 '추우시죠'라며 핫팩을 뜯어서 주고 가기도 했다. 다른 회원이 1인시위 하고 있을 때, 한 주민이 지나가면서 '고생많다'며 밥을 사먹으라며 1만 원을 주어서 그 학생이 '괜찮다'고 했는데 끝까지 손에 쥐어주고 가셨다고 한다."

- 1인시위 할 때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딱 한 사람 있었다. 손팻말을 들고 서 있으니까 학교 주변에 사는 할아버지 같았는데 지나가면서 '북한에서 왔느냐'라는 말을 하고 가더라. 그 말을 듣고 무시해 버렸다. 1인시위를 마칠 무렵이라, 그 할아버지보다 제가 앞질러서 걸어가버렸다."

 윤석열 퇴진하면 사라질 동아리 활동.
윤석열 퇴진하면 사라질 동아리 활동. ⓒ 윤성효

- 응원봉 합창단 활동도 했는데.

"30여 명이 모여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불렀다. <광야에서>와 <촛불 하나>를 연습해서 무대에 섰다. 연습은 합창 지도선생과 반주자를 섭외해 모셨고,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 모여서 연습했다."

- 응원봉을 들었던 이유는.

"아이돌 응원봉은 청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물품 가운데 하나다. 청년세대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응원봉 청년세대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 대자보 부착은 어떻게 진행됐던 건가.

"특히 윤석열이 구속취소 석방되고 나서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입구 게시판에 '윤석열 석방 말이 됨?'이라고 쓴 대자보를 붙였다. 그런데 그다음 날 보니 '윤석열 석방'만 남겨져 있고 다른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훼손했다고 본다. 다음 날 원상복구를 하지 않으면 재물손괴로 경찰서에 고소하겠다고 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그래도 복구가 되지 않았다."

- 실제로 냈던 고소장은 그 뒤에 어떻게 됐나.

"훼손됐던 대자보가 원상복구 되지 않아 경고했던 대로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창원중부경찰서에 이첩돼 담당형사가 배당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른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윤석열퇴진하면사라질동아리는 국립창원대 입구 대자보 훼손 관련해 고소장을 창원서부경찰서에 제출했다.
윤석열퇴진하면사라질동아리는 국립창원대 입구 대자보 훼손 관련해 고소장을 창원서부경찰서에 제출했다. ⓒ 윤퇴사동

- 윤퇴사동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회원들이 가입해 있는 단체 대화방은 그대로 있다.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이전에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독후감을 나누는 모임을 하기도 했다. 아직 해체를 위한 모임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를 하고 있다."

- 하고 싶은 말은?

"대통령 파면 정국을 거치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 국민이 힘을 모으면 무슨 일이든 헤쳐 나갈 수 있구나 하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파면이 빨리 될 것으로 생각했다가 늦어지니까 안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거리행진을 하고 또 단식농성에다 108배 등 다양한 투쟁을 전개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떤 난관도 해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다시는 내란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내란동조 세력을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윤퇴사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윤성효 (cjnews) 내방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