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 정현경(고 이민주씨 어머니)씨가 지난 3월 25일 광주 북구 새로나추모관에서 딸이 좋아했던 프로야구팀 기아 타이거즈의 양현종 선수 사인 유니폼(왼쪽)과 김도영 선수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소중한
"민주가 최근에 이 옷을 샀는데..."
엄마가 가방에서 야구 유니폼을 꺼냈다. KIA타이거즈 김도영 선수의 유니폼이었다.
"그런데 한 번밖에 못 입어보고 갔어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딸 이민주씨를 잃은 정현경씨는 눈물을 삼켰다. 아직 상표도 뜯지 않은 유니폼을 정씨가 들어보였다.
"3월 22일 프로야구 개막식에 간다고 휴대폰에 표시를 해놨더라고요. 그걸 보고 또 울었어요. (예전엔) 언니랑 새벽부터 기다려서 양현종 선수가 너무 좋다며 사인도 받아왔다고 자랑을 했는데...."
프로야구 개막 사흘 뒤인 지난 3월 25일, 광주의 한 추모관에서 정씨를 만났다. 딸은 기다리던 개막 경기에 가지 못하고 이곳에 있다. 딸 덕분에 가족 모두가 KIA타이거즈 경기를 직관했던 지난해, 엄마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민주가 피시방까지 가서 자기 돈으로 어렵게 (KIA타이거즈 경기) 표를 샀대요. 그날 가족사진도 찍고 엄청 즐거웠거든요. 가족 6명이 다 같이 모이기 힘드니 '야구장 안 갔으면 6명이 사진 찍을 일이 없었겠다'고 그랬어요."
그날 야구장에서 모처럼 찍은 가족사진은 딸의 봉안함 옆에 놓였다.

▲야구장에서 모처럼 찍은 가족사진은 이제 민주씨의 유골함 옆에 놓여 있다. ⓒ 소중한
하루를 48시간처럼 보냈던 청년
활발하고 독립적인 둘째 딸. 사남매를 낳은 엄마 정씨는 민주씨를 그렇게 기억한다.
민주씨는 대학에서 과 학생회장을 도맡아 했고, 한 번도 쉬지 않고 고깃집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강아지 옷을 파는 인터넷쇼핑몰도 창업하는 의욕을 보였다. 엄마에게는 "뭐든지 혼자 다 알아서 해온", 그래서 "걱정이 없었던" 딸이었다.
"하루를 48시간처럼 보내는 애예요. 친구들이 (무안국제공항 계단 위에) 잔다르크네, 여장군이네, 민주처럼 열심히 사는 애를 못 봤다고 메시지를 적어두었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픈 거예요. 부모가 해준 게 없어서 너무 힘들게 살았나... 우리 민주가 제일 싫어하는 별명이 뭔지 아세요? '우리집 가장'이에요. 아빠가 농담으로 '우리집 가장 왔는가?' 하면 '내가 왜 가장이야? 아빠도 있고 언니도 있는데'라고..."

▲친구들이 무안공항 계단에 남긴 편지에 "여장부 이민주"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 소중한·유지영
그런 딸의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깜짝 놀랐다.
"친구가 많다는 건 알았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 같이 했던 친구들, 담임 선생님들까지 장례식에 정말 많이 왔어요. (몇 명인지) 셀 수도 없었어요. (민주) 아빠도 깜짝 놀랐어요. 친구가 많은 줄은 알았는데 가고 보니까 어마어마했더라고요. 발인 날, 아빠가 민주에게 존경스럽다고 말했어요. 우리 민주 대단하다고."

▲"너의 미래를 볼 수 없게 됐지만 거기서 하고 싶은 것 다 하렴." ⓒ 소중한
엄마의 생일이면 미역국을 끓여주고, 엄마가 좋아하는 무화과를 사주던 딸. 엄마는 이제는 보지 못할 딸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손수건을 적셨다.
"맨날 저에게 자기는 40대에 돈이 넘쳐나는 사주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민주는 40대에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비록 제가 민주의 30대, 40대, 50대를 볼 수는 없지만 거기서 가족들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고 싶은 곳 다 가면서 즐겁게 지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지 아니면 지옥이에요."
엄마의 바뀐 일상
엄마는 딸의 마지막 메시지를 2024년 12월 29일 새벽에 받았다. 딸은 같이 여행을 떠난 친구 박예원씨와 태국 공항에서 찍은 사진을 가족 단체카톡방에 올렸다.
엄마는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집에서 보자"라고 답했다. 민주씨는 언니에게 줄 과자 선물을 싸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딸의 마지막 메시지. 엄마의 "집에서 보자"는 말은 이뤄지지 못했다. ⓒ 유지영
"(참사 당일 민주) 아빠가 일찍 일어나서 목욕탕에 갔어요. 그런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뉴스가 뜨는데 시간대가 좀 이상하다고. (방콕에서 출발해서 무안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자주 있는 게 아니잖아요. 예원이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벌써 울면서 공항에 가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공항에 도착한 엄마를 공항 관계자들은 "유족"이라고 불렀다.
"급하게 공항에 들어갔더니 '유족분이시냐'고 묻는 거예요. 아빠가 '무슨 소리냐'고, '왜 유족이라고 표현하느냐'고 엄청 화를 냈어요. 다들 울면서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큰딸이 저에게 오는 거예요. 대성통곡을 하면서 소방관이 '다 죽었다'고 했다고, '이제 우리 민주 어떻게 하냐'고..."

▲생일에 딸이 끓여준 미역국 사진을 보며 엄마는 잠시나마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 유지영
엄마는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공항으로 간다. 잠이 드는 일이 어려워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그는 "무안공항에 갈 때 말고는 집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세상이 무서워서 못 나가겠어요. 뭐가 무서운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179명이나 죽었는데 너무 관심이 없다고 느꼈어요. 유가족들은 다 일반인이니, 무슨 법을 알겠어요? 부모들이 제일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이죠. 무엇 때문에 (참사가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처벌받을 사람들은 받고, 개선되어서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끔 했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3월, 딸은 갑자기 가족단톡방에 차 사진을 올렸다.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산 차였다. 민주씨는 자신의 이름 첫 글자와 차 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이 차를 '민코'라고 불렀다. 딸이 떠난 후 엄마는 종종 이 차를 운전한다. ⓒ 소중한
추모관 창밖으로는 봄꽃이 피고 있었다. 엄마는 꽃을 보고는 눈물을 쏟았다.
"날씨는 이렇게 좋고, 꽃이 여기저기서 피는데 자식이 없으니까 더 속상해요. 남은 아이들이 있고, 앞으로도 살다 보면 기쁜 일이 있겠죠. 그래도 이제 12월 29일 이전처럼 그렇게 기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참사 아카이브 - 100일째 수취인불명] https://omn.kr/2cuq6

▲민주씨가 어릴 때 그린 '20년 후 내 모습' 그림. 이 그림에서도 민주씨는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 소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