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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롱 시민기자는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2022년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린 후 <오마이뉴스>에 '이태원 참사 생존자의 이야기' 연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전하는 이태원 참사 '그 이후'의 삶에 함께 귀기울여 주세요.
'선생님, 제 마음에 봄이 올까요?'

'언제쯤 괜찮아질까요'라는 말을 의사선생님께 이리저리 돌려 물어보는 재주가 생겼다. 2023년 11월, 그때는 '봄은 도대체 오긴 오냐'는 질문을 그렇게나 많이 했더랬다. 내게 놓여진 겨울은 너무 길고 어두웠다.

바싹 말라버린 내 마음에 과연 봄비가 내리고, 따스한 훈풍이 불까. 하필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북토크를 위해 가야 하는 서점 이름이 '책봄'이었다. 책을 세상에 내놓은 뒤 지역에서 하는 첫 북토크였다. 따뜻한 내 마음의 봄을 기대하며, 겨울의 시작점에 달려간 구미. '겨울이 끝나긴 하는 건가' 의심하는 마음이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것을 틀어막으며 달려갔던 책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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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역에서 내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나를 환영하는 것은 '라면 냄새'였다. 1년에 한 번, 구미에서 크게 열리는 전국적인 라면 페스티벌이라고 했다.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고, 온갖 이들이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덕분에 역 앞의 온도는 훈훈했다. 그래서 일까, 구미라는 도시는 마음이 녹기 전에 몸을 먼저 녹여준 곳으로 기억된다.

라면페스티벌을 뒤로 하고, '책봄'으로 향했다. 서점에 들어섰을 때, 벽에 '김초롱🖤'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북토크 당일 책봄 서점 구미 책봄 서점의 북토크 당일의 모습
북토크 당일 책봄 서점구미 책봄 서점의 북토크 당일의 모습 ⓒ 책봄서점

독립서점의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서점의 주인부터 손님까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가치관이 뚜렷하고, 옳고 그름의 정의가 명확하다. 확실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확실하게 응원하며 무엇보다 확실하게 사랑을 준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책봄에서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했지만, 예상외로 간단하게 정했다. 확실하게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니까, 사랑의 대상이 있을 것이라는 나의 확신. 각자의 덕질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간단하게 아이스브레이킹 해볼까요? 덕질 하시는 분?' 묻자마자 모두가 손을 들었다. 예상했던 풍경이 날 웃게 했다.

예상 범위를 벗어난 것은 덕질의 범위와 역사였는데 변진섭, 서태지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바다 건너 영국의 밴드, 미국과 영국의 영화배우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샤이니, 로운 등으로 이어지더니 국악 덕후의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상담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한 참가자는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이 그때그때의 덕질 대상이라, 자신은 1년마다 덕질의 대상이 바뀌는 것 같다'며 감동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말을 이어갔다.

"덕질을 이야기로 북토크를 시작한 이유가 사실은 따로 있어요. 마음이 많이 아프게 되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져요. 저도 덕질로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던 사람인데, 더이상 누군가를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끝내는, 자기 자신마저 사랑할 수 없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그 에너지가 없어 그 어떠한 사랑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누군가를 덕질할 수 있고 그 사랑을 잘 간직하고 계시다면, 잘 살고 있다는 뜻 일 겁니다. 오늘 북토크는 참사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책과 저의 이야기를 통해서 참여하신 분들의 마음 건강을 체크해 보고, 나의 고통은 무엇인지 정면으로 바라보고 확인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요."

나를 돌봐주는 것, 나만이 가능한 일

 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는 게 내가 가장 바라는 바였다.
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는 게 내가 가장 바라는 바였다. ⓒ paradite on Unsplash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참사에 대한 이야기도 맞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려가는지, 또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서술해 나간 책이기도 했다.

특히 마음의 병인 우울증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까지 현대 사회에 가장 중요한 정신과적인 질환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특정한 사람들만 이러한 병들을 겪는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리는 인생에서 참사 같은 커다란 고통을 가져본 적이 있음을 인지하고 돌아보길 바랐다.

나도 마음이 아플 수 있다, 나에게도 이런 병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린다면, 참사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더 나아가 유가족의 슬픔까지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너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는 게 내가 가장 바라는 바였다.

"나와 내 친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매스꺼움과 울렁거림을 느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것이 충격으로 인한 즉각적인 트라우마 반응이었다."

-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p.42

"참사 직후에 속이 안 좋고 울렁거리는 것을 보고 빈속이라 그런가? 당이 떨어졌나? 생각하기만 했어요. 병원에서 즉각적인 트라우마 반응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아프다는 것을 처음 직면한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사람이 큰 충격을 받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속이 안 좋거나 소화가 안 되는 증세를 겪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지금 내 마음이 너무 안 좋나?'라고 생각하지 못 한다는 것 입니다.

저는 꼭 그럴 때, 여러분의 선택지에 정신과 진료가 포함되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과 진료를 통해 불안도를 낮추고, 신경 안정을 도우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수 있고 전문의와 상담해서 약물치료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확인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울증과 PTSD의 경우 약물치료가 내게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약물에 대한 두려움을 나 또한 갖고 있다가 이겨낸 이야기 등을 편안한 분위기에서 풀어냈다. 참여하신 분들의 얼굴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각자의 시간을 갖고 자신이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떠올리는 듯했다. 어떤 분은 남들 모르게 눈물을 계속해서 흘리시기도 했는데, 30분을 넘게 흐느끼는 눈물을 더 이상은 외면하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왜, 그렇게 서럽게 우세요'.

자신의 고통은 가족이라고 대답했던 그 분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또르르 눈물이 흐르고, 둑이 툭 하고 터져나오 듯 고백하던 그 얼굴을 기억한다. 그 고백을 하는 순간에, 아마도 자신을 진정으로 만났던 것은 아닐까. 나를 만나, 나를 돌봐주는 것, 나만이 가능한 일. 내가 아플 때, 나를 잘 보살펴줄 의무와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내게는 그 계기가 참사였고, 북토크에 참여한 독자들은 나의 책이 계기가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계엄 이후, 초롱씨처럼 병원에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시간을 건너, 2024년에 내게 우스운 일이 생겼다. 누구보다 자신 있게 정신과 방문을 선택의 옵션에 넣어 고려하시라고 말하던 2023년의 나는, 내게 다시금 PTSD가 발현될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날처럼 그저 평범한 날 중 하나였던 2024년 12월 3일, 전혀 예상치 못하게 생방송으로 계엄령을 보게 되었다. 밤새도록 뉴스를 끄지 못했고 속이 울렁거려 뜬눈으로 밤을 샌 후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최근 심해진 이명 때문에 어지러운가 싶었다. 아무 이상 없다는 말에 바로 밑에 층에 있는 내과를 찾았고, 그 다음으로 신경과까지 방문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권유 받은 곳이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심한 불안 증세가 시작되면, 원인을 알 수 없게 신체적 불편감이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경우, PTSD가 다시 한 번 건드려져서 그날 밤 숙취와도 같은 울렁증이 지속되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나의 주치의 선생님께 했던 말이 기억난다. 잘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병원을 다시 찾아오게 만든 세상이 원망스럽다고. 어디에 원망을 해야 하느냐고, 주치의 선생님의 답변이 내 마음에 선명히 새겨졌다.

"계엄령 이후, 초롱씨와 같은 증상으로 내원하시는 분들 정말 많아요."

구미에서 만난 독자들을 12월 3일 이후로 자주 생각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그날 밤의 공포와 불안감은 다들 괜찮으셨을까요'. 그날 우리의 북토크를 기억해주기를, 그들의 선택지에 꼭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이 유효하게 존재하기를 바랐다.

덧붙여 말하자면, 계엄령은 모든 국민들의 마음을 베어버린 깊은 생채기가 맞다고 전하고 싶었다. 이른바 '내란성 우울'을 겪는 국민 모두는 공적 우울을 겪고 있는 것이란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내게는 참사와도 같은 충격이었으니, 어쩌면 2년간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은 사회적 참사를 2번 겪은 것일 테다.

헌법재판소는 1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기일이 오는 4일 오전 11시로 정해졌다고 발표했다. '참사에 대한 유일한 치료는 진상규명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계엄령으로 인해 상처받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파면'이라는 이야기를 꼭 보태고 싶다.

사회적 혼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도려내지 못한 뿌리 깊은 인자가 시간이 지나 또다른 재난을 일으킬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모두 알고 있다. 10.29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우리에게 계엄 사태가 일어났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2023년 11월 구미의 북토크. 세 시간가량의 사랑 가득한 북토크가 끝나고, 어느덧 내 두 손은 독자들의 편지와 마음을 담은 선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분들을 뒤로 하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피로가 몰려와 가는 내내 꾸벅꾸벅 졸았고, 집에 와서 들려 보내주신 보따리를 풀었다.

'작가님, 저희 아버지께서 전라도에서 직접 지은 햅쌀이에요. 직접 지어드리고 싶으나, 그럴 수 없으니 예쁜 집 모양의 통에 햅쌀을 넣어서 전해드려요.'

한 독자의 편지는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이가 왜 예쁜 집 모양의 통을 골랐는지, 왜 쌀을 넣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책봄 서점 북토크 책봄 서점에서 독자들과 북토크를 하던 모습
책봄 서점 북토크책봄 서점에서 독자들과 북토크를 하던 모습 ⓒ 구미서점 책봄

"나는 계속 집에 가고 싶었다. 참사 당일 새벽부터 계속 집에 가고 싶었다. (중략) 요즘 유행하는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라는 농담조의 말과는 결이 달랐다. 집에 왔는데, 집이 없었다. 편하지도 않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찾아 해매는 심정인 내게 모든 것은 귀찮은 소음일 뿐이었다."

-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p.45

"선생님은 내게 여전히 집 밖이 무섭냐고 물었다. (중략) 실은 집조차 무서웠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냥 모든 게 어느 순간 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실내 '공간'은 다 무서웠고 버스나 지하철, 택시까지 모조리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p.56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나요?"
"아 그게...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는 게 아니고, 그저 소화하기가 어려워서 소화가 잘 되는 액체류만 먹고 있어요."
"우리는 그걸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 한다고 표현해요."

-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p.66

참사 이후 모든 시공간이 무너져 내려서 집이 있지만, 집을 잃은 나였다. 식사를 하지 못해 액체만 삼키던 그때의 나였다. 따스한 집을 되찾기를, 그 안에서 밥도 잘 먹고 정말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서울에 도착했지만, 오랜만에 밥솥을 꺼내어 쌀을 씻고 밥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라고 되뇌이며 쌀을 씻었다. 이미 눈은 퉁퉁 부어 있었지만 마음이 퉁퉁해져 부자가 되었으니 괜찮았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다음 편지를 읽었다.

'작가님, 라면 페스티벌에서만 파는 당일에 튀긴 라면이에요. 서울에 도착하면 늦은 시각이겠지만, 꼭 드셔 보세요. 정말 맛있을 거예요. 구미 라면 페스티벌에서만 살 수 있는 거예요.'

책봄 사장님의 선물이었다. 갓 튀긴 라면을 주고 싶어서, 라면 페스티벌에 얼른 다녀와 구매해왔다고 했다. 부은 눈이 더 붓기 시작했다.

'아이참, 라면 물을 올려야지 별 수 있나.' 보글보글, 냄비의 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내 마음도 녹고 훈기에 딱딱하게 굳어있던 모든 것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라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쩐지 냄새부터 다른 것 같다며 혼자 되게 좋아했다. '이게 갓 튀긴 라면이구나, 와 진짜 맛있다. 국물부터 맛이 달라'.

정말, 정말로 맛있었다. 튀긴 지 얼마 안 됐으니 얼마나 맛있겠는가. 라면을 다 먹어갈 때 쯤, 햅쌀 밥이 맛있게 지어져 증기를 뿜었다. 바로 열어 냄새를 한번 맡고, 숟가락으로 먼저 맛을 봤다. 달았다. 달디 단 내 햅쌀. 밥 색깔은 왜 그렇게 뽀샤시 하고 윤기가 나게 예쁜 건지 원. 안 먹을 수도 없게 말이야. 내일 얼굴 10배로 붓겠네- 하고, 바로 라면에 밥도 말았다.

참사 이후 가장 행복하게 했던 식사였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던 사람들. 그들은 나를 그렇게 먹였고, 결국 살려냈다.

훈풍이 분다, 봄은 반드시 온다

윤석열 즉각 파면하라! 지난 3월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인근에서 열린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윤석열 즉각 파면하라!지난 3월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인근에서 열린 내란 수괴 윤석열 즉각 파면 긴급행동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참사 이후 나는 아주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그 이전보다 많은 것이 보이고, 많은 것이 들리며 많은 것을 가슴과 기억에 새기게 되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덤으로 찾아온 변화였고, 그 변화를 나는 끔찍이 싫어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럴 때는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떠오르는 좋은 기억들, 그때의 심장 소리, 나를 반겨준 고마운 마음들. 예민함이 나를 고통스럽게도 했지만, 예민함이 나를 치유한다. 살다가 가끔 또 다시 힘들면, 눈을 감고 과거의 치유 받았던 장면을 생각한다. 그러면 그 기억들이 여지없이 현재의 나를 또 치유해준다. 삶은 역시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하나를 내어주고, 하나를 얻게 해주는 삶.

라면과 햅쌀과 그들의 숨과 눈물과 말들로,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날 치유 받은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 내 안에, 그리고 그들 안에.

4월 첫 주, 훈풍이 분다. 봄은 반드시 온다. 광장의 사람들은 봄을 만나기보다, 만들어낼 것이다. 다시 한 번 라면을 끓이고 싶다. 허기진 사람들이 모여 광장에서 다같이 라면을 먹고 싶다. 생채기 난 가슴을, 함께 살려내면 좋겠다.

#이태원참사#헌법재판소#윤석열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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