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레이더'는 오마이뉴스 에디터들이 눈에 띄는 기사를 쓴 시민기자에게 직접 기사 뒷얘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지난 2월 설 연휴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출근해서 밤 사이 들어온 기사 리스트를 보다가 '엄마는 설 지나 요양원갑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눈길이 멈췄다. 부제에는 '나는 아흔 다섯 엄마를 포기한 걸까요?'라고 써 있었다. 제주에 사는 강충민(57) 기자였다. 평소 어머니에 대한 그의 기사를 기억하고 있던 터라, 내 안에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아, 그렇게 결정하셨구나.
강충민 기자는 글을 보내며 취재경위에, '앞이 안 보이는 엄마를 25년 모시고 살다가 요양원으로 보내게 된 기자 본인의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25년을 모시고 살다 요양원으로 보낸 자식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짐작도 못하겠다며 글을 읽어내려가는데... 아래 어머니 말에서 내 감정이 요동을 쳤다.
"느네 나 돌앙살잰허난 막 속았저. 요양원가도 느네가 돈들이멍, 속아살건디... 어떵헐거라 어멍이고 할망이난 어디 데껴불지도 못허곡, 고맙다. 나가 그 고마움을 무사 모르느니? 막 고맙다." (너희가 나와 같이 살면서 정말 고생했다. 요양원 가도 너희가 돈 들고 고생할 건데... 어쩌겠니? 엄마고, 할머니라서 어디 버리지도 못하고, 고맙다. 내가 그 고마움을 왜 모르겠어? 정말 고맙다.)
부모는 평생 자식 걱정이라는 말은 100% 참인가 보다. '이번 설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살아 계신 엄마가 잘 먹는 음식을 만들었습니다'라고 이어가는 강충민 기자의 문장에는 엄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잘 담겨 있었다.
좋은 글에 독자가 응답했다. 좋아요(추천) 2003, 댓글 91, 조회수 50만 이상인 기사가 되었다(3월 21일 기준). 편집기자인 나도 이런 반응까지는 예상 못했다. 아무말이나 하는 댓글도 아니었다. 좋은 이야기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하던데, 딱 그에 들어맞는 내용이 댓글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고 싶었다. 50만 독자가 반응한 '요양원에 간 32년생 엄마'의 그후 이야기를. 3월 중순, 강충민 기자와 서면으로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관련 기사]
"요양원 간다"는 말에, 32년생 어머니가 한 말 https://omn.kr/2c2dt
90 넘은 엄마의 인공골반수술... 아들 간병의 시작 https://omn.kr/296ow
이 젓갈 담그는 일이 마지막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https://omn.kr/25dh9
말벗이 생겨 좋아하시는 모습에서 위안
- 지난 번 기사 나가고 나서 반응이 참 뜨거웠습니다. 조회가 50만이 넘었고, 좋아요가 2천여 개, 댓글도 100개 가까이가 달렸어요. 이런 반응을 어떻게 보셨어요?
"우선 기사가 메인에 배치되어 신기했습니다. 유명 정치인들의 기사와 나란히 배치되고 대기업 회장의 기사보다 앞에 배치된 걸 보고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어떨떨했고요. '사는 이야기'라는 섹션에 평범한 이야기를 쓴 건데 <오마이뉴스> 메인에 배치될 정도의 가치가 있나, 하는 의문도 들었고요. 제가 쓴 기사가 누구나 겪는, 그래서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당황했습니다. 아마도 누구나 겪는 일이고, 비슷한 경험을 하셨거나 앞으로 다가올 일이라는 점에서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 오래 어머님을 모셨기 때문에, 어머니 요양원에 가실 때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들 말씀 하시나요?
"주변에서는 다들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시죠. 지금껏 모신 것도 대단한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진심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제 앞이라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제 앞에서 상처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양원에 어머니를 보내셨던 지인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힘들어도 집에서 모실 걸... 후회가 된다"라고는 하시더군요. 그분은 그저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었지만, 계속 머릿속에 남더군요. 지금도 그 생각이 들면 혼자 '에구구 후회할 짓 하는 못된 아들입니다'라고 중얼거립니다.
기사가 나간 뒤 할머니를 보살폈던 우리 아이들에 대한 칭찬이 많았어요. 아이들 얘기를 꺼낸 김에 한 마디 덧붙이면, 기사에 차마 쓰지 못한 얘기가 있어요. 나랑 각시가 귤밭에 간 사이에 딸이 엄마를 돌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설사를 해서 침대시트와 옷이 다 변으로 젖었었대요. 엄마는 제 딸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하면서 울고 딸아이는 그런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할머니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울었대요. 딸이 이런 상황을 슬프고 짜증나는 일로 생각하지 않고 할머니를 더 이해하는 시간이었길 바라요."

▲요양원에서 박수 치시는 어머니. ⓒ 강충민
-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신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할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다행히 요양원 생활에 적응을 잘 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포함한 네 명이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데 이제는 서로 개인적인 얘기도 나누는 것 같아요. 저희들이 면회를 가면 같이 생활하는 분에 대한 이야기를 저희들(나, 각시, 아들, 딸)에게 들려줍니다. 식사 후에 같이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얘기도 한다면서. 서로 말벗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요양원 생활 모습을 자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가령, 엄마가 밝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안심도 되면서 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엄마는 치매가 없으시고 인지 능력이 워낙 좋으셔서 당신의 요양원 일상을 잘 알려주는데, 부정적인 이야기는 아직 없습니다. 혹시라도 불편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얘기하라고 했는데, 평생을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사신 분이라 과연 그런 의사 표현을 할지 의문이기 합니다."
- 요양원은 면회가 어떻게 되나요? 외출이나 외박 같은 것도 가능한가요?
"엄마가 계신 요양원은 가족 편의를 많이 생각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요양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토,일요일 중에 하루 면회를 하고, 내가 주중에 또 한 번 갑니다. 직장 다니는 각시와 대학생인 딸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교사로 출근하는 아들에 비해 저는 주중에 시간을 낼 수 있으니 저 혼자 엄마보러 요양원에 갑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하고 옵니다. 조금이라도 엄마가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달 반 정도 지났는데 외출은 두 번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모든 것을 다 전담해주는 것은 아니고, 다니던 병원에서 정기검진하고 처방전을 받는 것은 가족이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병원을 모시고 가면서 외출했고, 밖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요양병원과 달리 요양원은 사전에 예약하면 외출, 외박도 할 수 있는데, 아직 날이 추워서 외출 외박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이제 날이 따뜻해지면 햇빛 따사로운 날을 골라 외출도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모시고 와서 외박도 할 예정입니다."
- 요양원 밖에서 어머니를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어떻던가요? 가장 걱정되시는 게 있다면.
"엄마가 스스로 당신의 불편함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지요. 우리 아들이 태어난 다음 해인 2001년부터 모시고 살면서 엄마는 단 한 번도 "이게 싫다. 불편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정성껏 보살핀다 해도 요양원 입장에서는 많은 수용자 중의 한 명일 텐테, 가족과 같은 입장에서 불편함을 미리 알고, 돌봄을 한다는 게 가능할지 걱정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입소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겠다던 요양원 측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겠지요. 그게 최선인 듯합니다."
- 요양원 선택하실 때 기준 같은 게 있으셨는지. 어떤 걸 고려해야 할까요?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이동이 자유롭고 혹시나 있을 만일의 상황에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으니까요. 이 조건을 미리 정해놓고 그 다음에는 주위 평을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제주는 아무래도 지역 사회다 보니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서 얘기를 듣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은 상담을 받으면서 시설과 한 방에 몇 분이 생활하는지를 듣고 결정했습니다."
- 요양원에 가신 어머니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말벗이 생긴 거 아닐까요? 엄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같은 처지의 분들과 얘기하는 것을 참 좋아했습니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집에 혼자 있는 동안에는 많이 무료했겠지요. 집에 가족이 있어도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엄마를 요양원 보내놓고 드는 여러 감정(미안함, 죄책감, 불안함)이 들지만 말벗이 생겨 좋아하시는 모습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혼자 감당하면 포기해야 하는 일 많아
- 돌봄 노동은 대부분 50대 이상 여성의 일로 대부분 생각해오곤 했는데, 기자님의 경우는 아들이 돌봄의 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인상 깊게 읽으신 것 같아요. 부모를 돌보는데 아들딸 구분이 없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기자님의 경우엔 워낙 오래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리 되셨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형제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면요?
"엄마가 지금껏 살아온 세월과 처한 특수성 때문이겠습니다. 엄마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1983년에 실명을 하신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엄마의 지난 세월을 말하려면 몇 날 몇 일도 모자랍니다. 이런 엄마를 제가 보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들 낳은 다음 해인 2001년에 엄마를 모시고 왔습니다. 당연히 제가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부분에서는 조금도 고민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혼자 하면 힘든 법이지요. 물론 우리 가족들이 합심하고, 특히 각시가 발벗고 돌봄을 같이 하지만 힘들 때 많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뭐냐 하면, 저희 가족 네명(나, 각시, 아들,딸)은 단 한 번도 네 명만 여행을 갔다 온 적이 없습니다. 해외 가족여행은 아예 생각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엄마를 혼자 두고 여행을 가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거동을 할 수 있을 때는 국내여행을 몇 번 같이 했습니다.
혼자 감당하면 포기해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포기가 그저 당연한 걸로 알고 살았습니다. 형제가 돌봄을 같이 하게 되면 아무래도 부담이 덜해집니다. 가끔은 짓누르는 무게가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이 나누면 덜해지듯이 돌봄을 같이 하면 부담도 덜하고 가끔 불쑥불쑥 드는 서러움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 같아요."

▲워커를 이용해 걷기 연습을 하시던 때의 어머니. ⓒ 강충민
- 말씀 하셨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두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머니를 오래 모시면서, 이런 건 좀 사회가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들이 혹시 있었을까요?
"우리 가족은 엄마를 요양원 보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를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그 고민은 금전적인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금전적 부담으로 요양원 입소를 망설이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적어도 이런 부담감만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득별로 부담 금액이 차등 적용되고 있는데, 이마저도 부담인 가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는 것은 엄청난 예산확보 등, 문제 해결에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담의 비율을 완화시키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기사 댓글을 보면 전부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 같았어요... 그 글들을 보면서 돌봄이 기자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어요.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을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실 내용이 있을까요?
"정말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소수를 제외하고, 거의 다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내용이더군요, 지금 벌어지는 우리 모두의 일이며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미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댓글 중에는 정성껏 차린 설 음식이 마지막 만찬이었다고, 제 마음을 할퀴는 글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불효를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많은 글에서 응원을 받았고 위안받았습니다. 차마 댓글 하나도 답을 달지 못했습니다. 들켜버린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아쉽고 후회되고 미안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처럼 엄마가 건강하셨을 때 더 추억을 쌓을 걸 하는 아쉬움이 계속 듭니다. 그래서 엄마가 요양원에 계신 지금도 더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요양원 입소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아쉽게도 시원한 답을 드리지 못하겠네요. 우선 가장 중요한 건 부모님이 동의를 하셔야 되겠더라고요. 주위에서도 억지로 보내듯이 했다가 적응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봤거든요.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으면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짐작하고도 남으니까요.
그리고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셨다고 해서 자식들의 일이 끝나는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해요. 요양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들 말로도 요양원에 모시고, 1년에 두세 번도 안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하더라고요. 혹여 우리 가족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하고 있지요. 요양원에서 알려준 폰으로 자주 전화로 드리고요. 초기에는 간혹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 수 있으니 그러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