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도전 짤방' 중 하나. ⓒ MBC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시간 될 때마다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갔던 우리 MZ세대에게도 남다른 순간이었다. 인터넷에 누군가 또 이 상황에 걸맞은 '무한도전 짤방'을 찾아냈다. 우리는 "무도가 또"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초등학생 시절 <무한도전>(아래 '무도')을 보고 자란 일명 '무도키즈'. 우리들은 매 순간 무도를 찾는다. 사회적 이슈뿐 아니라 직장, 학교 등 일상에서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을 때 무도 짤방을 사용한다. 과거 조상들이 노동요를 부르며 풍자와 해학을 즐겼다면, 오늘날의 무도키즈들은 매순간 예능의 한 조각을 추출하며 실소를 터뜨리고 있다.
2025년 MBC는 <무한도전> 방영 20주년을 기념해 365장의 예능 하이라이트 장면을 엮은 '무한도전 일력'을 내놓았다. 이미 종영한 지 오래된 방송에 '종영 7주년'이 아닌 '방영 20주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방송의 생명력이 아직까지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에 '무한도전 일력' 인증샷을 올렸다. 과거에는 공부방 책상이 배경이었다면 지금은 사무실 데스크 위라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이미 그동안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우리들은 왜 여전히 무도를 찾는 것일까.
너무나 순진하게 믿었던 '끝없는 도전'

▲MBC <무한도전> '가상의 2000회' 특집 ⓒ 무한도전
무도는 상당히 뻔뻔한 프로그램이었다. 별것 아닌 주제에도 '특집'을 붙인다. '50회 특집', '우천시 취소 특집', '자리분양 특집' 등 사실상 펑크가 난 상황조차 '특집'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어릴 때는 이 때문에 제법 혼란을 겪었다. 특집이라 해서 채널을 돌리다 멈추고 봤는데 그 다음주도 특집이고 다다음 주도 특집이었다. 기껏 특별한 줄 알고 봤는데 김이 샌다. 이전까지의 방송들은 여름에는 납량특집,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특집 등 특정 시기에 한두 편만 '특집'을 붙이는 정도였기에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곧 무도의 정체성임을 알게 됐다. 나 역시 자연스레 '이번에 무슨 특집을 할까' 기대하기 됐다. 그것은 곧 오늘은 멤버들이 무슨 도전을 할지 궁금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 이상 방송 포맷이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을 소화하는 멤버들의 캐릭터에 더 호기심이 갔다. 퀴즈쇼든 추격전이든 토크쇼든 '평균 이하'라는 콘셉트로 친숙해진 멤버들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상관 없었다.
시청자들은 점점 무한도전을 '재미'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게 됐다. 어떤 공을 줘도 잘 받아치는 팀처럼, <가상의 2000회 특집> 속 모습처럼 노쇠한 얼굴만 보여줘도 시청률이 잘 나올 것만 같았다. 이 때문에 난 무도의 도전이 영원할 것이라고 너무나 쉽게 믿었다.
그러나 끈끈한 관계성은 최고의 강점이자 약점이었다. 시스템은 변하지 않지만, 사람은 변한다. 평균 이하 콘셉트였던 멤버들은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난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긴 로케이션을 가기가 어려워졌고, 나이가 들수록 추격전을 진행하기도 힘들어졌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책임도 커졌다. 각자의 캐릭터가 탄탄했던 만큼, 한 명이라도 빠지면 시스템이 아무리 잘 돌아가더라도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두 명의 멤버가 음주운전으로 자진 하차하면서 많은 시청자들은 무도의 앞날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무나 순진하게 믿었던 '끝없는 도전'은 서서히 마무리돼 갔다. 학창 시절 내내 무도와 함께 한 무도키즈로서 현실을 마주하는 건 제법 힘든 일이었다. 이 때문에 최종화를 보지 않은 내 또래가 많다. 마침 갓 성인이 돼 대학 입학 후 바빠진 개강 시즌을 핑계로 무도를 마음 한 켠에 접어두었다. 졸업식 날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몇몇 친구들처럼, 우리는 이 프로그램과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25분은 이제 무도가 아닌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영원한 '무도키즈'다

▲일명 '박명수 짤방' ⓒ MBC
그 후 7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대학교, 아르바이트, 회사 등 여러 집단을 거치며 난 하나의 진리를 알게 됐다. 이별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고, 만남은 완전한 만남이 아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옛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퇴사하면 영영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회사 동료들과도 간간이 밥을 먹는다. 이별은 생각보다 냉정하지 않고, 만남도 마냥 신선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무도 다시보기 콘텐츠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MBC에서는 무도 관련 이벤트가 계속된다. 친구들은 일하다 말고 습관적으로 '박명수 짤'을 보내곤 한다. "잠을 자도 피로가 안 풀리냐",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짤방이라는 것은 사실 고급 대화 수단이다. 내가 직접 입 밖으로 내면 싸해질 수 있는 말을 예능적으로 전달하는 유용한 도구다. 일을 배우는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대신 내뱉는 박명수의 어록은 그 자체로 통쾌한 표현 도구다. 실제로 무도 짤방의 8할은 박명수가 차지한다. 무도는 단순히 감상으로 연명하는 방송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쓸모'가 있다.
4월 4일, 회사 라디오로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들었다. 아이돌 응원만 할 줄 내가 정신없이 응원봉을 흔든 123일이었다.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일상에서나 사회에서나 다시 또 많은 일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인생 자체가 끝이 없는 도전이다.
난 이럴 때마다 무도 덕에 생긴 재밌는 습관으로 극복한다. 이 모든 순간에 '특집'을 붙인다. '미세먼지 특집', '직장 상사에게 꾸중 듣기 특집', '풀마라톤 달성 특집'... 어쩌면 무도가 끝났음에도 MZ세대를 통해 계속 수면 위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지금도 무도는 "무도키즈들이 찾아주길 바래" 특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4월 4일, 무한도전 일력의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웃음도, 슬픔도, 화남도 모두 하나의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승화할 줄 아는 우리는 영원한 무도키즈다.

▲무한도전 일력 ⓒ SEOULCOO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