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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참여자들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참여자들 ⓒ 김선영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적의원 300명 전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가결되면서, 윤석열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세 번째로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은 대통령이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2016년), 노무현 전 대통령(2004년)에 이어 또 한 번, 민주주의의 중대한 기로에 선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촛불 시민들의 외침과 집념이 만든 결과이며, 그 중심에 서산·태안·당진 시민들로 구성된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이 있었다.

"촛불은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비 내리는 날 촛불시위
비 내리는 날 촛불시위 ⓒ 김애란

2022년 10월 22일, 서산에서 '윤석열 퇴진 촛불버스'가 처음 운행됐다. 이후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서울로 향했다. 촛불행동 공동대표 김애란 씨는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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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장에 하나의 촛불을 들고 서면, 어느새 수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함께합니다. 그 모습은 연대의 명령처럼 느껴졌고, 작은 촛불들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12월 3일 계엄령 이후, 젊은 청년들은 응원봉을 들고 촛불문화를 바꿔냈어요. 이제는 거대한 응원봉의 바다가 청년들의 새로운 상징이 되어,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세력에게 문화적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촛불은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참여자들이 탄핵버스 안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고 있다.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참여자들이 탄핵버스 안에서 "윤석열 파면"을 외치고 있다. ⓒ 김선영

김 대표는 윤석열 정권 출범 초기의 국민 정서를 이렇게 회고한다.

"손바닥에 '왕(王)' 자를 쓰고 나온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그래도 잘하겠지'라는 기대를 품었죠. 정권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촛불을 들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부의 실패한 외교정책, 급등한 물가로 인한 민생 불안, 이태원 참사와 무책임한 태도, 노동자에 대한 적대적 정책 등으로 지역에서도 촛불을 드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시민의 의지가 촛불버스를 지켰다"

 2022년 10월 촛불버스 참여자들
2022년 10월 촛불버스 참여자들 ⓒ 김애란

촛불버스는 순탄치 않았다. 때로는 인원이 부족해 운행이 어려울 때도 있었고, 주최 측조차 "다음 달부터는 접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민들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절대 멈추지 마세요. 끝까지 갑시다. 윤석열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촛불은 꺼져선 안 됩니다."

 이옥주 고문
이옥주 고문 ⓒ 김애란

특히 김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충남 노인위원장 이옥주 고문(84세)의 사례를 언급하며 깊은 감동을 전했다.

"교통사고로 얼굴과 다리를 크게 다치시고도, 한 달 후 촛불버스를 타러 오셨어요.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끝내 서울까지 가셔서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행진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가슴에 새기며, 저도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촛불버스를 절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눈물의 현장, 기억에 남는 두 날"

 김애란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공동대표와 황규돈 위원장
김애란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공동대표와 황규돈 위원장 ⓒ 김선영

김애란 대표는 촛불의 역사 속에서 잊을 수 없는 두 장면을 떠올린다. 첫 번째는 이태원 참사 이후 열린 촛불집회다.

"그날은 하늘도 슬펐는지, 비가 억수같이 내렸어요. 희생자의 친구가 무대에 올라 '아이구~ 아이구~' 하며 통곡하자, 광장에 있던 모두가 함께 울었습니다. 빗물과 눈물이 뒤섞인 밤이었죠."

두 번째는 노동자 양희동 열사의 분신 후 집회다.

"열사의 유서를 읽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1만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흐느꼈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던 기자들도 카메라를 들고 울고 있었어요. 그만큼 촛불의 현장은 매번 대본 없는 드라마 같은 순간이었죠."

"이채양명주"로 정권의 실정을 외치다

 백은종 촛불행동 대표와 맹강섭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공동대표
백은종 촛불행동 대표와 맹강섭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 공동대표 ⓒ 김선영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은 촛불의 명분을 다섯 가지 대표적 실정으로 정리해 '이채양명주'라 외쳤다.

이채양명주
이: 이태원 참사
채: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양: 양평 고속도로 게이트
명: 명품백 수수
주: 주가조작 의혹

시민들은 눈보라와 폭우 속에서도 3년 가까운 세월을 아스팔트 위에서 무능·무지·무대포 정권에 맞서 촛불을 들고 싸웠다.

최재영 목사, "윤석열은 반드시 탄핵된다"

 최재영 목사
최재영 목사 ⓒ 김선영

지난 3월 29일, 기자는 서울 광화문에서 최재영 목사를 다시 만났다. 그는 1년 전 서산 촛불집회에서 "올해가 가기 전에 윤석열은 반드시 탄핵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때만 해도 많은 분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설마 그렇게 되겠냐는 시선이 컸죠. 하지만 결국 됐습니다. 윤석열 본인이 자책골을 넣은 '12.3 비상계엄 문건'이 오히려 탄핵 시기를 앞당긴 셈이죠."

2024년 10월 12일, 최 목사와 함께 백은종 대표, 정대택 회장이 서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초청 연사로 참여한 바 있다. 지역 시민들과 함께 윤석열 퇴진을 외치며 전국 촛불운동에 힘을 실었다.

"이제, 헌재의 시간만 남았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 김선영

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결과가 어떻든, 서산태안당진 촛불행동은 이 시대의 예언자이자,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한 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습니다. 스스로 무너질 줄은 더더욱 몰랐죠. 하지만 우리의 외침이 끝내 닿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매주 목요일 탄핵 집회가 서산에서 열렸다
12.3 비상계엄 이후 매주 목요일 탄핵 집회가 서산에서 열렸다 ⓒ 김선영

'탄핵버스'라는 이름의 작고 끈질긴 희망은, 이제 거대한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4월 4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주인이 국민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날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한손엔촛불한손엔깃발#이채양명주梨蔡陽明酒#촛불행동#윤석열파면#123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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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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