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실크로드사전에 사인을 해 주는 정수일 선생
실크로드사전에 사인을 해 주는 정수일 선생 ⓒ 이상기

2025년 2월 24일 누구 못지 않는 한국인이지만 '이방인'같은 분이 세상을 떴다.

신문의 부고기사를 보자.

"문명교류 연구에 독보적 업적을 쌓은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전 단국대 교수)이 24일 밤 별세했다. 향년 91세. 정수일 소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명교류학자로, 이슬람 연구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평생 동서문명의 접점인 실크로드연구, 한국과 세계문명의 교류사를 천착하여 학계와 대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중략) 1934년 중국에서 나 29살에 북으로 '아랍인 무함마드 깐수'로 84년 남파 '간첩혐의'로 96년 체포돼 4년 복역, 2006년부터 실크로드학교 열어 답사, 연구소 세워 문명교류학자들 지원 마지막 순간까지 아랍어 책 번역…. (주석 1)

AD
정수일이 지은 책은 <신라·서역 교류사>, <세계 속의 동과 서>, <문명의 루트 실크로드>, <문명교류사 연구>, <한국 속의 세계>, <실크로드 문명기행>,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문명의 요람 아프리카를 가다>, <우리 안의 실크로드> 등 20여 권이고, <이븐 바투라 여행기>1, 2,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 등을 번역했다.

이슬람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10여개 언어를 구사하는 어학 능력으로 한국과 세계문명 교류사를 탐구한, 그야말로 이 분야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법정에서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고 최후 진술에서 자신은 죽이더라도 컴퓨터에 저장된 고대동서교류사 원고를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이 분야에 열정을 쏟았다.

정수일이 역주하여 2004년 학고재에서 펴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값지다. 한국의 학자·언론인·연구가들이 하지 못한 일을 그이가 해냈다. 신라인 혜초가 1200년 전에 40여 개 나라와 지역을 다니며 견문과 전문을 적은 이 여행기는,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이다.
 출간기념회 참석자들과 함께 한 정수일 선생: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출간기념회 참석자들과 함께 한 정수일 선생: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 이상기

정수일의 '역주자 서문'에서 저간의 사정을 살피게 한다.

역주자 서문

혜초는 분명 '위대한 한국인'이다. 그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현존하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서책(書冊)으로서, 명실상부한 국보급 진서이자 불후의 고전이다. 이 여행기를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로 꼽는 이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책을 연구하거나 기리는 일에 너무나 불초스러웠다. 남들보다도 한참 뒤쳐져 있으니 말이다. 남들의 무슨 '지(志)'도 좋고 무슨 '록(錄)'이나 '기(記)'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왕오천축국전>이 그보다 천만 배 더 낫고 값지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겨레의 얼과 넋, 슬기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탄스럽게도 그것이 우리 속에 제대로 자리매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게다가 이 국보는 90년 넘게 저 멀리 낮설기만한 무연고지(無緣故地)에 유패(幽閉)된 채 잊혀져, 이른바 '반환목록'에조차 빠져 있다. 그래서 거듭거듭 안타깝다. 지금으로부터 꼭 12년 전 역주자는 한 일간지에 실은 '불초(不肖)'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거룩한 선현을 후손답게 모시지 못한 불초의 자괴심을 고백한 바 있다. 그러면서 분발을 촉구하고 아늑한 서산 기슭에 사적비라도 하나 세워 기리자고 하였다. 그것은 당장의 메아리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이 절감하는 불초감 때문이었다.

이러한 불초감이 늘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응어리의 핵은 여행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걸맞은 역주서를 펴내야 한다는 미제(未濟)의 과제였다. 그러나 워낙 만만찮은 작업이라서 선뜻 엄두를 못 내고 망설이기만 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문명기행〉시리즈의 번역·출간을 기획하면서, 기왕이면 우리의 세계적 여행기를 수권(首券)으로 내놓는 것이 도리라고 믿고 역주작업에 착수하였다.

총 227행(한 행은 27~30자)으로 된 여행기의 현존본은 문단의 나뉨이 없는 연속문으로서 분절(分節)이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지역과 나라에 따라 행로를 기록하고, 기록 내용도 엇비슷한 틀로 엮여 있기 때문에 역자들은 나름대로의 분절법을 택하고 있다. 이 역주서는 원칙상 노정에 따라 나라를 단위로 하나, 나라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내용이 종합성을 띤 경우는 지역을 단위로 하여 모두 40개의 절로 나누었다.

여행기의 현존본은 앞뒤가 잘려 나간 잔간(殘簡)이다. 따라서 그것이 절략본(節略本)인가, 아니면 원본을 베껴 쓴 사록본(寫錄本)인가, 또는 초고본(草稿本)인가 하는 책의 성격 문제는 아직껏 논란거리이다. 성격이야 어떻든 확실한 것은 1200년 전에 쓰인 글이라는 사실이다. 옛글이니 만치 글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게다가 오늘날 별로 쓰이지 않는 벽자(僻字)와 식별이 어려운 모호한 글자도 적지 않으며, 원인 불명의 오자와 탈자 그리고 도치자(倒置字)도 가끔 눈에 띈다. 마모되어 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글자만도 무려 160여 자나 된다. 거기에 간혹 구어체나 이른바 '비문법적' 요소마저 겹치다 보니, 자못 난해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원문의 이해나 해석을 놓고 이론(異論)이 분분함은 당연지사라 아니할 수 없다.

겨우 육천 자 남짓한 글로 40여 개 나라나 지역의 견문(見聞)과 전문(傳聞)을 두루 개괄하다 보니 내용이 소략(疏略)할 수밖에 없다. 소략함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이 여행기처럼 먼 옛날의 먼 곳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다른 말로 옮기는 경우에 축자적 대역만으로는 도시 정확한 이해에 이를 수가 없다. 정확한 이해는 오로지 글자 뜻의 해석이나 문맥의 이해, 희미한 글자의 판독, 지명의 비정(比定), 시대적 배경 등을 반듯하게 풀이한 주해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간 이 여행기의 원문에 대한 주해(역주 포함)는 중국의 나진옥(羅振玉)과 일본의 후지타 도요하치(藤田豊八), 독일의 푹스(W. Fuchs)를 비롯한 몇몇 외국 학자들의 학구적 노력에 의해 상당히 진척되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주역을 담당했어야 할 우리는 아직 해내지 못하였다. 북한에서 출간한 것을 포함해 몇 종의 대역본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역주자는 그간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놓은 주해나 역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가급적 필요한 역주(총 503항)를 넉넉히 달려고 작정하였다. 소정(所定)의 논제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각이(各異)한 견해를 비교·분석하기도 하고, 시비나 오견(誤見)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꽤 많아져서 편집상 절마다 번역문 뒤에 역주문을 한데 묶어주었다. 그리고 역주를 필독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찾아보기'에 본문뿐만 아니라 역주의 내용도 포함시켰다.(하략)

주석
1> 조일준, <한겨레>, 2025년 2월 26일.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광복80주년명문80선#광복80주년#명문80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실족사' 아닌 7가지 의문점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