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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프랑스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 한국학 주임교수도 했다는 장클로드 드크레센조의 신간 <경이로운 한국인>은 외국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민낯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는 단순한 외부인의 관찰자로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한국인스럽게' 한국인을 응시한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경이로움'을 한 조각씩 모아, 정성스럽게 이 책 위에 펼쳐놓는다.

드크레센조는 한국 문학을 번역하고 한국인과 가정을 이루며 살아온, 말하자면 '생활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날카롭다.

"왜 여자들은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릴까?", "왜 글씨를 쓸 때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댈까?"

처음엔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이 질문들이 책장을 넘기며 점점 무게를 더한다. 익숙한 풍경 속에 숨겨진 심리와 문화, 정체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경이로운 한국인 책표지
경이로운 한국인 책표지 ⓒ 마음의 숲

책은 총 7부로 나뉘어 한국인의 언어 습관, 식문화, 사회 속 전통과 미신, 친절이라는 이름의 '오지랖', 실용주의적 삶, 기술과 서비스,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그러나 주제가 아무리 넓어도 이 책의 중심축은 단 하나다. 바로 "왜?"라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이 이끄는 사유의 여정. 이는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질문은 성찰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해왔는가?'라는 질문은 곧 '우리는 누구인가?'로 이어진다.

그는 '많이 드세요'라는 말 한마디에서 한국인들의 정서를 읽어낸다. 타인의 안위를 먼저 챙기는 배려, 함께하는 식사에 담긴 공동체 정신. 그리고 건배 후 침잠하는 남자들의 눈빛 속에 스민 '한(恨)'의 정서까지- 저자의 해석은 얕은 호기심을 넘어서, 정서와 역사, 문화의 결까지 도달한다.

프랑스인인 그가 한국인의 '한'을 이토록 섬세하게 읽어낸다는 사실이 놀랍고, 그만큼 한국을 오래 사랑하고 곱씹어온 흔적이 느껴진다.

특히 이 책이 감동적인 지점은 한국인 스스로조차 회의하거나 조롱했던 '우리'에 대한 믿음을 저자가 다시 일깨운다는 데 있다.

그는 '헬조선'을 외치며 나라를 떠나고 싶어 하다가도, 월드컵이 열리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함께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 사회 문제에는 냉소적이면서도 광장에는 촛불을 들고 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말한다.

"한국인은 경이롭다."

'경이'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다. 설명되지 않는 일 앞에서 품게 되는 질문, 그 질문이 우리 안의 감각을 일깨우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경험이다.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부근 안국동네거리에서 생중계를 지켜본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 권우성

이 책은 바로 그 '경이'의 경험을 한국 독자에게도 선사한다.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무심코 흘려보낸 삶의 장면들에 새로운 빛을 비추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으로 느껴진다.

이 책은 단지 '외국인이 본 한국'이라는 기획서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이 한국을 새롭게 다시 만나게 해주는 책이며, 동시에 '나'라는 존재의 뿌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계기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다정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을지 모른다.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로움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충분히 자랑스러울 수 있다고.

경이로운 한국인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지은이), 이소영 (옮긴이), 마음의숲(2025)


#프랑스#한국인#비교문화#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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