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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넷플릭스

(*이 기사는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우리 집엔 완벽한 최루물이었다. 20대 딸은 '도대체 왜?' 싶게 눈물을 철철 흘리며 매회가 끝날 때마다 부모님께 효도를 다짐했다('MZ'들은 이 드라마에 관심 없다던데...). 사춘기를 지나며 개과천선한 후 상당히 착해졌는데 뭐가 마음에 걸렸을까. 그렇다면 이 드라마, 자식들 효도 갱신용으로 매우 바람직한 것일까.

최루물의 절정은 남편이 보여줬다. 드라마 내내 간간이 슬쩍 눈물을 훔치는 듯하더니, 관식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아예 티슈를 대령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게 아닌가. 그는 관식에 완전히 이입하고 있었다. 드라마가 종반으로 흐르며 약간씩 김이 빠지던 나와 달리, 그는 점점 더 김을 채우고 있었다. 마침내 가족에게 온전히 헌신한 관식이 죽으며 클라이맥스에 오르자, 수증기를 빼듯 눈물로 정화 의식을 치르는 듯했다.

남편의 격렬한 이입에 야릇한 감정을 느끼던 나는 딸의 우스갯소리로 그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요즘 '폭싹' 땜에 'X저씨'들이 자기가 관식(박보검/박해준 분)이라고 우긴대. 사실은 '학 씨'(부상길 역/최대훈 분)면서."

딸의 개그에 참을 수 없는 재치기를 하듯 웃음보가 터진 나는 "뭔 소리야. 대한민국에 관식이가 어디 있는데. 관식이 같은 가부장이면 나는 인정한다"고 받아쳤다. 그때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반격. "그럼 니네는 애순이고?" '후훗. 이것이 당신의 본심이었구나.' 나는 속엣말을 했고, 그저 지긋이 속마음을 감추지 못한 남편을 바라봤다.

둘 다 노동에 헌신했지만... 관식과 상길의 결정적 차이

즉각 설전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분명, 말다툼에 전의를 상실해가고 있는 나의 나이 듦이요, 둘째는 남편을 향한 연민이다. 내 남편은 분명 관식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노동에 몸을 갈아 넣었는지 안다. 피난민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들어온 소리, '남자는 눈뜨면 나가서 일해야 한다',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는 그의 삶을 지배하는 노동관이 됐다. 그는 관식만큼이나 '무쇠'처럼 일하며 몸을 해쳤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우리 세 식구 살 수 있다'는 나의 갖은 만류와 한숨을 뒤로 한 채 미친 듯이 일했다. 그러느라 잃은 것도 적지 않다.

관식은 5060 세대보다 훨씬 앞선 세대지만, 남편을 비롯해 나름 열심히 산 1960년대생 아저씨들이 관식에 이입하는 현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드라마의 시간적 배경으로 나오는 'IMF 시절'과 '고개 숙인 아버지' 신드롬은 당시 남성들의 패배감을 적극 옹호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잔인한 약육강식 경쟁에서 밀려난 아버지들의 설움을 진지하게 어필한 것인데, 이는 당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것이 아버지(남성)만이라 착각하게 만들었다. 금명같은 여성 노동자들도 있는데 말이다.

멀쩡하던 가장들이 우르르 무너졌다는 IMF에도 아버지 관식은 바다에서 어디로 달아나지 않는 고기를 잡으며 가장 노릇을 했다. 뼈가 부서져라 일하며 하루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이는 사실 믿기지 않는 절제다. 노동을 '무쇠'처럼 할 수는 있겠지만, 한눈을 팔지 않기란 거의 도인 수준이다.

관식보다 현실적인 가부장을 반영하는 '학 씨'를 연발하는 부상길도 노동엔 꽤나 진심이다. 관식 급은 아니지만 눈뜨면 일해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그의 노동관은 관식처럼 지순하지 않다. 그의 노동은 남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 뱃일로, 남성다움의 과시이자 가족들에게 '누구 덕에 쌀밥 먹냐'를 유세할 수 있는 권위의 도구다.

상길과 유사한 아버지들이 관식에 이입하는 것은, 시대적 피해의식의 세례를 지나치게 받은 일종의 자기 연민적 착각이거나, 도저히 관식일 수 없으나 관식이 아내나 자식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이 고픈 열등감의 반영일 것이다. 내 남편이 '너도 애순은 아니다'라는 타령을 한 것도 관식처럼 대접받지 못함에 대한 소외감의 산물이라는 것을 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대다수 여성들이 지순한 애순은 아니다. 애순의 '아내 됨'은 지면이 짧아 패스하겠다. 하지만 당시 애순 같은 모성은 보편적이었다. 드라마에서 애순보다 관식이 도드라진 것은, 애순이 상당히 보편적 모성을 보여준 반면, 관식의 부성은 그 사례를 찾기 힘든, 특히 딸의 성공에 올인하는 극히 드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관식 같은 아버지가 어디 있냐'는 볼멘소리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남편은 처자식을 위해 처자식을 버리며 일했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넷플릭스

'관식앓이'를 한 내 남편은 처자식을 위해 처자식을 버리며 일했다. 나는 일하며 혼자 딸을 키웠다. 나도 아이도 외로웠다. 남편은 밤 10시 전에 귀가하는 일이 없었고, 중노동의 과실은 가족이 아닌 친구 또는 동료들과 나누었다. 평생 중노동을 하며 한눈 팔지 않고 아내와 자식을 돌본 관식과 달리, 남편은 때때로 음주와 유흥으로 중노동을 보상받고자 했다.

처자식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는 존재들이니 후순이었다. 딸이 사춘기가 되며 반기를 들고서야 그는 아차 했다. 정도는 다르지만 다른 가장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식에 이입했다는 당신의 실체는 관식에 가까운가, 상길에 가까운가.

드라마는 아내나 아이들을 학대하고 때리는 실상 가정폭력범인 상길조차 매우 애틋하게 바라본다. 평생 폭력으로 집을 지배해 온 상길은 아내의 황혼이혼 요구로 정신을 차리고, 마침내 그의 폭력이 결국 외로움과 두려움의 소산이었다고 딸의 언어로 해방시켜주면서 나쁜 가장의 죄는 그렇게 용서받는다. 평생 폭력을 저지르던 가부장이 개과천선하는 경우는 관식이 하늘이 내린 사랑쟁이인 것만큼이나 판타지다. 이리하여 드라마는 모두가 행복한, 특히 가부장이 만족할 만한 결말로 가족 판타지를 완성했다.

세상에 없는 관식의 오롯한 가족 사랑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그가 직면한 것이 가난한 부모에 대한 금명·은명의 회한이었다는 것은 뼈아프다. 이는 평생 바다를 파 먹고 산 어부 부부인 관식과 애순의 자식 사랑이 이미 급속한 산업화가 만든 자본주의의 격랑 속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가 만든 상대적 박탈감은 관식과 애순이 매일 몸서리치게 마주한 저 넓은 제주 바당의 파고보다 압도적이었다. 더는 돈 없이 사랑만 주어서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는 세상에 놓여 있었다.

관식과 애순의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희생적 자식 사랑도, 부모의 헌신을 깨닫고 책임감을 가지는 금명과 은명의 쌍팔년식 효심도, 무너지지 않는 지지대라고 믿었던 가족도, 이제 모두 효력을 다한 시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토록 <폭싹 속았수다>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고 믿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폭삭속았수다#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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