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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전국에 지역아동센터는 4253곳이며, 이곳에서 만 18세 미만 아동 10만 5000여 명이 다양한 교육 및 학습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또래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중 하나인 '부천시민연합 부설 지역아동센터 도깨비(아래 '도깨비')'는 1997년에 어린이 공부방으로 출발했고, 2004년에 아동복지법에 지역아동센터가 명문화되면서 '지역아동센터' 도깨비가 되었다. '도깨비'는 초·중·고생 29명과 사회복지사, 돌봄교사 등 5명의 실무자, 그리고 실습생과 각 과목 담당선생님들의 배움터다.

2023년 '도깨비'는 지역아동센터 최초로 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로부터 공정무역실천기관 인증을 받았다. 이는 인증 이전 5~6년 동안 공정무역을 주제로 한 학습과 캠페인, 공정여행 등 여러 활동을 통해 '공정함'을 몸과 마음에 채워온 결과였다. 그 시작을 열었고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김춘식 센터장을 부천 심곡천변에 자리한 '도깨비'에서 만났다.

공정여행으로 알게 된 새로운 세상

'도깨비'가 본격적으로 공정무역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8년 '경기 꿈의학교'에 선정되면서였다. 당시 김춘식 센터장은 부천시민아이쿱생협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2017년에 부천시민아이쿱생협이 아이쿱생협연합회로부터 우수조합 표창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김 센터장은 홍콩으로 공정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환경교육센터 강사로 환경 관련 교육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공정무역과는 친숙하지 않았던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곧 '도깨비' 아이들의 세계가 넓어지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 좋은 것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더라고요. '경기 꿈의학교'에 국내공정여행 프로젝트로 지원을 했어요. 우리 센터 저학년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내용이어서, 부천의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전주, 군산, 부산은 참여학생들 다 같이 여행했고, 나머지 지역에는 조별로 갔어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공정무역 학습을 충분히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조별로 짜서 다녀온 거예요. 아이들이 다 준비해서 갔죠."

아이들이 여행지를 정하고 공정무역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나 사용하는 식당, 호텔 등을 물색해서 찾아다녔다. 사전 경험이 없던 아이들이 공정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은 열심히 학습하고 관련 기관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교실에서 학습했던 내용을 직접 확인해 보려고 했다. 여행에 공정함의 의미를 담으려고 노력한 아이들은 스스로 그리고 함께 만들어내는 여행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을과 소통하는 착한 공정여행 여행지 군산에서 철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
마을과 소통하는 착한 공정여행여행지 군산에서 철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 ⓒ 부천시민연합 부설 지역아동센터 도깨비

공정무역을 학습하며 성장하는 아이들

'경기 꿈의학교' 이후 공정무역과 공정여행은 '도깨비'의 교육프로그램 일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소한 월 1~2회 공정무역과 관련된 학습을 하거나 캠페인을 진행했다. 아이들이 선택한 간식목록에서 공정무역 바나나와 초콜릿, 건체리가 빠지지 않았고, 간식을 먹으면서 공정한 무역, 공정한 생산과 소비가 무엇인지를 학습했다. 자원봉사 온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초등학생 '도깨비' 아이들이 공정무역 학습자료를 같이 만들고, 학습한 후에는 공정무역 퀴즈대회, 도전 골든벨, 공정무역 모의고사 등을 열어 재미있는 복습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부천시에서 주최하는 '부천시민 공정무역 공모전'에 아이들이 여러 차례 작품을 출품했다. 지난해에는 6명의 아이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 공모전 대상을 받기도 했다.

'도깨비'에서는 교육프로그램 구성에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캠프를 준비할 때 아이들이 종이 5장에 하고 싶은 활동을 적어내면, 그것을 모아 프로그램을 정하는 식이다. 자신이 적어낸 활동이 채택되면 아이들의 자긍심은 한껏 솟구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한번은 이런 기회가 온다. 이런 활동 중에 공정무역이 있었고, 공정무역활동을 열심히 하고 싶었던 아이들이 동아리 '찾아가는 환경지킴이'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지금도 10명의 아이들이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학습한 내용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적극적인 캠페인 활동을 펼친다. 센터 주변 심곡천변에서 운동 나온 주민들에게 공정무역 10원칙을 설명하기도 하고, 캠프활동 중 하나로 공정무역 티셔츠를 입고 공정무역을 소개하기도 한다. 마을행사가 열리는 마당에서는 커다란 보드판에 자신들의 공정무역 활동사진을 붙여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배운 내용을 열심히 설명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학습과 활동이 축적되면서 아이들은 이제 "교사보다 공정무역을 더 잘 설명하는 아이들"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김 센터장은 자신 있게 말했다.

공정무역캠페인 아이들이 공정무역에 대해 학습한 후 주변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구매한 공정무역제품들
공정무역캠페인아이들이 공정무역에 대해 학습한 후 주변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구매한 공정무역제품들 ⓒ 부천시민연합 부설 지역아동센터 도깨비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홍콩공정여행에서 김춘식 센터장이 느낀 신선한 충격이 그의 개인적인 삶에만 머물렀다면, 마을 사람들이 공정무역 캠페인을 하는 '도깨비' 아이들의 모습을 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공정여행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을 아이들도 만나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 김 센터장이지만 "혼자서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한다. 부천시민아이쿱생협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도깨비'의 사회복지사와 교사들, 자원봉사 대학생들, 사회복지 실습생들,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조직들이 서로 공감하고 노력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함께 꿈꾸는 사람들 ‘도깨비’가 주최한 공정무역행사에서 나눔샵을 운영하며 공정무역캠페인을 진행한 '도깨비' 사회복지사들과 김춘식 센터장(가장 오른쪽)
함께 꿈꾸는 사람들‘도깨비’가 주최한 공정무역행사에서 나눔샵을 운영하며 공정무역캠페인을 진행한 '도깨비' 사회복지사들과 김춘식 센터장(가장 오른쪽) ⓒ 부천시민연합 부설 지역아동센터 도깨비

김춘식 센터장은 일례로 예전에 활동가들과 환경교육 공모사업을 준비하던 일을 들려주었다. "공모사업을 준비하면서 의류, 먹거리, 공정무역과 공정여행 등으로 총 42주 교육과정을 구성했는데, 그중 20주가 공정무역이었어요. 42주나 되는 교육안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죠. 이번 기회에 교육하고 싶은 내용을 모두 담은 체계적인 교육안을 만들고, 부천의 환경교육단체로 우뚝 서보자고 여럿이 결의했어요. 그러기 위해 강사들이 자신이 만든 강의교안을 모두 공유해주었어요. 사실 본인 강의안을 공개하는 게 쉽지 않아요. 강사들 입장에서는요. 하지만 강의교안을 공유하면서 같이 성장하려고 노력했어요. 거의 1년 동안 그걸 모아서 전체 커리큘럼을 정리하고 표준 강의교안을 만들 수 있었답니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하던 김 센터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2023년에 '도깨비'가 주관했던 마을행사 '착한소비 나눔shop'에는 부천시민연합, 부천동종합사회복지관, 원미창조태권도, 부천시민아이쿱생협, 공정무역협의회가 함께 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다양한 부스 활동을 즐겼다. ESG 퀴즈쇼, 공정무역 커피 드립백 만들기, 에코백 색칠하기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공정무역을 체험할 수 있었다. '도깨비' 행사였지만 지역의 다양한 기관들이 함께 만든 공동작품이 되었다.

그의 손을 맞잡아준 사람들은 또 있었다. 2023년 처음으로 공정무역학교 인증을 신청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던 김 센터장은 그동안 '도깨비'에서 했던 공정무역활동 자료들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인증에 필요한 자료들이 마치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생협 활동가들에게 먹거리 교육을 의뢰했는데 그들이 교육내용에 환경, 공정무역을 담아서 교육안을 짰던 것이었다. 김 센터장은 "그때는 먹거리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했지만 우리 아이들이 천천히 학습하고 실천하면서 공정무역을 알아갈 수 있도록 (생협활동가들이) 인도해 주었던 거예요. '도깨비'가 지역아동센터 1호 공정무역학교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도깨비'를 이렇게 성장시키고 싶었던 공정무역 활동가들의 큰그림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에 꼭 필요한 공정무역실천활동

이제 김춘식 센터장은 자신의 큰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부천시에 있는 57개 모든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이 공정무역을 만나고 공정한 세상을 느끼며 성장하는 그림 말이다. 지역아동센터는 학교에 비해 규모가 작고 의사결정 절차가 복잡하지 않다. 지역아동센터가 지켜야 하는 규정에 맞다면 교육내용과 방법, 급·간식 품목 등을 결정하는 데서 구성원들이 상당한 재량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지역아동센터에서 공정무역실천활동을 할 때는 지역 내 여러 인적, 물적 자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 센터 내부의 교사들, 지역의 공정무역 관련자들이 각자의 역량에 맞게 실천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활동이 풍성해지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강화된다. 아이들의 자치활동과 자발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몸과 마음의 성장을 돕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으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성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정무역실천활동은 지역아동센터에 꼭 필요하다"고 김 센터장은 힘주어 말한다.

"공정무역제품을 사용하는 걸 넘어서 공평, 공정, 사회관계, 친구관계, 인생 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타인이 제공하는 삶을 사는 시기지만 조금 있으면 본인들이 계획하는 삶을 살 거니까,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죠."

부천시는 올해 10월 공정무역활동을 집중적으로 알리는 '2025 포트나잇' 행사를 주관한다. 부천시공정무역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김춘식 센터장은 '도깨비' 아이들과 함께 공정무역을 확산시키기 위한 활동을 준비하려고 한다. 자신에게 홍콩공정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2025 포트나잇'이 지역의 다른 아동센터와 새로운 세상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깨비'의 생기발랄한 공정무역실천활동은 아동교육을 넘어, 지역사회가 함께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귀중한 모델이 되고 있다. 김춘식 센터장의 뜨거운 열정과, 함께 하는 이들의 단단한 마음이 일으킬 나비효과는 부천을 넘어 더 넓은 곳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라이프인에도 실립니다.


#공정여행#부천시민연합부설지역아동센터도깨비#공정무역실천기관인증#한국공정무역마을위원회#공정무역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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