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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라니, 가지도 못하고 정보도 없는데?

요 며칠 새 흥미진진한 지리 책을 읽었다. 제목이 무려 <북한 지리지>(총 2권, 내숲 간행). 북한의 15곳에 관한 자연·인문 지리서다. 잠깐 북한이라고? 가지도 못하고 정보도 없는데?

이 책을 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전, 지리 서적(20세기 것만 아니라 19세기 대동여지도, 대동지지까지), 북한의 신문과 잡지에 나온 정보를 기본으로 편찬했다.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1 - 신의주시, 중강군, 삼지연시, 청진시, 김책시, 신포시, 함흥시 /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기획),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1 - 신의주시, 중강군, 삼지연시, 청진시, 김책시, 신포시, 함흥시 /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기획),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 ⓒ 내숲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2 - 해주시, 옹진군, 과일군, 순천시, 사리원시, 원산시, 세포군, 고성군 /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기획),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2 - 해주시, 옹진군, 과일군, 순천시, 사리원시, 원산시, 세포군, 고성군 /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기획),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 ⓒ 내숲

지도는 우리나라 국토지리정보원이 제작한 5만분의 1 지도를 기본도로 하고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지리전서>, <조선향토대백과> 등의 지리서를 보고 경계선을 조정하고 지명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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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위성 사진을 보고 지형을 파악하고 도로의 상태도 살펴 현지답사를 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완했다고 한다. 기후는 우리나라 기상청의 <북한 기상 30년보: 1990~2020>와 <북한 기상 연보 2023>에 나온 최신 자료들로 기후 그래프를 작성했다고 한다.

책에서 다루는 곳은 평안북도 신의주시, 자강도 증강군, 량강도 삼지연시, 함경북도 청진시·김책시, 함경남도 신포시·함흥시(이상 1권), 황해남도 해주시·옹진군·과일군, 평안남도 순천시, 강원도 원산시·세포군·고성군(이상 2권) 이렇게 15곳이다.

 박태성 북한 내각총리(맨 왼쪽)가 낙원기계종합기업소와 신의주화학섬유공장, 평양시 5만세대 주택건설지휘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2025.1.13
박태성 북한 내각총리(맨 왼쪽)가 낙원기계종합기업소와 신의주화학섬유공장, 평양시 5만세대 주택건설지휘부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2025.1.13 ⓒ 연합뉴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원산시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원산이라면 '원산폭격'의 그 원산? 맞다. 그 원산이다. 원산이 강원도라고? 훨씬 더 북쪽에 있던 도시 아니었어? 아마 나이가 있는 이들은 원산을 함경남도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원산은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강원도 행정 소재지가 되었다. 강원도 원산이 된 지 올해로 79년이다(어쩌면 북한에도 강원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아는 사람도 있겠다).

각 지역은 위치와 지형, 기후, 행정구역과 인구, 교통, 역사와 문화, 여행, 산업, 교육, 인물, 교류협력으로 나눠 살펴본다. 얼핏 보면 딱딱한 정보라 말랑말랑한 여행기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남교협)가 기획했는데 기초지자체 35곳이 참여한 남교협은 북한의 지방 도시와 실제 교류할 목적으로 이 책을 기획했다('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방정부는 북한과 직접 교류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교류할 상대 도시가 지닌 특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북한지리지> 1권 신의주시 편
<북한지리지> 1권 신의주시 편 ⓒ 내숲

그런데 이런 정보들이 꽤 신선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알려진 북한의 도시는 거의 평양이 유일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맞닿은 도시들, 춥기로 유명한 중강군, 동해안의 도시들 등 평양 중심에서 벗어나 북한의 지방 도시를 둘러보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겨울에 몹시 추운 북쪽 끝 지방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요즘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 그 지역도 여름 기온은 솟구치는지 등 절로 관심이 끌리는 대목이 곳곳에 있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처럼 남녀 가릴 것 없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이에 따라 '봄향기'라는 화장품이 잘 팔린다는 등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나 싶은 이야기들도 꽤 많다. 문학 작품에 나온 장소, 역사 인물, 전설도 재미있는 읽을 거리다. 일반 독자에게는 좋은 교양서가, 정책 기획자에게는 실무를 준비할 때의 지침서가 되는 책이다.

경부고속도로 타고 평양을 거쳐 유럽까지

무엇보다 지금 <북한 지리지>를 읽어야 할 각별한 이유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에 기대어, 군사적 긴장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들에 의해 시민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남북 만남이 이어져야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이 가능하다는 것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북한 지리지> 발간사에서

분단이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 평화로운 일상은 어렵다는 말을 새삼 공감하는 요즘이다. 분단은 일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런 표지판을 보게 된다.

 아시안 하이웨이(AH1) 표지판. 경부고속도로 도동분기점-북대구나들목 사이
아시안 하이웨이(AH1) 표지판. 경부고속도로 도동분기점-북대구나들목 사이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아시안 하이웨이 AH1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

뭐지? 이 도로가 중국을 거쳐 터키까지 이어진다고?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는 국제연합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가 1992년 아시아 육상교통기반 개발계획의 하나로 추진한 아시아 32국을 지나는 국제 도로망을 가리킨다.

표지판에는 한국 다음이 중국이지만 도로가 어떻게 북한을 건너뛰고 중국으로 이어지겠나. 간략히 쓰느라 그런 거고 구체적인 노선은 일본-부산-서울-평양-신의주-단둥-프놈펜-이스탄불-불가리아다. 현재 우리나라와 북한의 도로망이 단절되어 있어 연결은 안 되어 있다.

요즘 극우 세력이 반북·반중을 외쳐대는 통에 어수선해 어렵겠지만 언젠가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북한도 가고 중국도 가고 아시아 각국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도로는 아니지만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일본 도쿄에서 부산, 서울, 신의주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기차를 타고 간 남자들이 있었다.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과 동메달을 딴 남승룡이었다.

두 사람은 그해 6월 1일 도쿄에서 출발해 배로 부산까지 간 뒤 부산에서부터 기차를 여러 번 바꿔 타 17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손기정·남승룡에 앞서 화가 나혜석(1896~1948)도 1927년에 기차를 타고 파리에 갔다. 이렇듯 100여 년 전에는 기차로 우리나라에서 유럽까지 갈 수 있었다.

도로망도 세계 최고 수준이고 순수 국산 기술로 고속열차를 만들어 운행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기술력이라면 못 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80년간 분단되면서 대륙으로 가는 길이 끊긴 채 우리나라가 섬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아시아 대륙에 붙어있으면서도 섬나라가 되어 인접한 대륙의 국가들(북한, 중국, 러시아)과는 사이가 나쁘고 저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미국과만 친하게 지내는 게 앞으로도 가능할까? 더욱이 미국은 여러 나라의 주요 공장을 자국으로 가져오려고 하는 등 오로지 이익만 내세우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되어 버렸는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때 남북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사람 간 왕래도 활발했다. 특히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운영된 개성공단에서는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 북한의 노동력이 합쳐져 낮은 비용으로 높은 품질의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냈다.

국제 분쟁이 심해지고 윤석열 정부하에 남북 사이 대화가 완전히 끊긴 지금에야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만큼 꿈 같은 일이 됐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대륙에서 고립돼 미국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도 없다. 엄혹한 시절이지만 다시 남북이 교류할 날을 준비해야 한다.

시민들이 북의 도시를 이웃 동네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오가는 날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북한 지리지>를 발간한 남교협의 발간사에 나온 말이다. 특별히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2 - 해주시, 옹진군, 과일군, 순천시, 사리원시, 원산시, 세포군, 고성군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 (기획), 내숲(2025)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북한지리지 1 - 신의주시, 중강군, 삼지연시, 청진시, 김책시, 신포시, 함흥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북한지리지 편찬실, 전국남북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회 (기획), 내숲(2025)


#북한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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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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