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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마라톤? 절반만 달린다고?'

올림픽 정식 종목도 아니다. 마라톤은 42.195km 풀코스, 그게 아니라면 10000m, 5000m 트랙 경기가 있지만 이름부터 미완성의 느낌이다. '절반' 마라톤이 뭐람. 풀코스는 너무 길고 10000m는 짧은 것 같으니 적당히 만든 종목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프 마라톤은 총 21.0975km를 달리는 장거리 육상 경기다. 풀코스 마라톤 절반 거리라는 의미에서 하프(Half) 이름이 붙었다. 러너들은 풀코스보다 부담은 적고 장거리 주행 능력을 시험하기에 좋은 거리 종목으로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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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마라톤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마라톤이 대중화된 20세기 초반부터 비공식 하프 마라톤 레이스도 함께 이루어졌다. 1960~1970년대 국제 대회가 생겨났으며, 1992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현 World Athletics) 주관으로 첫 번째 세계 하프 마라톤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어 공식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선수들은 하프 마라톤을 풀코스 마라톤 준비 과정의 중간 단계로 활용한다. 세계 하프 마라톤 선수권 대회는 2023년부터 세계 로드 러닝 선수권 대회(World Athletics Road Running Championships)로 통합되어 개최되고 있다.

월드 마라톤 메이저 대회(도쿄, 보스턴, 런던, 베를린, 시카고, 시드니, 뉴욕 시티 마라톤)는 풀코스 마라톤 중심인 반면, 하프 마라톤은 별도 운영되고 있다. 해외 유명한 하프 대회로 뉴욕 하프 마라톤(New York City Half Marathon), 발렌시아 하프 마라톤(Valencia Half Marathon, 세계 기록 다수 배출), 리스본 하프 마라톤(Lisbon Half Marathon) 등이 있다.

4월 6일 경기도 고양에서 하프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고양특례시 하프 마라톤 대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하프 마라톤 대회가 될 수 있을까? 처음 참가하여 달려보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1만여 명 러너들이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하여 1기 신도시의 아파트와 상업 건물 가득한 도로를 달린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때에는 흔한 풍경에 무료함마저 느껴지는 길이지만 나의 두 다리로 직접 뛰면 느낌이 사뭇 다르다. 마치 매일 지나치는 거실 책장에서 잊고 있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한 기분이다.

'이 길이 이렇게 기분 좋은 곳이었다니!'. 지하차도에서는 러너들의 호흡과 착지 소리가 벽면에 부딪히며 메아리처럼 울린다. 어린아이처럼 소리치며 차도를 오르내리는 힘든 순간을 잠시나마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일산 호수공원을 지나갈 때에는 방송국과 건물들 사이로 아직 영업을 개시하지 않은 상점들이 조용히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주말마다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는 차량 행렬은 보이지 않는다. 일요일 이른 아침 도로를 전세 내고 한적한 길을 달리는 러너들의 특권과 같은 시간이다.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하는 시인처럼 러너들은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기분으로 달리는 것만으로 온몸에 엔도르핀과 도파민이 가득하여 행복한 상태가 된다.

다시 고양종합운동장. 얼마 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경기를 했던 스타디움으로 들어선다. 큰 경기를 했던 경기장이라 마지막 피니시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트랙이 유난히 멀고도 길게 느껴진다. 전력 질주를 한다. 힘들지만 기분은 좋다. 드디어 끝. 1시간 20분. 80분의 러닝을 무사히 마쳤다. 기분 좋은 주말, 더욱 좋은 마음으로 일요일 아침을 시작한다.

봄과 여름은 야외활동에 좋지만 러닝을 하기에는 더운 계절이다. 대부분 유명한 풀코스 대회가 가을과 이른 봄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이다. 목표하는 대회가 없는 계절이다 보니 종종 몇몇 러너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는 시기이다. 괴테는 매너리즘이란 완성만을 염두에 두면서 창작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태도라고 하였다. 순수하고 진정으로 위대한 재능은 창작 과정에서 큰 행복을 누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예술이 아닌 스포츠에서도 매너리즘은 똑같은 것 아닐까?

하프 마라톤은 절반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가을 풀코스를 위해 절반씩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과정에 집중하여 하루하루 움직이면 어느덧 가을의 42.195km를 더 건강하게 달리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따뜻한 봄, 더운 여름조차 내가 성장하는 과정으로 즐기는 러너에게 매너리즘은 없다.

고양특례시 하프마라톤 고양특례시 하프마라톤
고양특례시 하프마라톤고양특례시 하프마라톤 ⓒ 본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러닝#운동#고양하프마라톤#마라톤#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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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달리고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아들의 아빠이자 아내의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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