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람 테러집단과 싸워줘서 이스라엘에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긴 기독대한당 명의의 현수막. 2025년 4월 5일 서울 광화문. ⓒ 미니
"이스라엘! 자유세계와 크리스챤들을 위해 이슬람 테러집단과 싸워줘서 감사합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다음 날인 4월 5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는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슬람 테러집단과 싸워줘서 이스라엘에 감사하다는 기독대한당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혐오와 비인간화
"나는 가자 지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를 명령했다. 전기도, 식량도, 연료도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이 폐쇄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 짐승들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맞춰 행동할 것이다."
2023년 10월 9일,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요아브 갈란트가 이스라엘군 남부 사령부를 방문한 후 한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군인이나 정치인이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거나 '인간 짐승'과 같이 경멸적으로 표현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76년 내무부 최고위 관리인 이스라엘 코닝은 갈릴리 지방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일컬어 '국가의 몸에 생긴 종양'이라고 했고, 참모총장 라파엘 에이탄은 '바퀴벌레'라고 지칭했다. -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전쟁이나 집단 학살 과정에서 자주 사용되는 것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질병이나 동물, 곤충 등의 이미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가해자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합니다. 피해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할수록 폭력성이나 잔혹함이 더욱 강해지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전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왼쪽)와 참모총장 헤르지 할레비 중장이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헤르츨 산 군인 묘지에서 열린 하마스 공격 1주년을 기념하는 히브리력 행사에 참석했다. 2024.10.27 ⓒ AP=연합뉴스
특정 인간 집단을 질병에 빗대며 공격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의 히틀러입니다.
1942년 2월 말에 이른바 최후의 해결을 결의하였던 반(Wann) 호수 회의가 있은 직후에 그는 원탁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유대인이라는 바이러스의 발견은 이 세상에서 일찍이 감행하였던 가장 위대한 혁명의 하나이다. 내가 이끄는 이 싸움은 지난 세기에 파스퇴르와 코흐(세균학자들)가 했던 것과 같은 싸움이다. 얼마나 많은 병들이 유대 바이러스의 탓으로 생겨난 것인가!...우리는 유대인을 말살해야만 건강을 되찾을 것이다." - 요아힘 C. 페스트, <히틀러 평전 1>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와 법
1920년 2월 24일, 히틀러가 나치당 집회에서 발표한 25개의 정치 강령 가운데 4항은 이렇습니다.
오직 민족 구성원만이 국가의 시민이 될 수 있다. 신앙과 관계없이 독일 혈통을 가진 자만이 민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유대인은 민족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홈페이지
1935년 9월 15일 나치는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제국시민법>을 발표합니다. 그 가운데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독일 민족 또는 그와 연관된 혈통을 지닌 자로서, 자신의 행위를 통해 독일 국민과 제국에 충실히 봉사할 의지와 자격이 있음을 입증한 자만이 제국 시민이 될 수 있다. -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나치는 독일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독일 시민이라고 하지 않고, 독일 시민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독일 민족과 관련 혈통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독일에서 살아온 사람 가운데 일부를 나치가 만든 기준에 따라 유대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유대인이라고 규정된 이들에게는 시민권을 주지 않고, 직업을 가질 수 없게 하거나 재산을 빼앗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특정 지역에 모여 살게 하고 나중에는 집단 학살까지 저지릅니다.
나치 독일과 비슷한 인종주의적 국가 정체성 및 법률 체계를 추진해 온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2018년 7월 19일, 이스라엘 의회는 <기본법 : 유대인 민족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하 민족국가법)을 통과시킵니다. 1조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역사적 고향이며, 그곳에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되었다. 이스라엘 국가는 유대인의 민족국가이며, 그곳에서 유대인은 자연적, 종교적, 역사적 자결권을 실현한다. 이스라엘 국가에서 민족 자결권의 실현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고유한 것이다. - 이스라엘 의회 홈페이지
시오니스트는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을 추방하고 살해하면서 이스라엘을 건국했습니다. 시오니스트는 1948년 발표된 이스라엘 건국 선언문을 비롯해 각종 법에서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민족국가라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아랍인을 비롯해 다른 민족은 이스라엘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유대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미국을 백인의 국가로 규정하고, 백인 이외의 다른 인종이나 민족을 차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봉쇄 속 학살

▲팔레스타인 남성이 가자 시에 있는 아흘리 아랍 병원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수의에 싸인 친척의 시신을 안고 애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3월 18일 가자에서 공세를 재개했고 그후 이 지역에서 133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AFP=연합뉴스
CNN에 따르면 2024년 8월 5일, 당시 이스라엘 재무장관이던 베잘렐 스모트리치는 한 행사장에서 가자 지구를 봉쇄해 2백만 명가량을 굶기는 것이 "정당하고 도덕적인" 일이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한편, 지난 2월 4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를 만난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장악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가자 주민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인종 청소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2월 6일, 현 이스라엘 국방장관 이스라엘 카츠는 가자 주민의 대규모 이주를 준비하라고 이스라엘군에 지시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카츠는 "가자지구 주민의 상당수가 전 세계 다양한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계획을 환영한다"며, 가자 주민은 "그들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어떤 나라로든" 떠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국가법> 5조에는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이민에 문을 열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세계 각국에 있는 유대인의 이스라엘로의 이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이주하는 사람이 팔레스타인에 가 본 적이 없다거나 히브리어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모른다는 것 등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든 유대인이라는 규정과 작은 연결고리라도 있으면 이스라엘로 이주 및 정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본인은 물론 조상 대대로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온 가자 주민들은 오늘도 살해되고 쫓겨나고 있습니다.
4월 3일 이스라엘은 난민들이 피난처로 삼고 있던 학교 세 곳을 미사일로 폭격하는 등 최소 112명을 살해했다고 <알자지라>가 전했습니다. 4월 6일에도 50여 명의 팔레스타인이 살해되었습니다. 이로써 2023년 10월 7일 이후 18개월 동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람은 6만 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는 1만 8천 명에 이르는 어린이와 청소년 사망자도 포함됩니다.
230만 명가량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 외부를 완전히 봉쇄한 이스라엘은 3월 2일부터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품의 반입마저 전면 차단하고 있습니다.
- 평화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