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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선생님 칭찬 한마디가 미술가의 길로 이끌었어요. 대학에선 미술을 공부했지만, 학교수업엔 거부감이 컸죠. '새 흐름'을 만들겠다고 좀 건방진 생각을 했어요. '바깥미술'이 그 답이었죠. 위기의 인간중심주의를 뛰어넘을 공생의 '짓거리'를 고민했거든요. 올해로 미술의 사회적 역할 찾기 45년째네요."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서른한 번째 주인공 임충재(71) 미술가의 말이다. 22일 오후 여주시 금사면 그의 집에서 마주한 임 작가는 생태미술을 인간과 자연의 공생의 길 찾기라고 했다. '바깥미술'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는 미술인들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1981년이었어요. 붓으로 사실을 묘사하는 미술이 답답했던 청년들이 뭉쳤죠. 미술가만이 아니라 연극·무용·음악 등 예술가 31명이 모여 겨울대성리전을 열었어요. 그 뒤 젊은 미술가 여섯이 '다무'를 결성했죠. '밖으로 가자'는 합의와 함께. 9명이 '바깥미술' 단체를 결성했어요."

 임충재 미술가.
임충재 미술가. ⓒ 최방식

인간중심주의 뛰어넘을 공생 '짓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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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미술가들은 전시회를 하며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 강연 등 외부 이론가의 도움도 받았다. 기후위기와 플라스틱 등 문명의 쓰레기에 파묻혀가는 지구촌을 구할 생태미술이 그 결론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화해, 그리고 공생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45년째 이어오는 '바깥미술'은 9명의 회원이 만장일치제로 운영한다. 전시회는 회원 9명과 초대작가(5~6명 외부 미술가)가 참여한다. 가장 추운 1~2월에 연다. 대성리, 자라섬, 두물머리 등에서 매년 한 차례씩 열고 있다. 기획전, 초대전, 워크숍·좌담회 등도 이어오고 있다.

"2022년 바깥미술전에 비닐로 만든 버섯을 전시했어요. 인류가 쏟아내는 플라스틱이 언젠가 버섯이 돼 나타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지구는, 그리고 인류는 종말로 치닫고 있는데, 전통미술로는 안이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생명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생태예술을 하는 건 그 때문이고요."

공생 하면 '지구의 옷'이라 부르는 지의류(地衣類)를 빼놓을 수 없다. 늪지 바위 한 폭의 유화 같은 초록·회색 문양. 석이(버섯), 송라, 리트머스 등을 말한다. 광합성 못하는 균류가 광합성 하는 조류를 보호하며 양분을 나누는 지의류. 수분 없는 사막이나, 뜨거운 화산지대, 언 극지방에서 단독으로 살 수 없어 힘을 합쳐 공생한다. 바위를 분해해 흙을 만들고 식물을 뿌리내리게 하는, 원시 생태계가 인류에게 알려주는 공생의 미학이다.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갔다. 철학이나 심리학을 하려다 좀 더 실질적인 학문을 고민한 결과 미술을 선택했다. 중3 때 한 미술 교사의 칭찬이 힘이 됐다. 먹고살기 힘들다며 부모는 반대했지만, 그는 회화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교육은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수업을 빠지다 보니 학사경고로 이어졌다. 도피성 군복무 뒤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한창 건방 떨 때인데, 이런 학교 뭐 하러 다니냐며 투덜댔죠. 국전에서 인정받은 교수들한테 미술전 상 받는 기술을 배운다는 생각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때 '외도' 기회가 찾아왔죠. 서양미술사 강의하는 평론가를 따라 인사동에 다니며 미술잡지 편집을 돕는 것이었어요. 많은 자료를 접하게 됐고, '바깥예술'에도 도움이 됐죠."

인생의 최대 전기는 1985년 교사로 취업한 것이다. 중대부고에 시간강사가 필요하다고 해 '다무' 그룹 한 선배를 소개했는데, 그 선배가 3개월만에 그만뒀던 것. 그는 면접만 보고 그만두는 예우(요청한 학교측에)를 갖추겠다고 지원서를 냈는데, 예상과 달리 시간강사로 선정된 것.

"길이 생기려고 그랬는지, 시간강사를 하는데 미술 교사가 사퇴하며 정규직 제안이 들어왔어요. 교장이 어여삐 봤는지. 몇 개월 고민 끝에 받아들였죠. 6개월 뒤 정교사 발령이 났어요. 미술인이 교사가 된 거죠."

4년만에 불어닥친 1987년 민주화 바람은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교사들이 비밀회동을 했는데, 이부영(위원장), 이수호(사무처장) 등 초기 집행 간부들. 1986년부터 하던 교사 소모임이 확대되고 여러 단체가 모여 교사협의회를 결성하고 전교조로 전환한 것. 그는 초대 사립학교위원장 겸 관악동작지회장을 맡았다.

 바깥미술 두물머리전 ‘잇’(2024년 1월29일~2월14일)에 출품한 ‘끔찍한 상상3’(비닐쥐).
바깥미술 두물머리전 ‘잇’(2024년 1월29일~2월14일)에 출품한 ‘끔찍한 상상3’(비닐쥐). ⓒ 임충재

"시간강사 땜빵, 교육운동 전선으로"

"학교에 가보니 입시 문제가 정말 심각했어요. 교육 본령은 사라진 지 오래고, 교단엔 대학 보내기 경쟁만 난무했거든요. 정말 끔찍했죠. 처음엔 교사만 똑바로 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사회민주화 없이 교육운동이 열매를 거둘 리 만무했거든요. 첩첩산중이었죠."

예상대로 그를 기다린 건 해직이었다. 다행히 오래 가진 않았고 복직명령이 떨어졌는데, 애초 해고된 사립학교에서 안 받아주니 공립학교인 대청중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인성교육에 구슬땀을 흘렸다. 학생 미술전을 벌이고, 방학 중 학생과 함께 해외여행 다니기 등을 했다.

"2학년 13개 반을 가르쳤는데, 방과후 야외미술전을 며칠째 하니 학부모들이 난리가 났어요. 학원에 보내야 하는데 미술전을 하고 있다고요. 사흘째 되는 날 학부모들이 조용해졌어요. 다른 애들도 다 학원에 안 가는 걸 알았거든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자며 해외여행을 설득할 때도 시끌벅적했죠. 여행 다녀온 애들 성적이 올라 조용해졌지만요."

교사로 복직하고 애초 하려다 중단한 '바깥예술' 고민도 더 키울 수 있었다. 그렇게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며 2007년 교사로 정년퇴직하고 '바깥미술'에 전념하겠다고 찾아든 게 여주였다. 대학 후배의 땅을 나눠(구해) 6개의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을 장만했다.

교사로서 그리고 교육운동을 하며 평생을 보낸 그에게 미술가로서 소박한 꿈이 있었는데, 죽기 전 개인전을 한번 여는 것이었다. 2019년 10월 30일부터 1주일간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사람·문'전(60여점 출품)으로 꿈을 이뤘다. 2021년에는 전영희 미술가와 2인전(12월 1~7일 나무갤러리, 20점 출품)도 개최했다.

"제 개인전 작품들은 보기에 좀 어두워요. 어둠 속 여명을 만드는 노력이라 할까. 작은 사람 형상을 사용해서요. 전 대학 다닐 때부터 그 문양을 사용해왔는데,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어요. 다른 소재를 못 찾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 문양이 여전히 재미있어 그냥 사용해요."

가족은 미술을 한 부인과 딸 둘을 뒀다. 두 딸도 미술을 하니 미술 일가를 이룬 셈. 부인은 재수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 그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면서 생계를 꾸리려고 미술학원을 시작했다. 아동미술을 하는데, 요즘엔 미술교사(학원)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딸 둘은 대안학교인 산청 간디학교에 보냈다. 초창기 교육프로그램이나 내용이 풍부해지기 전에 입학해 어려움이 적잖았다. 임 교사에게 함께하자는 제안도 들어왔지만 가지 않았다. 그도 대안학교를 고민하던 때여서, 자금을 대겠다는 이 때문에 4만여 평의 땅을 보고 다닌 적도 있었다. IMF로 기부예정자가 무너지며, 물거품이 됐다.

"딸 둘은 초기 간디학교에서 힘든 여건에도 잘 버텼어요. 둘째에게 언젠가 그만두고 싶으냐 물으니 계속 있겠다 하더군요. '아침 지리산이 얼마나 이쁜데'라면서. '간디의 힘'이구나 싶었죠. 둘은 뉴질랜드·이탈리아·미국 등 유학하며 미술을 공부했어요. 큰애는 미국의 인테리어디자인 회사에 취업해 거기 살고, 작은애는 코이카 해외(모로코) 봉사활동을 마치고 국내 한 회사에 취업했어요."

 바깥미술 두물머리전(2022년 2월)에 출품한 ‘비수’.
바깥미술 두물머리전(2022년 2월)에 출품한 ‘비수’. ⓒ 임충재

"플러그를 뽑아라, 주인행세는 그만"

교사는 자신 있는데, 미술가는 자신 없다는 임 작가. 미래 구상을 묻자. 더 나올 게 있겠냐고 반문한다. 1년에 한 번 하는 '바깥미술' 전시회도 힘들다고.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부담이 적잖단다. 그러면서도 그림자로 입체 조각품 만들 구상을 밝힌다. 그의 생태예술은 진행 중인 것이다.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코트 새비지가 쓴 책이다. 현대판 러다이트(산업혁명 때 기계파괴)운동을 하는 저자가 발간하는 잡지 '더 플레인'(미국의 한 비영리 환경단체가 창간)에 소개됐던 칼럼을 모은 것이다.

인간이 자유·행복을 누리려면 지구 주인행세를 그만두고 소박·겸손하게 살아야 한단다. 시작은 전원 플러그를 뽑는 것이고. 거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계는 가속도 붙은 채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내달리는 기차와 같다고. 승객(인류)은 뛰어내릴 방법을 찾지 못해 앉아있고. '바깥미술',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저널에도 실립니다.


#임충재#바깥미술#생태미술#여주양평문화예술가#미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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