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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심곡해변 인근에서 자생하는 해조류 '고르매'(누덕나물)가 본격적인 수확철을 맞이했다. 청정한 동해의 암반 지역에서 자라는 고르매는 감칠맛과 쫄깃한 식감으로 강릉 주민들에게 봄철 별미로 사랑받아왔다.

'고르매'는 관광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강릉 지역에서는 봄을 알리는 친숙한 식재료다. 신선하고 짭조름한 맛과 풍부한 식감으로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는 고르매는 강릉의 오랜 전통을 간직한 특별한 봄철 선물로 여겨지고 있다.

고르매 김처럼 발에 말리는 고르매는 까칠까칠하면서 감칠맛을 낸다
고르매김처럼 발에 말리는 고르매는 까칠까칠하면서 감칠맛을 낸다 ⓒ 진재중
고르매 말리기 김,파래와 같이 말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막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025/3/24)
고르매 말리기김,파래와 같이 말리기도 하는데 이때는 막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025/3/24) ⓒ 진재중

고르매는 솜털목 고리맷과에 속하는 갈조류로, 강원특별자치도 고성에서 강릉 지역의 조간대에서 자생한다. 1월에 자라기 시작해 3월에 크게 자라다가 5월이나 6월에 사라진다. 보통 2월 중순부터 4월 초순까지 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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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매는 김보다 두껍고 거칠며, 표면이 누덕누덕한 모양을 하고 있어 '누덕나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투박한 외형과 달리 깊은 감칠맛을 자랑하며, 강릉 주민들은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먹는다. 보통 김처럼 구워서 먹거나 국에 넣어 감칠맛을 더하며, 말려서 보관한 후 나물처럼 무쳐 먹기도 한다.

특히 고르매는 음력 동짓날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가장 맛이 좋은 시기다. 이때를 놓치면 제철의 진한 풍미를 느끼기 어렵다. 동해안 사람들에게는 오랜 세월 동안 봄철 보양식으로 여겨져 왔으며, 바다에서 직접 채취해 가족과 나눠 먹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고르매 말리기 바닷물로 씻어내고 불순물을 제거한 후 한장씩 한장씩 김발위에 말린다(2025/3/24)
고르매 말리기바닷물로 씻어내고 불순물을 제거한 후 한장씩 한장씩 김발위에 말린다(2025/3/24) ⓒ 진재중

제철 맞은 고르매 수확 현장

3월 24일, 강릉 심곡해변에서는 고르매 수확이 한창이다. 갯바위 주변에는 갓 자란 고르매가 짙푸른 빛을 띠며 바다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해안가의 여인들은 얕은 물가의 암반에서 고르매를 손으로 하나하나 직접 뜯어낸다. 채취한 고르매는 바닷물에 흔들어 이물질을 제거한 후, 김처럼 발에 말린다.

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여성인 손춘연(58세)씨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고른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바다의 짠내를 맡으며 고르매를 채취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이자 삶의 의미가 된다"며, 이 시기에는 바다에서 직접 고르매를 뜯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전했다.

고르매 채취 파도가 적당히 있고 암반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린다(2025/3/24)
고르매 채취파도가 적당히 있고 암반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린다(2025/3/24) ⓒ 진재중
고르매 채취 동해안 곳곳에는 고르매 채취가 한창이다(2025/3/24)
고르매 채취동해안 곳곳에는 고르매 채취가 한창이다(2025/3/24) ⓒ 진재중

수확한 고르매는 신선한 상태로 먹을 수 있지만, 더욱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말리는 과정이 중요하다. 과거 고르매가 풍성하게 나던 시절,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는 돌담 어귀마다 고르매를 널어 말리는 풍경이 펼쳐졌다. 바닷가 마을을 걷다 보면, 돌담 위에 널린 고르매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따뜻한 봄바람을 맞고 햇볕을 머금고 말라가는 고르매는 특유의 바다 향을 더욱 진하게 품게 된다.

정동진 어촌계장 정상록(80세)씨는 "어릴 때부터 봄마다 고르매를 널어 말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라며 "말린 고르매는 국이나 반찬으로 유용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채취하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이제는 고르매를 말리는 광경을 보기 어려워졌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고르매 수확철 고르매가 나는 봄이면 심곡마을 담벼락과 해안길가에 고르매를 말리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2025/3/24)
고르매 수확철고르매가 나는 봄이면 심곡마을 담벼락과 해안길가에 고르매를 말리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졌다(2025/3/24) ⓒ 진재중

심곡해변을 찾았다가 우연히 고르매를 접한 서울에서 온 관광객 김연지(32)씨는 "처음 보는 해조류라 신기했다. 겉모습은 투박하지만 구워서 먹어 보니 김보다 맛도 있고 바다 향이 가득하고 감칠맛이 강했다"고 전했다. 함께 여행 중이던 친구 이정훈(34)씨도 "심곡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해초라서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고르매는 강릉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해안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도 특별한 음식이 되고 있다.

바다부채길 국내유일의 해안단구지대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2025/3/24)
바다부채길국내유일의 해안단구지대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2025/3/24) ⓒ 진재중

사라져가는 전통, 줄어드는 채취 인력

고르매는 오랫동안 여성들이 채취해 왔으나, 최근 어촌에 정착하는 여성이 줄어들면서 채취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을 전체 여성들이 함께 고르매를 채취했으나, 현재 채취하는 여성은 다섯 명으로 줄어들었다. 경제적 보상이 적고 바닷일의 위험성과 어려움이 여성들의 참여를 줄인 주요 원인이다.

60여 년 이상 고르매를 채취한 김봉녀 할머니(82세)는 "어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어. 고르매는 거친 파도가 치는 위험한 바위틈에서 채취해야 하는데 고생한 것에 비해 돈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꺼리고 있어. 이제는 고르매를 맛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르매 채취 손으로 뜯기도 하지만 전복이나 섭 껍데기를 이용해 긁거나 훑는다(2025/3/24)
고르매 채취손으로 뜯기도 하지만 전복이나 섭 껍데기를 이용해 긁거나 훑는다(2025/3/24) ⓒ 진재중

이곳에서 자생하는 고르매, 해조류는 과거 강원도 연안의 조간대에 널리 분포했으나 최근 해수면 상승과 연안 개발로 자원이 급격히 감소했다.

심곡 어촌계장 원도식(63세)씨는 "고르매가 자라는 곳에 들어가거나 훼손하면 생장이 어려워진다"라며 "관광객들도 바위에 붙은 고르매를 함부로 뜯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한 "고르매가 지역 특산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관심과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고르매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곡해변 심곡은 파도가 적당히 치고 암반으로 되어 있어 고르매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갖춘 해변이다(2025/3/24)
심곡해변심곡은 파도가 적당히 치고 암반으로 되어 있어 고르매가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갖춘 해변이다(2025/3/24) ⓒ 진재중

고르매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동해안의 숨은 보물이다. 강릉을 방문하면 심곡해변에서 고르매의 진한 바다 향을 맛볼 수 있다. 이 봄, 심곡의 바다는 고르매라는 특별한 선물을 전하고 있다.

암반위의 해조류 동해안 해안가 암반에는 다양한 해조류들이 자라고 있다(2025/3/24)
암반위의 해조류동해안 해안가 암반에는 다양한 해조류들이 자라고 있다(2025/3/24) ⓒ 진재중
고르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암반에서 자라는 해조류로 김이나 파래보다 먼저 나와 입맛을 돋구는 봄의 전령사다(2025/3/24)
고르매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 암반에서 자라는 해조류로 김이나 파래보다 먼저 나와 입맛을 돋구는 봄의 전령사다(2025/3/24) ⓒ 진재중



#고르매#정동진#강릉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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