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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마지막 화까지 공개됐다. 전 국민, 아니 세계인이 드라마의 매력에 '폭싹' 빠졌다.

1950년대에서 출발하는 드라마의 주된 배경은 제주다. 제주어로 된 제목에서 어떤 내용인지 일부 짐작이 가능하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어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 넷플릭스

드라마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오신 조부모님, 부모님에 대한 헌사이자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자녀 세대에 대한 응원가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한다.

주연 아이유(극 중 애순)와 박보검(극 중 관식)의 환상 케미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연출의 짜임새 등 드라마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도 이주 10년차 제주도민인 내 눈에 띈 포인트 세가지를 뽑아봤다.

고치 살고 고치 죽는 해녀들

해녀들은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 제주말로 '고치 살고 고치 죽는다'고 한다. 물질을 할 때는 어촌계별로 모여 같이 작업을 한다. 물에서 나오면 불턱(일종의 야외 탈의실, 해녀들이 물질하며 옷 갈아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공동체 공간)에 모여 같이 몸을 녹인다. <폭싹 속았수다> 1화에 이런 풍경이 자세히 나온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 ⓒ 넷플릭스

작업물도 서로 나눈다. 많이 잡은 해녀가 있으면 적게 잡은 해녀의 망사리에 나눠준다. 제주에서는 이를 '조냥'이라고도 한다. 가진 것이 있거나 없거나 서로 나누고 돕는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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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기가 고생해 잡은 걸 나눠주기 싫은 이도 있을 것이다. 실제 드라마 속 애순이의 엄마 광례(염혜란 분)가 그랬다. 광례는 가진 재산도 없이 가난하고, 남편도 일하기 싫어하는 한량이라서 기댈 것은 제 몸뚱아리 하나다.

다른 해녀들이 물에서 나와 쉴 때도 광례는 전복 하나라도 더 따기 위해 찬 바닷물에 몸을 담근다. 그렇게 힘들게 따온 전복을, 아픈 선배 해녀인 한림할망에게 나눠주려니 성질이 나는 것이다. 광례는 소리친다.

"내가 거기(선배 해녀) 멕이자고 내 목숨 내놓고 맨날 저 저승길을 들어가? 내가 내 새끼 멕이자고 내 숨 팔어 살지, 남의 할망 멕이자고 점복(전복)을 따대?"

 애써 따온 전복을 나누지 않으려는 광례
애써 따온 전복을 나누지 않으려는 광례 ⓒ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다른 선배와 동료 해녀들은 광례의 욕심을 나무란다. 애초에 물질도 선배 해녀들에게 배웠기에 할 수 있는 것이고, 나이 들고 숨병(잠수병) 걸려 앓아누운 선배 해녀를 공동체에서 함께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느만 약아서(너만 약았어)? 느 물질 누구한테 배완? 그 자식덜 누구 덕에 멕여 살려?"

어떻게 보면 이런 조냥 정신 덕분에 해녀들이 무리하지 않고 물질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많이 따든 적게 따든 어차피 공동의 몫이 있으니 적당히 물에서 나올 수 있다. 무리해서 물질을 하다가는 바닷속에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고, 무서운 잠수병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녀들의 세계에서는 다른 해녀들과 보조를 잘 맞춰야지, 혼자만 열심히 일한다고 칭찬 받지 못한다. 드라마에서 광례 또한 "욕심이 잠녀 잡는다", "잠녀가 물 낯설어 죽냐, 욕심에 죽지"라는 다른 해녀들의 잔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무리해서 물질을 하다가, 광례는 결국 잠수병에 걸려 스물아홉 일찍 목숨을 잃는다.

밥 각자 떠먹는 '낭푼밥상'

제주에서 남자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했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가 있거나, 조업 중에 풍랑을 만나면 다치거나 죽기도 했다. 일을 나가지 않는 기간에는 애순의 새아버지처럼 한량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이러니 일상에서는 여자들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필수였다.

해녀들만 해도, 물질만 하지는 않았다. 어린 애순이 고사리손으로 양배추밭을 일군 것처럼, 해녀들 또한 틈틈이 우영팟(텃밭)에서 농사도 지어야 먹고살 수 있었다.

여자들이 돈도 벌랴, 집안 살림도 돌보랴 바빠서 그랬는지 제주에서는 '낭푼밥상'이라는 식문화가 있었다. 밥상 한가운데 밥이 담긴 '낭푼(나무 푼주)'을 두고 각자 떠먹는 방식이다. 낭푼밥과 간단한 반찬 몇 가지, 국을 두고 둘러앉아 먹는다. 애순이네 집에서도 식구들이 낭푼밥상을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애순이네 집에서 먹던 '낭푼밥상'의 모습
애순이네 집에서 먹던 '낭푼밥상'의 모습 ⓒ 넷플릭스 화면 갈무리

차리고 치우기도 쉽지만, 낭푼밥상에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손님이 오더라도 국만 뜨고 수저를 놓으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 가난해도 함께 나눠 먹는 제주의 공동체 정신이 엿보인다. 요즘은 제주에서도 낭푼밥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간혹 향토음식점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메뉴다.

제주 어촌계장의 파워, 어느 정도냐면

성인이 된 애순은 '학씨' 부상길과 어촌계장 자리를 놓고 겨룬다. 어촌계장 시절 부상길은 위세가 대단했다. 어촌계장 선거 기간이 되자 계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돌리는 등, 계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제주의 바닷가 마을에서는 어촌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촌계에 속하지 못하면 물질도, 조업도 할 수가 없다. 실제로 요즘 제주에서는 해녀학교를 통해 젊은 해녀들이 꽤 양성되고 있지만, 어촌계에 가입하지 못해 정식 해녀로는 활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질을 할 줄 알더라도 직업으로서의 해녀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드라마에도 볼 수 있듯 해안가 궂은일은 여자들이 도맡아 하지만 어촌계장은 대부분 남자가 차지했다는 상황이다. 실제 십여 년 전 육지에서 제주에 살기위해 왔던 내 가까운 지인은, 물질을 배워서 해녀가 되고자 했다가 어촌계 반대로 포기해야 했다.

당시에는 해녀학교도 없어서 마을의 해녀 할망들에게 직접 배웠다. 그는 정식으로 해녀로 활동하기를 바랐고, 물질을 가르쳐준 해녀 할망들은 모두 좋다고 했다. 그러나 어촌계장을 비롯한 하르방(남자 어른)들이 반대해 좌절됐다고 한다. 제주 사람이 아닌 외지인이라는 게 이유였다. 결국 해녀를 직업으로 삼지는 못했다.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넷플릭스

오늘날 제주에서도 어촌계장은 권세 있는 자리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업을 하지 않는 일반 주민들에게는 이장의 존재감이 크다. 마을마다 2~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이장 선거 기간은 대선, 총선을 방불케 한다. 선거 유세 현수막이 나붙고 집집마다 우편함으로 선거 홍보물이 들어온다. 이장 후보가 집집마다 직접 방문하며 얼굴 보며 명함을 돌리기도 한다. 다른 후보를 비방하는 흑색선전이 펼쳐지는 경우도 있다.

이장이 되면, 마을 운영과 관련해 이런 저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고 명예도 얻는다. 마음먹기에 따라 잇속을 챙길 수 있는 자리인 것도 사실이다. 어촌계장 혹은 이장의 슈퍼파워는 어촌계, 마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제주 사회 공동체성의 명암을 엿보게 한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향수

서로 돌보고 지탱해 주는 공동체 문화는 어려운 시절을 극복하게 도와준 힘이지만, 때로 집단주의로 개인을 억압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는 오히려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공동체가 파괴된 곳이 많다. 아파트에 살면 당장 옆집 윗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힘들게 물질해 온 전복을 나누기 싫어하던 광례였지만, 해녀 이모들은 끝까지 애순을 '광례 똘(딸)'이라고 부르며 유년기 어린 시절부터 아이 낳고 엄마가 된 뒤까지 평생 그를 곁에서 챙겨준다.

그 덕에, 서울대에 진학하며 육지로 올라간 애순의 딸 금명은 고향 제주에서처럼 서로 보듬는 공동체가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다. 제주의 이 공동체는 마을이기도 하고, 대가족이기도 하고, 작게는 애순이네처럼 끈끈한 가족 간의 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애순과 관식의 삶을 그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애순과 관식의 삶을 그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 넷플릭스

한편, <폭싹 속았수다>의 기가 막힌 영어 제목 또한 화제가 되었다. <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다. 영어에는 "When life gives you lemon, make lemonade"라는 표현이 있다.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마냥 좌절하고 있지 말고 긍정적으로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표현에 제주 특산품 귤(Tangerine)을 넣어 제주색을 살렸다.

삶이 시디신 귤을 건네더라도, 이를 달콤한 귤차로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폭싹 속았수다>는 그 비결이 힘들 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시점이 제주 4.3 추념일이다. 4부가 공개되고 일주일 뒤가 4.3인 건 우연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드라마에 '폭싹' 빠졌던 우리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제주 4.3을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폭싹속았수다#제주해녀#낭푼밥상#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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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이후 쭉 제주에서 살고 있다. 2021년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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