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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 권우성

올봄에도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겹치면 작은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산불로 번진다. 정부와 지자체는 매년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헬기와 장비를 확보하고, 소방 인력도 총동원하지만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산불 발생 건수와 피해 면적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효율의 상징이다.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산불 대응의 방식" 그 자체다. 지금은 단순한 진화 중심의 접근이 아닌, 예방 중심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관리, 곧 '물을 심는 일'이 있어야 한다.

산불은 대부분 '불이 나기 쉬운 조건'에서 시작된다. 기후위기로 겨울과 봄철 강수량이 줄고 대기는 건조해졌으며, 산림의 토양도 갈수록 메말라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바람이 불고 불씨 하나만 튀어도 산불은 순식간에 번진다. 특히 야간이나 험지에서는 헬기나 차량이 접근하지 못해 대응이 늦어지기도 한다. 불이 나고 나서야 장비와 인력이 투입되는 방식으로는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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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해마다 반복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내가 제안하는 해법은 단순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이다. 바로 '물모이'를 만드는 것이다. 물모이는 산 속에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작은 웅덩이 또는 둔덕으로, 쓰러진 나무와 돌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서울 관악산과 노원 불암산, 강원 삼척 등에서 실제로 설치한 사례가 있으며, 이 물모이는 빗물을 머금어 산림의 토양 습도를 높이고, 동시에 초기 진화를 위한 수자원으로도 사용 가능하다.

이 물모이는 결코 한국만의 실험이 아니다. 유럽 슬로바키아는 2005년 대형 산불로 1만2000헥타르의 산림을 잃은 뒤, 전역에 걸쳐 10만 개 이상의 물모이를 만들었다. 그 결과, 대형 산불 발생률은 현저히 감소했고, 토양과 생태계도 회복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연강수량은 650mm로 한국(평균 1300~1400mm)의 절반 수준임에도 성공했다는 점은, 오히려 한국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모이의 장점은 명확하다. 설치비용이 저렴하고,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 유지 관리도 간단하다. 기업의 ESG 활동, 학교 환경 교육, 시민단체 봉사활동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무엇보다 물이 머물면 토양에 스며들고, 증발된 수증기는 다시 구름이 되어 비를 부른다. 이는 기후 조절, 지하수 보충, 생태계 복원 등 다층적 효과를 지닌다. 진화와 복구에 드는 수천억의 예산과 비교하면, 예방에 소요되는 비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산불을 '불로 인한 재난'으로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물로 막을 수 있는 재난'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이 없어서 불을 못 끈다'는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물을 미리 심어두는 일'은 상식이 되어야 한다.

산불 대응 방식도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기술 중심 대응만으로는 부족하며, 자연 기반 해법(Nature-based Solution)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중앙집중형 대응에서 민관협력형 분산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우리는 식목일마다 나무를 심는 국민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무가 황폐한 산을 울창하게 바꿨듯이, 이제는 '물'을 심어 산을 촉촉하게 유지할 때다. 산에 물을 심는 것이, 곧 우리의 삶과 자연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한무영씨는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입니다.


#산불#물모이#분산형산불방재#자연기반해법#새로운패러다임의산불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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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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