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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북클럽 4기입니다.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글로 잘 담겠습니다.
바야흐로 책 읽기 열풍의 시대이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책 읽는 것을 힙하게 여기는 '텍스트힙' 현상이 유행하는 가운데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더해져 독서 열풍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이로 인해 SNS에는 서평, 필사, 서점 투어 등 독서 경험을 공유하는 게시물들이 넘쳐나고 있고, 젊은 세대의 도서 구매량도 증가했다. 온라인 서점 '예스 24'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4년 1020 세대의 도서 구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2% 증가했고, 2025년 1월에도 9.3% 상승했다고 한다.

Z세대의 이런 종이책 읽기 붐은 이제 다른 세대로도 확산되고 있다. 내 북스타그램 이웃 중에는 4060 세대도 많고, 도서관 동아리나 지역 독서모임에도 중장년층 이상의 참여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책 안 읽기로 유명했던 한국인에게 이런 변화가 찾아온 건 환영할 만하지만, 책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보여주기식 독서'에만 심취한 사람들이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물론 그렇게라도 책을 가까이하는 게 영상이나 숏폼만 보는 것보다 더 낫긴 하지만, 이왕 책을 읽을 거면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읽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맞춤형 책을 처방해 온 8년의 경험담

그런 면에서 <꼭 맞는 책>은 독자들에게 효율적인 독서법을 알려주는 좋은 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쓴 정지혜 작가는 편집자, 서점원, 북디렉터를 거쳐 2016년부터 한 사람을 위한 '사적인 서점'을 운영하며 1600명의 고객에게 독서 상담과 책 처방을 해왔다. 스스로를 '책 처방사'라고 부르는 저자는 책 추천이 '약국에서 파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상비약'이라면 책 처방은 '의사가 진료 후 처방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약'이라고 설명한다.

 <꼭 맞는 책> 정지혜(지은이)
<꼭 맞는 책> 정지혜(지은이) ⓒ 유유

그렇게 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책을 처방해 온 8년의 경험담을 저자는 이 책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수많은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르는 법,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법, 키워드를 활용하여 책을 큐레이션 하는 법 등 실용적 독서팁을 비롯하여 손님 개개인의 사연과 취향에 맞춰 책을 처방하는 방법까지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저자의 조언이다. 억지로 안 읽히는 책을 붙들고 씨름하기보다 3분의 1 지점까지만 읽어보고 내용이 어렵거나 자신과 잘 안 맞는다 싶으면 중간에 책을 덮어도 된다는 것.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그 책과 만날 기회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남은 부분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라는 것이다. 사람 간의 만남에 때가 있는 것처럼 책에도 '시절 인연'이 있어서 예전에는 별로라고 여겼던 책도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문득 떠오른 책이 있었다. 바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화려한 수식어로 도배된 이 책을 여러 번 읽으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과학서인지 평전인지 에세이인지 구분이 안 가는 모호한 내용으로 인해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번번이 포기하곤 했다.

그러다 작년에 이 책을 다시 읽었는데 지루한 초반부가 지나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놀라운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이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될 수 있다는 걸, 세상에서 당연시하는 범주 너머의 진실을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꼭 맞는 책>은 그동안의 독서습관과 취향도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실패 없는 독서를 하고 싶어서 고전이나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어왔는데 내가 너무 안전한 선택만 한 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독립서점에 대한 선입견도 내려 놓게 만든 책

우리나라에는 '하루' 평균 약 167종의 새로운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2023 한국 출판 연감' 집계 기준). 그중 대형 출판사나 유명 저자의 책만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대부분의 책은 잊힌다. 그래서 저자는 손님들에게 발견의 기쁨을 선물하기 위해 출간 후 오래도록 주목받지 못한 책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특히 개인이 운영하는 동네 서점에서 새로운 작가의 책을 발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최근 SNS 피드를 보면 독립서점을 방문한 이웃들의 후기가 자주 올라온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독립서점을 가본 적이 없다. 사실 기회가 몇 번 있긴 했지만 '굳이 가야 할까'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 서점이 영세한 규모이다 보니 진열된 책을 차분히 둘러보고 싶어도 눈치가 보일 것 같다는 생각(주인과 딱 붙어 있는 좁은 공간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과, MZ 세대로 붐비는 장소라 중년인 내가 가기엔 어쩐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진 게 방문을 주저하게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선입견을 거두게 되었다. 사실,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속 주인공 영주의 서점처럼 현실에서도 책으로 위로받는 따스한 분위기의 책방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공간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책은 그것을 읽는 이의 삶과 만나 화학 작용을 일으킵니다. 나이, 성별, 직업, 삶의 배경, 관심사, 욕구, 고민에 따라 책은 수십수백 가지 방식으로 다시 쓰이지요. - <꼭 맞는 책>, 정지혜

저자는 책과 사람이 만나면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 역시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동안 책을 읽으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고 이 책을 읽고도 변화가 생겼다. 독립서점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독서 경험이 더 넓어지고 잘 알려진 책만 읽던 독서 취향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다.

한강 작가는 2015년 한 강연에서 "독서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과정이며, 독서를 통해 저자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점점 개인화, 파편화되어 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종이책으로 회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이런 진중한 '만남'이 필요해서는 아닐까.

오랜만에 찾아온 독서 열기로 출판계에는 화색이 돌고, 독립서점들은 북토크, 독서 모임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며 문화공간으로 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고자극 콘텐츠에서 벗어나 보다 건강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 반갑다. 모쪼록 이 독서 붐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책과 가까워지길 바라본다.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14일 오후 대학 중앙도서관 앞 잔디광장에 차려진 야외도서관에서 가을의 낭만을 느끼며 책을 읽고 있다. 2024.11.14
전북대학교 학생들이 14일 오후 대학 중앙도서관 앞 잔디광장에 차려진 야외도서관에서 가을의 낭만을 느끼며 책을 읽고 있다. 2024.11.14 ⓒ 연합뉴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꼭 맞는 책

정지혜 (지은이), 유유(2025)


꾸역꾸역은 '어떤 마음이 자꾸 생기거나 치미는 모양'을 뜻합니다. 책을 읽고 치미는 마음을 열심히 글로 잘 담아보겠습니다.
#텍스트힙#독서붐#독서열풍#꼭맞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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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와 책 리뷰를 적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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