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 내란 사태가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마무리되기까지 4개월간 이어진 거리시위에서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깃발을 만들어 나온 학생들도 있었고, 단순 참여에 머무르지 않고 탄핵 찬성 집회 과정에서 직접 단상에 올라 소신 발언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광화문에 울려퍼진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하라"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지난 3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12차)'에 참가해 응원봉을 흔들며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하라" 구호를 외치는 모습(자료사진). ⓒ 남소연
요즘이야 중고등학생들의 시위 참여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나, 1980년대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고등학생들의 정치적 참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 4.19혁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이후 지속적인 움직임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고, 지금의 흐름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따져보면 1987년 6월항쟁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989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는 6월항쟁을 통해 직선제로 치러졌으나 군사독재의 연장이라는 허무한 결과로 끝난 것에 대해 사회적 실망감이 컸다.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명동성당에서 항의시위와 농성을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고등학생들도 적지 않게 모여 있었다.
대선이 끝나고 3일 뒤인 12월 19일, 명동성당에서는 2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모여 서울지역고등학생연합회(서고련)을 결성한다.
'진리를 탐구하고 정의를 추구할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은 독재의 교육탄압과 왜곡된 역사 의식 속에 길들여지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서고련 출범선언문은 '학우여 죽으면 살리라!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 각성하라! 민주교육 쟁취하자! 군부독재 각오하라!'는 구호로 끝난다.
이들은 1주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시위와 농성을 벌였는데, 4.19 이후 잠잠하던 고등학생운동이 다시금 기지개를 켠 순간이었다.
고민을 행동으로 옮긴 고등학생들, 그 배경
지난 3월말 동녁출판사에서 나온 <고등학생운동사>는 19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졌던 고등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있다. 기록이다. 줄여서 '고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과거 관련된 논문이나 언론기사 등이 나온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시대의 기억을 당사자들이 직접 회상하면서 1980년대~1990년대 고등학생운동사를 하나로 모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

▲동녘출판사에서 펴낸 <고등학생 운동사> ⓒ 동녘출판사
조한진희, 김소연, 전성원, 김대현, 정경화, 김성윤, 이형신, 안수찬, 권정기, 양민주, 김영희 등 11인의 고등학생운동 출신 저자들이 각자의 활동이나 당시의 기억을 꺼내 놓으면서 치열했던 시간을 복기했다. 2000년대 청소년 운동 세대인 전누리는 선배 고등학생운동 열사들을 기억하는 글을 통해 먼저 떠나간 이들을 기리고 있다.
1987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시작된 고등학생운동은 1988년 이후 불붙기 시작했다. 서고련 그룹이라 불린 이들 외에 공개적인 단체였던 '흥사단 고등학생 아카데미(흥고아)', '한국고등학생기독교운동총연맹(KSCM)'의 역할이 컸다. 오랜 시간 꾸준히 학생들을 조직하고 교육하는 작업을 이어갔던 두 단체는 고등학생운동의 밑바탕이었다.
1988년 4월 17일 연세대에서 열린 4.19 고등학생 대동제나 7월 17일 홍익대에서 열린 자살학우추모제 및 교육정상화를 위한 고등학생 결의대회는 초기 고등학생운동의 역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대표적인 행사였다. 군사독재가 이어지던 시절 고등학생들이 힘을 모아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특별했기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일찍 뜬 계기는 시대적 환경이 작용했다. 군사독재 시절 쉬쉬하던 80년 5월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게 되거나, 사회과학, 역사, 철학 서적 등에 흥미를 느껴 읽었던 책들, 학교에서의 강제적인 입시교육과 강압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에 대한 반감, 그리고 학내 비리 문제 등은 이들의 의식을 깨우치게 만든 계기가 됐다.
6월항쟁 이후 이들은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옮겼다. 학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수수방관하지 않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간선제였던 학생회가 직선제로 바뀌는 데 물꼬를 튼 것이었다.
학생들의 자치와 자율활동 요구가 거세지면서 학교들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중고등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는 학생회 직선제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기였다.
점조직과 같은 학내 비밀 조직을 만들고, 다른 학교와 은밀하게 연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선제 학생회나 학내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고등학생운동가들의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주동 학생들을 무리하게 징계하려는 학교에 맞서 거세게 반발한 학생들에 의해 당일 징계가 취소된 것은 감동적이고, 두 개 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를 성사시키는 모습이나 학교에서 예의주시 당하는 고운 활동가들에 대한 예상치 못했던 다른 학생들의 호응과 연대는 뭉클함을 전달한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도 고등학생운동에 적잖은 추동 역할을 했다. 해직교사들이 양산되고 이들을 지키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이 뜨겁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징계를 당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고등학생운동을 전교조 지키기로 국한하는 것에 대해서는 축소이자 왜곡이라며 어느 정도의 선을 긋는다.
고등학생 운동사 정리의 마중물

▲1988년 7월 홍대에서 개최됐던 자살학우추모제 및 교육정상화를 위한 고등학생결의대회 ⓒ 성하훈
<고등학생운동사>는 10대 시절부터 진취적이었던 당시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일찍부터 세상의 부단함과 맞서왔던 고등학생들이 학내외에서 벌인 여러 활동은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이들이 논의하고 계획해 실행했던 일들은 전개와 결말이 긴박하면서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당시 학생들의 열의가 전달돼 온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고, 1980년~1990년대 고등학생이었던 저자들 대부분은 현재 40,50대 중년이다. 이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특징은 고등학생 시절의 그 치열함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중에는 전교조 결성 초기 학생으로 온갖 탄압을 이겨내며 교사들과 함께 연대했다가 지금은 전교조 조합원으로 교육운동에 나서고 있는 분도 있는데. 그는 학생인권법안에 소극적인 전교조의 모습을 질타한다.
11명 저자의 현재 모습은 노동운동의 현장이나, 저널리스트, 계간지 편집장, 자영업 정치권 등 다양하다. 공통으로 세상의 변화를 위해 꾸준히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고,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했던 만큼 그 정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특별하다.
지난 시간이 심한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고, 고등학생운동으로 징계를 받아 복학과 휴학을 거듭한 끝에 5년간 다 경우도 있으나, 주체적인 자세로 학교의 일방적인 지시를 거부하고 학생들과 연대를 통해 성과를 이뤄낸 순간은 이들에게 보람 있고 자랑스러움으로 기억되는 시간이다.
1987년 이후 38년이 지나 여럿의 기억을 묶은 <고등학생운동사>는 1980년~1990년대에 대한 재조명과 평가작업이 활발히 이뤄진 시점에서 고등학생운동에 대한 역사화 작업의 중요한 발걸음이라는 의의가 있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는 수기 형식을 띠고 있기에 통사로서의 역사를 정리한 형태는 아니다. 다만 고등학생운동사 정리의 마중물로서 더 많은 이들이 이 기억에 연루되어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책을 기획한 고등학생운동 마지막 세대 조한진희 작가는 "고등학생 운동사가 이후 더 발굴되고 기록돼, 지금과 다른 학교와 교육체계를 고심하는 이들에게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진행형 질문으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