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미역, 바다를 품은 초록의 숨결
강릉 등명해변의 바다는 녹색 캔버스 위에 검은 물감을 뿌린 듯한 모습이다. 투명한 물속에서는 돌미역이 부드럽게 일렁이며, 햇빛을 받아 은은한 녹빛을 머금는다. 거센 파도가 지나가도 바위를 부둥켜안은 돌미역은 자연의 흐름 속에 녹아들어, 자연이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한다.

▲암반과 미역등명해변 앞바다 암반에서 자라고 있는 돌미역(드론촬영) ⓒ 진재중
창경바리, 첫 돌미역수확
2025년 4월 6일, 올해 들어 첫 돌미역 수확이 강릉 정동진, 등명 바닷속에서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지역 어민들의 삶을 지켜온 전통어법 '창경바리'가 있다.
창경바리는 국가중요어업유산으로 강원특별자치도에서는 유일하다. 강릉 심곡, 등명해변에서 전승되고 있는 창경바리어업은 땟목을 타고 창경으로 물속을 들여다보면서 돌미역을 채취하거나 성게, 전복 등을 잡는 친환경어법이다.
등명해변처럼 암반이 많고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때배를 이용해 주로 1명이 돌미역을 채취하고
정동진이나 심곡처럼 수심이 10여m 이상인 곳에서는 2-3명이서 동력선을 이용, 수확한다.
첫 수확에 나선 정동진 어촌계장 정상록(80)씨는 "창경바리 방식은 단순한 어업이 아니라 지역의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중요한 작업"이라며, 올해는 풍성한 수확으로 마을에 기쁨이 가득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창경바리, 미역수확모선과 때배를 이용, 전통어법으로 미역을 수확하는 정상록 어촌계장(드론촬영) ⓒ 진재중
때배, 창경, 그리고 낫대의 조화
전통적인 돌미역 수확에는 때배, 창경, 낫대 세 가지 도구가 사용된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도구는 바로 '낫대'다.
낫대는 낫을 대나무에 묶어 만든 채취 도구로, 무게감을 주기 위해 대나무 끝에 박달나무를 붙여 사용한다. 이 방식은 돌에 붙은 미역을 감아 올리듯 조심스레 베어내는 것으로, 미역을 훼손하지 않고 깨끗하게 수확할 수 있어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전통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창경바리 작업은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고된 과정이다.
작업자는 때배 위에 엎드려 유리 거울로 바닷속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작업한다. 불안정한 자세와 예기치 않은 파도는 큰 위험을 동반하며,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또한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한 달 중 실제로 조업이 가능한 날이 10일 남짓에 불과한 경우도 많다.
오늘도 강한 바닷바람 탓에 작업을 멈췄다는 정상록씨는 "바닷일은 정말 예측할 수 없습니다. 새벽엔 바람이 없어 나왔는데, 갑자기 육지로 불어오는 바람이 파도를 일으켜 어쩔 수 없이 돌아왔어요. 돌미역 채취는 하늘과 함께하는 일이죠"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미역을 채취하는 어민등명해변 앞바다에서 미역을 수확하는 정상록 어촌계장(드론촬영) ⓒ 진재중

▲창경바리, 미역수확낫대를 이용, 돌미역을 건져 올리고 있다(수중촬영) ⓒ 진재중
천혜의 해역, 생명이 숨 쉬는 바다 - 강릉 등명해변
강릉 정동진 북쪽에 위치한 등명해변은 단순히 풍경만 아름답지 않다. 이곳은 바다 생명들이 서식하는 '천혜의 해역'으로, 해조류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동해안의 대표적인 생태 보고다.
등명해변의 해저는 대부분 암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중 생물이 안정적으로 붙어 살 수 있는 이 바위 지형은 돌미역, 다시마, 감태 등 각종 해조류의 서식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조류와 파도, 그리고 암반의 조화는 해조류가 건강하게 자라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돌미역이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고,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고루 갖춰진 곳. 바로 그곳이 등명해변이다.

▲돌미역 채취암반이 잘 형성된 등명해변 앞바다에서 돌미역을 수확하는 어민(드론촬영) ⓒ 진재중

▲돌미역등명해변 앞바다에서 다른 해조류들과 함께 자라는 미역(수중촬영) ⓒ 진재중
맛과 질감 뛰어난 돌미역
등명해변에서 채취한 돌미역은 해발 200m의 산자락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연 건조된다. 약 보름간의 건조 과정을 거친 후, 전국 각지로 유통된다. 그 맛과 질감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미역건조해발 200m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건조되고 있는 돌미역 ⓒ 진재중

▲미역 말리기해풍을 맞으며 건조되고 있는 돌미역 ⓒ 진재중
자연과 공존하는 어업, 등명해변이 전하는 조용한 울림
강릉 등명해변의 맑고 투명한 바닷속에는 지금도 수많은 해조류들이 햇빛을 머금으며 자라고 있다. 초록빛 물결이 암반 위를 흐르듯 일렁이는 그 풍경은, 바다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조용히 들려준다.
전통 어업 방식인 창경바리가 여전히 이어지는 등명해변은, 오늘도 '생명의 바다'로서의 가치를 묵묵히 지켜가고 있다.
이번 돌미역 채취는 단순한 수확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해양 자원 관리와 전통 어업의 현대적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의미 있는 실천이자 기록이다.

▲전통어법, 창경바리등명해변 앞바다에서 창경바리로 미역을 수확하는 정상록 계장(드론촬영)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