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2012년 5월 충남도의회 251회 임시회 1차 본회의 회의 당시 모습.
ⓒ 충남도의회 제공
10여 년 전 일이다. 당시 충남도의원 45명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실력 행사에 나섰다. 충남도가 그동안 관행적으로 배정하던 의원재량사업비(현안사업비)의 일부를 배정하지 않은 데 대한 반발이었다.
도의원 일부 재량사업비 반영하지 않자 벌어진 일
의원재량사업비(주민숙원사업비·지역밀착형사업비) 는 지역 소규모 민원 해결을 위해 특정 용도를 지정하지 않고 지방의원 1인당 일정액을 배분해 온 사업 예산을 말한다. 의원들에게 일정액을 알려주고 사업비에 반영하기도 한다. 이같은 의원재량사업비는 충남도 외 다른 광역지자체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충남도는 예산 항목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일명 소규모숙원사업비로 분류해 매년 의원 일 인당 7억 원씩 모두 315억 원을 배정했다. 그해 예산에도 본예산을 통해 1인당 5억 원씩(220억 원)을 반영했지만, 연초 행안부가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각 지방자치단체에 의원사업비 폐기를 지시, 도의원 1인당 추가분 2억 원씩(90억 원)을 배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보복성 예산심의에 나섰다.
충남도의회는 상임위마다 집행부 예산을 삭감하는 복수전을 시작했다. 삭감 예산은 의원 재량사업비를 훌쩍 넘어섰다. 대부분 여성·노인·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산이었다.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 "의원 쌈짓돈 안 준다고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느냐"고 비판했지만, 도의원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새로운 관행 그리고 예산 심의와 편성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번 진통을 개선의 기회로 삼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끝내 도의원들의 복수전에 밀려 재량사업비를 존속시켰다. 사실상 항복선언이었다.

▲2012년 충남공공일반노조와 충남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 등이 '의원 쌈지돈 안준다고 사회복지 예산삭감한 충남도의회 해산하라'는 손글씨를 들고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심규상
충남 시·군 의회에서도 "'재량사업비' 투명하게 쓰자"
재량사업비는 충남도의회만 있는 게 아니다. 전국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재량사업을 배정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민 숙원'과는 무관한 지역구 관리용으로 활용된다.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닌데도 현안 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재량사업비를 펑펑 선심용으로 쓰는 사례도 많다.
지난 1월 조상연 당진시의원은 의회 5분 발언을 통해 "(당진시의원의 경우) 의원 개인당 본예산에 4억 원을 반영하고 추경 때마다 각 2억 원씩을 얹어 금액이 늘어나고 있다"고 공개했다. 의원 수 대비 연간 84억 원(의원 수 14명)에 달한다.
조 시의원은 "사업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의원재량사업의 경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의회가 집행부에 전달해 예산안에 반영한다"며 "시민들이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지 평가할 수 있게 의원재량사업비의 예산 규모와 제출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에는 부여군의회 노승호 의원이 5분 발언을 통해 "의원재량사업비는 의원들이 목록을 작성해 각 실과에 전달하면 집행되는 형식으로 사실상 쌈짓돈처럼 비쳐 왔다"라며 "의원재량사업비를 주민참여 예산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여군지부는 "노 군의원의 '의원 재량사업비' 폐지 주장에 대해 전적인 지지와 환영의 뜻을 밝힌다"라며 "재량사업비는 지방재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전국적으로 많은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남도, 정보공개신청하자 '도의원재량사업비 부존재' 답변

▲<오마이뉴스>가 '충청남도의회 의원재량사업비 예산편성 및 집행내역' 등을 정보공개 청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정보 부존재"였다. ⓒ 심규상
그렇다면 충남도는 도의원재량사업비 논란이 있은 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도의원재량사업으로 어디에 얼마를 쓰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최근 충남도에 '충남도의회 의원재량사업비 예산편성 및 집행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청구 내용은 '충남도의원 의원재량사업비의 구체적 내역(의원명, 사업명, 금액, 사업집행부서)'이다. 덧붙여 기자는 청구를 하면서 '의원재량사업비의 명칭이 주민숙원사업비, 지역밀착형사업, 현안 사업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만큼 정확하지 않더라도 청구하는 정보의 성격을 감안해 정보공개에 응해달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정보공개 시한을 꽉 채운 뒤 충남도가 내놓은 답변은 '정보 부존재'였다. 요청한 도의원재량사업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이다.
충남도 예산총괄팀 관계자는 "도의원에게 일정액의 사업을 배분하지도 않고 있고, 각 실과나 부서에서 현안 사업이 올라오면 검토해 배정하는데 현안 사업은 도의원 뿐만아니라 단체 등 누구나 현안 사업을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배정한 예산에 도의원이 요구한 현안 사업이라고 나와 있지 않고 따로 관리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충남도 실과나 부서를 비롯해 도의회에서도 의원별 재량사업비 성격의 사업을 관리하는 곳은 없다"라고 덧붙였다. 도의원재량사업비 자체가 없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별도 관리하지 않는다는 '해괴한' 답변이다.
관련 공무원들도 "'정보부존재'는 거짓답변"

▲충남도청 청사 ⓒ 이재환
충남도 예산총괄팀의 답변은 사실일까?
이에 대해 충남도 내 한 직원은 "명백한 거짓 답변"이라고 귀띔했다. 이 직원은 "도의원재량사업비 성격의 사업과 예산을 관리, 편성하지 않으면 예산편성이 엉망이 되고 특히 특정 의원의 관련 예산이 누락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해당 의원이 가만히 있겠냐"고 말했다.
이어 "위법성이 있고 논란의 소지가 있으니 '정보 부존재'라고 답변했겠지만, 내막은 거짓 답변"이라고 덧붙였다. 시·군 공무원들도 같은 취지의 답변을 했다. 충남도의회의 한 의원도 "재량사업비가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충남도와 충남도의회는 단 한번도 '재량사업비가 폐지됐다'고 한 적이 없다. 충남도 예산총괄팀 말대로 도의원재량사업비가 정말 존재하지 않는다면 충남도와 충남도의회가 나서 '우리는 지방자치 근간을 훼손하고 예산낭비를 초래하는 의원재량사업비를 폐지했다'고 자신있게 선언하길 바란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