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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교습소에서는 '10대를 위한 시리즈'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수업 중이다. 교습소 운영을 이렇게 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면서도 말이다.

제목은 이렇다. 3월,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4월엔 <10대를 위한 공정하다는 착각> 5월엔 <10대를 위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6월엔 <10대를 위한 요즘 경제학>. 모두 10대를 위해 나온 책이다.

언제나 그랬듯 좋은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모두 내 아내로부터다. 아내가 말했는데 제목만 들어도 '있어빌리티'가 좔좔 흐르기에, 나도 그래 한번 해보자 하고 풍덩 뛰어들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진행하려고 준비해 보니 만만치 않았다. 일단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내가 내용의 80%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상당히 체기를 가져다주었다. 머리에도 쥐가 날 수 있구나를 매주 경험했다(물론 내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을 말해 보자면 책의 불친절함도 상당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게 정말 '10대를 위한'을 붙일 수 있을 만큼의 친절하고 다정한 인코딩이었냐를 묻는다면... 아쉽다.)

어느 때보다 진지한 아이들

<10대를 위한 시리즈> 언제나 그랬듯 좋은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모두 아내로부터다. 제목만 들어도 있어빌리티가 좔좔 흘러서 그래 한번 해보자 뛰어들었다.
<10대를 위한 시리즈>언제나 그랬듯 좋은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모두 아내로부터다. 제목만 들어도 있어빌리티가 좔좔 흘러서 그래 한번 해보자 뛰어들었다. ⓒ 쓰고뱉다

다만, 아이들의 수업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진지했다. 선생님인 내가 다소 개떡같이 말하는 것들도 찰떡같이 알아듣기 일쑤였다. 내가 그동안 이토록 잘 가르쳤기 때문일까라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고 싶었을 정도다.

의미에 불이 붙으면 나는 곧잘 타오른다. 내친김에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분명 20대 때 읽었을 때는 한글인데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읽으니 느릿느릿해도 확실히 읽히는 구석이 있어서 그간 지적 허송세월을 보낸 건 아닌 듯해 기쁘기도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의미에 불이 붙으면 나는 곧잘 타오른다. 내친김에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분명 20대 때 읽었을 때는 한글인데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읽으니 느릿느릿해도 확실히 읽히는 구석이 있어서 그간 지적 허송세월을 보낸 것 아닌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미에 불이 붙으면 나는 곧잘 타오른다. 내친김에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입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분명 20대 때 읽었을 때는 한글인데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읽으니 느릿느릿해도 확실히 읽히는 구석이 있어서 그간 지적 허송세월을 보낸 것 아닌 것 같아서 기쁘기도 했다. ⓒ 김정주(본인)

아이들을 위해 자료를 찾고, 적절한 예화를 다시 만들고, 유튜브에서 강의를 찾아보며 꽤나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는 대한민국이라는 맥락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정의란 무엇인가'를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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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기는 어려워 보이는 현실.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쓸모 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동네 교습소 원장이 가지기엔 비장해 보이는 마음일지 몰라도,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업에 박차를 가하며 지난주와 이번 주에는 아이들에게 '공정'에 대해서 물었다.

공정이란 무엇인지,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공정한지, 보이는 신분 제도는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신분 제도라고 할 수 있는 빈부격차로 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괴리들 – 끊을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 저출산, 교육 붕괴 등 -, 스웨덴의 복지의 명과 암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우리는 먼저 현대 사회에서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유리한 것이 공정한가에 대해 토론했다. 아이들은 "노력한 만큼 돈을 버는 게 맞다"는 의견과 "너무 큰 빈부격차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선생님, 만약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면, 그 사회는 공정한 걸까요?"

"스웨덴에서는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고, 그 돈으로 복지를 제공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부자들이 세금 안 내려고 해외로 나가버리는 건 아닌가요?"

"돈이 많으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러면 더 좋은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아지니까 결국 처음부터 기회의 차이가 있지 않나요?"

우리는 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

✔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아이스크림, 자동차, 집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친구의 진심, 가족의 사랑, 생명

아이들은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결국 안정감 때문이잖아요. 돈이 많으면 가족을 지킬 수 있고, 좋은 병원을 갈 수 있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까."

"... 근데 그러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가족도 못 지키고, 좋은 교육도 못 받는다는 말이잖아요?"

특히 인도의 대리출산 합법화 사례를 통해 "돈을 받고 아이를 낳아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논의했다.

"만약 그게 불법이 아니라면 괜찮은 걸까요?"

"출산이 거래가 될 수 있다면, 결국 인간의 몸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뜻 아닌가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만약 세상이 돈으로만 돌아간다면?"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돈이 많으면 법도 바꿀 수 있는 세상, 돈이 많으면 인간의 생명까지 거래할 수 있는 세상,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세상.

아이들은 격한 토론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다.

"돈이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겠지만, 돈만 있는 세상은 결국 무너질 거예요."

"우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이런 걸 가르치고 있는 나도 신기했고,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도 신비했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이런 말을 했다.

"얘들아, 근육이 자라는 원리를 알려 줄게. 근육은 내가 쓸 수 있는 힘을 넘어서는 힘을 쓸 때 찢어지고, 이후 적절한 영양소와 휴식을 통해 회복되면서 자라. 책이 어렵지?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이 어렵지? 생각하는 게 머리 아프지? 하지만 우리가 이 책을 읽는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어.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해야 해. 그 과정 속에서 생각이 '찢어지는' 거야. 생각이 찢어져야 넓고 깊어질 수 있어. 늘 말했듯이,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자라고 있는 요즘이다. 자라고 있다. 잘하고 있다.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해야 해. 그 과정 속에서 생각이 ‘찢어지는’ 거야. 생각이 찢어져야 넓고 깊어질 수 있어. 내가 늘 말했듯이,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해야 해. 그 과정 속에서 생각이 ‘찢어지는’ 거야. 생각이 찢어져야 넓고 깊어질 수 있어. 내가 늘 말했듯이, 공부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야 ⓒ 쓰고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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