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법 개정안, 누가 찬성하고 반대했나국민연금법 개정안 표결 결과가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 ⓒ 남소연
거대 양당이 합의로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통과시켰지만, 그 내용을 두고 진영을 막론하고 반발이 거세다. 20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여야 합의 법안임에도 반대 및 기권이 84표나 됐다. 이 중 56표는 국민의힘에서 나왔다.
특히, 전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직접 찬성 토론에 나서서 여당의 동참을 독려했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국민의힘 내 만 나이 기준 30·40대 국회의원(김용태·김재섭·우재준·정희용·조지연·진종오 등)을 중심으로 공개 이탈이 나오며 세대 갈등 양상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 의원들의 표결 양상도 비슷하게 전개됐다. 김동아·모경종·이소영·장철민·전용기 등 3040세대 의원들의 이탈이 눈에 띄었다. 친윤·친한, 친명·비명 등 계파마저 불문하고 이렇게 교차 투표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이처럼 같은 당 내에서도 입장이 뚜렷하게 나뉘었고, 보수와 진보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되며 양측의 비판 여론이 모두 거센 상황이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21일 직접 진화에 나섰다.
권성동 "비판 목소리 있다는 것 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갈 수밖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연히 (연금개혁 법안 찬성을) 당론으로 정한 게 아니고, 당내 비판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씩 나아가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합의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한) 그분들 의견을 존중하고, 앞으로 연금특위에서 구조 개혁을 논의할 때 그분들의 목소리 반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이었다.
연금개혁 특위 구성과 관련해 "의원들 의견을 들어서 정할 계획이고, 연금특위 위원으로는 우리 당의 젊은 세대, 젊은 의원 중심으로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2030의 (연금개혁안 반대) 목소리도 알고 있다"라며 "그 분들과 연금 간담회도 가졌고, 그분들 의견도 옳은 의견이라고 인식하고 있기에 각종 회의에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주장했다"라고 여당 지도부의 노력을 강조했다. "민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기성세대가 일을 좀 하자', '미래세대에게 이런 아픔을 주려 하느냐'고 수도 없이 부르짖고, 민주당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고는 했다만, 민주당이 완강히 거부했다"라며 '야당 탓'도 꺼내 들었다.
권 원내대표는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힘의 한계가 있었기에 합의안대로 나아가는 게 국가 재정이라든가 국가 경제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라며 "100% 만족은 못 했지만, 일단 합의하고 구조개혁을 완성하면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아픔을 달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결단을 내렸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그분들(2030세대)에게 미안한 마음을 여전히 갖고 있다"라며 "저희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국민께 다가가 많은 선택을 받게 되면, 그때 가서는 그분들의 아픔을 치유하도록 제대로 된 연금 개혁안을 만들도록 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아쉬움 많다... 다만, 반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했다"

▲여야,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 합의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기존 40%에서 43%로 오는 2026년부터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한 뒤 합의문을 들어보이고 있다. ⓒ 남소연
연금개혁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당 간사 김미애 의원은 원내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아쉬움이 많다. 청년들께는 미안한 마음이 참 크다"라며 "청년이 동의하는 개혁을 하겠다고 수차례 말씀드렸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자성했다. 그는 "미완의 개혁"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재정 안정을 기대할 수 없는 반쪽 개혁이라는 비판을 협상에 관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무겁게 받아들인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다만 반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했다. 소수당의 한계도 있었다"라며 "이제는 구조개혁의 시간이다. 떳떳하고 자신 있게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국민의힘은 구조 개혁을 통해 진짜 개혁다운 개혁을 해 나가겠다"라고 약속했다.
김 의원은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재정 안정화 조치, 즉 자동 조정 장치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가입자와 수급자, 모든 세대가 똑같은 부담을 분담하는 장치"라며 "개혁안이 통과됐지만 기금 고갈 시점은 수익률 4.5% 기준으로 단지 8년 늘어난 2064년이다. 고갈 후 대책은 현재 없다"라고 꼬집었다.
"고갈 후 필요 보험료율은 최대 39.2%이고 소득의 40% 가량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걸 뜻한다"라며 "아니면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이 또한 미래 세대가 부담하는 빚"이라고도 정해진 미래를 인정했다. "그래서 모수 개혁은 임시 처방일 뿐"이라는 것.
이어 "기성세대의 연금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자식, 손자 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길 의도가 아니라면 민주당도 이후 대책을 깊이 고민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끄럽고 파렴치한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라며 "구조개혁은 모수 개혁보다 훨씬 복잡하고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나라의 미래와 청년의 미래를 위해 함께 숙고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왜 나만 더내고 너만 더 가져가느냐?" "청년만 양보, 기성세대는 이득"
하지만 이같은 노력이 당장 당내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권표를 던졌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의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연금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저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고 싶다"라며 "어제(20일) 그 안을 보면은 숫자만 적당히 바꾸고, 그것도 올바로 바꾸지도 않았다"라고 혹평했다.
"구조는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다"라며 "연금 개혁의 목적을 연금 지속 가능성에 두고 봐야 되는데 그걸 합의를 안 하다 보니까 이런 결과가 나왔다"라고 꼬집었다. 보험료율을 인상하되, 소득대체율은 인상하지 않고 40% 선을 그대로 유지했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또한 자동조정장치 도입 필요성도 강조했다.
당 연금개혁특위 위원장 자리를 내던진 박수영 국회의원은 이날 국회의사당 소통관 기자회견장을 '국민연금 청년행동'에게 빌려주며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 개악 입법이 통과가 됐다"라며 "우리 청년 세대를 착취하는 청년착취법이라고 저는 규정한다"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전날 본인의 SNS에도 "소득대체율을 현행 40%로 그냥 두어도 연금기금이 고갈되는데, 이걸 43%로 올려버려서 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더 흔들리게 되었다"라며 "민주당으로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인 40%를 거꾸로 돌린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조직부총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당 조직부총장을 맡고 있는 1987년생 김재섭 의원 역시 20일 SNS에 "이건 개혁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정치기득권을 장악한 기성세대의 협잡"이라며 "미래세대를 약탈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왜 나만 더내고 너만 더 가져가느냐?"라며 "시한부 국민연금에 산소호흡기나 달아주는 합의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1988년생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 또한 같은 날 페이스북에 "'더 내고 더 받는다'는 말은 좋지만, 문제는 '더 내는' 건 청년세대이고 '더 받는' 건 기성세대라는 것"이라며 "연금 수령 연령 상향조정, 자동조정장치 등 기성세대가 양보할 수 있는 안들은 모두 빠졌다"라고 힐난했다.
우 의원은 "은퇴가 임박한 86세대들은 끝까지 조금 내고 받을 때만 즉시 더 받게 되신다"라며 "연금개혁은 세대간 양보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이번 연금개혁안은 청년 세대만 양보하고, 기성세대는 이 엄중한 상황에서조차 이득을 얻어가는 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