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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념일에 송냉이골에서 올린 위령제 4·3 2025년 4·3 추념일을 맞아 마중물, 강정해군기지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 탐미협, 전 전교조 활동가와 많은 일반인들이 참석하여 의귀초등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명의 무장대원들에게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추념일에 송냉이골에서 올린 위령제4·3 2025년 4·3 추념일을 맞아 마중물, 강정해군기지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 탐미협, 전 전교조 활동가와 많은 일반인들이 참석하여 의귀초등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명의 무장대원들에게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 김광철

제주 4·3이 국가 추념일로 지정이 되어 해마다 이날이 되면 제주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참석하고, 제주도지사는 물론 많은 제주도민들과 유족들이 참석하여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행사들이 진행된다.

77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4월 3일 나는 해마다 4·3평화공원에서 치러지는 추념식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좀 남다른 선택을 하였다. 해직교사 출신들인 전교조 전 제주지부장 이용중 선생, 전교조 전 울산지부장 한강범 선생과 함께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위치한 송냉이골('속냉이골'이라 불리기도 함)을 찾은 것이다.

한강범 선생은 제주 출신으로 울산에서 중등 국어 교사를 하다가 전교조 활동으로 1989년 교직에서 해임이 되었다. 그 후 전교조 울산지부장을 맡는 등 다양한 직책을 맡으며 전교조 활동을 하다가 1994년 교직으로 복직한다. 지금은 교직에서 정년 퇴임을 하고 고향인 제주에 돌아와 정착했다.

그런 그가 2023년에 제주 4·3 유적지들을 찾아 4·3 관련 인사들을 만나 취재하고, 4·3 관련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해 <선생님 제주 4·3이 뭐예요?>(살림터 출판사)라는 책을 출간해 4·3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그는 이 책에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4·3 관련 사실과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던 무장대 투쟁, 제주 4·3 정명 운동의 필요성 등을 십수 편의 자작시를 곁들여 썼다.

비석없는 송냉이골 추모비 돌담을 둥그렇게 쌓아놓고 추모비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비석은 없다. 다만 이 추모비 앞에 교회 사람들이 와서 '파사현정', '제폭구민' 등 동학운동 때 많이 사용했던 말들을 적은 작은 비문을 새긴 비돌을 세워놓았다.
비석없는 송냉이골 추모비돌담을 둥그렇게 쌓아놓고 추모비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비석은 없다. 다만 이 추모비 앞에 교회 사람들이 와서 '파사현정', '제폭구민' 등 동학운동 때 많이 사용했던 말들을 적은 작은 비문을 새긴 비돌을 세워놓았다. ⓒ 김광철

송냉이골 무명 무장대 무덤 앞에 쓸쓸하게 놓인 상석 이 상석은 이덕구 산전에 만들어 놓은 철제밥상을 제작한 작가가 제작하여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이 외로이 숨져갔을 무장대들의 원혼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였다.
송냉이골 무명 무장대 무덤 앞에 쓸쓸하게 놓인 상석이 상석은 이덕구 산전에 만들어 놓은 철제밥상을 제작한 작가가 제작하여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단아하고 소박한 모습이 외로이 숨져갔을 무장대들의 원혼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였다. ⓒ 김광철

한강범 선생으로부터 올해 4·3 추념일 이틀 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 4·3 때는 공식적인 4·3 평화공원 추념식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송냉이골 추모제에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다. 나는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였다. 나는 해마다 4·3 당일이나 그 전날 아니면 다음 날 4·3 평화공원 행방불명자 추모공간에 세워져 있는 막내 삼촌 표석을 찾는다. 이번에는 4일 평화공원을 찾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고 3일에는 송냉이골을 찾기로 했다.

의귀초등학교 교문 옆에 세워진 43 피해 안내문 의귀초등학교 교문 옆에 세워진 4·3 피해 안내문 서귀포시 남원읍 위귀리에 있는의귀초등학교는 49년 1월 12일 토벌대와 무장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무장대 51명, 군인 4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토벌대 군인들은 이 학교에 구금하고 있는 80여 명의 인근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시신은 가매장하여 방치했다. 이런 내용을 적은 안내판이다.
의귀초등학교 교문 옆에 세워진 43 피해 안내문의귀초등학교 교문 옆에 세워진 4·3 피해 안내문 서귀포시 남원읍 위귀리에 있는의귀초등학교는 49년 1월 12일 토벌대와 무장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무장대 51명, 군인 4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토벌대 군인들은 이 학교에 구금하고 있는 80여 명의 인근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고 시신은 가매장하여 방치했다. 이런 내용을 적은 안내판이다. ⓒ 김광철

나는 막걸리 몇 병과 대구포, 과자 등 소소한 제수 거리를 마련하여 가방에 챙겨 넣었다, 나와 한강범, 이용중 선생은 남원읍사무소 앞에서 만나 송냉이골로 향했다. 가면서 먼저 4·3 당시 무장대와 토벌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의귀초등학교를 잠시 찾았다. 오늘이 4·3 추념일이지만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하기야 그들이 이 학교가 4·3과 깊은 역사의 연을 맺고 있음을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기나 하겠는가? 학교 정문 옆에는 의귀초등학교에서 벌어졌던 전투와 주민들이 학살당했다는 간단한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을 뿐 격전의 현장이었던 의귀초등학교 교정은 조용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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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냉이골이 초행은 아니다. 그전에 찾았던 기억이 난다. 초행인 여행객들은 찾는 것이 녹록지 않지만 요즘은 내비게이션에 뜨기 때문에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

현장에 갔더니 이미 와 있던 김경훈 4·3 시인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강정해군기지 반대하는 사람들, 마중물 회원들, 탐미협 회원, 우리미술을 연구하는 사람들, 청주 국악관현악단 단원 등이 모여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 들고 간 제수들을 꺼내어 제를 지낼 준비를 하며 음식들을 진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위령제를 집전하는 김경훈 43시인 위령제를 집전하는 김경훈 4·3시인 제주작가회의 소속이며 4·3 관련 시를 많이 쓴 김경훈 시인이 이날 위령제를 집전하면서 의귀초등학교 전투와 송냉이골의 유래 내역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령제를 집전하는 김경훈 43시인위령제를 집전하는 김경훈 4·3시인 제주작가회의 소속이며 4·3 관련 시를 많이 쓴 김경훈 시인이 이날 위령제를 집전하면서 의귀초등학교 전투와 송냉이골의 유래 내역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 김광철

이윽고 11시가 되니 추모제에 참가하는 80여 명의 사람들이 도열하여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김경훈 시인이 의귀초등학교 전투, 이곳 송냉이골이 들어서게 된 사연과 유래, 도법 스님의 탁발 순례, 그 후 추모행사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차려온 제사 음식들을 묘 앞에 있는 아주 작은 돌로 만든 제상 앞에 진설하였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들이야 다양하겠지만 술 한 잔 함께 올리고 절 두 번을 하면서 성도 이름도 남기지 않고 산화해 간 4·3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마음은 하나였다.

송냉이골에 잠들어 있는 분들이라고 유족들이 없겠는가마는 이념의 올가미를 씌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처신이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념의 잣대를 넘어 해방 공간에서 자주·민주·통일·독립을 외쳤던 제주 4·3의 정당성을 바르게 평가하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붙이자는 것이 '4·3 정명 운동'이다. 동학난이 동학혁명으로 평가받는 데 1세기 정도의 세월이 걸렸다. 제주 4·3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도 한 세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4·3 당시 의귀초등학교에는 이 일대 마을 주민들 80여 명이 토벌대에 의하여 잡혀 와 구금되어 있었다. 1949년 1월 12일 무장대는 주민들을 구출하려고 새벽 5시경에 의귀초등학교를 급습한다. 하지만 이런 첩보를 접한 토벌대는 학교 지붕과 학교 주변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무장대의 내습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전투에서 무장대원들 51명이 사살되고 군인들도 4명의 전사자가 발생한다.

이에 흥분한 군인들은 구금되어 있는 80여 명의 주민들을 집단 학살하여 학교 주변에 흙을 덮은 상태로 방치한다. 그 후 주민들의 시신은 유족들에 의하여 수습되어 합장을 했다가 1994년에 인근 수망리로 이장하여 봉분 3개에 합장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의귀초등학교 주변에 방치되었던 무장대 시신 약 15구를 마을사람들이 송냉이골로 옮겨 조그만 봉분 3개 밑에 묻었다. 그 후 아무도 돌보지 않아 가시덤불과 잡목이 우거져 무덤의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것을 2004년 5월 생평평화탁발순례단의 도법 스님과 제주 4·3연구소, 현의합장묘 유족들이 묘를 정비하고, 도법·수경 스님 등이 나서서 천도재를 지낸다. 도법 스님 등은 묘역을 정비한 후 조그만 방사탑을 세우고 이 사건의 사연을 적은 안내판을 세워 '송냉이골'이 세상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날 추모행사를 주관한 김경훈 시인은 말한다.

"2004년 5월 13일 도법 스님이 천도재를 마치면서 '벌초라도 좀 하지'라는 말을 듣고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맞은 것 같아서 해마다 8월 15일에 벌초하고, 1월 12일에 추모제를 모시기를 21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4·3 위령제가 아무리 성대하게 치러지더라도 이분들은 초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추억해야 하지 얺겠습니까? 이 나라의 자주와 민주, 해방, 통일을 위해 목숨을 받친 이분들의 노력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법스님 등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세워놓은 송냉이골 안내판 2004년 5월 13일 도법스님 등 생평평화탁발순례단이 송냉이골에 잠들어 있는 4·3 무장대원들 묘역을 성묘, 정비하고 의귀초등학교 전투와 송냉이골에 묻혀 있는 무장대원들의 사연을 안내하는 안내판을 설치해 놓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도법스님 등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세워놓은 송냉이골 안내판2004년 5월 13일 도법스님 등 생평평화탁발순례단이 송냉이골에 잠들어 있는 4·3 무장대원들 묘역을 성묘, 정비하고 의귀초등학교 전투와 송냉이골에 묻혀 있는 무장대원들의 사연을 안내하는 안내판을 설치해 놓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 김광철

다음은 탁발순례단이 세워놓은 안내판의 내용이다.

모든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 옛말에 '적의 무덤 앞을 지나더라도 먼저 큰절부터 올리고 가라'고 했다. 바로 이곳은 제주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사건'의 와중에 국방경비대에 의해 희생된 영령들의 유골이 방치된 곳이다.

당시 국방경비대 2연대 1대대 2중대는 남원읍 중산간 마을 일대의 수많은 주민들을 용공분자로 몰아 의귀초등하교에 수용하고 있었다. 1949년 1월 12일(음력 48년 12월 14일) 새벽 무장대들이 내습, 주민 피해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주둔군의 막강한 화력에 밀려 희생되고 말았다. 이때 희생된 십수 명의 무장대들은 근처 밭에 버려져 썩어가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곳에 묻혔지만, 내내 돌보는 사람 하나 없이 덤불 속에 방치돼 왔다.

우리 생평평화탁발순례단은 우익과 좌익 모두를 이념 대립의 희생자로 규정한다. 학살된 민간인뿐만 아니라 군인·경찰과 무장대 등 그 모두는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때 희생된 내 형제, 내 부모였다.

'평화의 섬'을 꿈꾸는 제주도. 바로 이곳에서부터 대립과 갈등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 순례단은 생명평화의 통일 시대를 간절히 염원하며, 모성의 산인 지리산과 한라산의 이름으로 방치된 묘역을 다듬고 천도재를 올리며 이 푯말을 세운다.

2004년 5월 13일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일동

#제주43#송냉이골#77주년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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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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