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한민국독서캠페인 리딩코리아(CJB 청주방송)를 제작하면서 독자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선정도서와 추천도서를 소개합니다.
2023년 1월 뉴욕타임즈에는 한 프랑스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부고 기사가 실렸습니다.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한 레지스탕스 위조범 이야기였지요.
위조범 아돌포 카민스키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밤을 새워가며 위조 신분증 서류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아돌포의 서류 덕분에 유대인 어린이와 부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체포망을 벗어나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지요.
아돌포 카민스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습니다. 십 대 시절 노르망디의 염색 공장에서 배운 얼룩 제거 기술이 그를 레지스탕스로 이끌었지요.
아돌포는 18세부터 레지스탕스 조직에서 신분증과 식량 배급 카드 등을 제작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는데요. 염색공장에서 배운 약품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스스로 좋아서 공부한 화학 지식 덕분에 가장 가장 뛰어난 문서 위조범이 되었습니다.

▲어느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생애책 표지 ⓒ 박은선
레지스탕스 위조범 아돌포의 존재는 지난 80여 년 동안 비밀의 영역에 봉인돼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그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사실을 전혀 몰랐지요. 지하 동굴의 암흑 속에 영원히 묻힐 뻔했던 아돌포 카민스키의 비밀스런 서사를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낸 것은 다름아닌 아돌포의 딸 사라 카만스키였습니다.
사라는 아버지의 비밀과 사연, 수수께끼를 언젠가는 자신이 밝혀야겠다 생각했었지요. 2년에 걸쳐 조사와 20여 건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선택한 저항의 삶을 기록해나갑니다. 아버지 아돌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침묵까지 해독해내기 위해 몰두했지요.
수많은 에피소드 속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아 내고, 아버지가 던지는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딸이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 거리두기까지 하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파헤치지요.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 아돌포의 목소리로 발화하는 완벽한 회고록을 완성했습니다.
죽음, 시간.
아버지는 내가 이 책을 써야 하는 이유를 방금 짚어주었다.
너무 늦지 않도록.
아버지가 당신의 비밀, 당신의 사연을 품은 채 스러지지 않도록.
당신 삶의 수수께끼들이 답을 찾지 못한 채 남지 않도록.
책 <어느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생애>는 완벽하게 구성된 최고의 첩보물과 다름 없을만큼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수많은 사람을 구했던 레지스탕스 위조범 아돌프는 자신이 만든 위조 서류 한 장에 한 사람의 생명이 좌우된다는 극심한 무게감을 안고 살았지요.

▲아돌포 카민스키(1944년, 19세)19세 아돌포 카민스키 ⓒ 빵과장미
독자들은, 내일 새벽이면 게슈타포에게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끌려갈 운명에 처한 유대인들을 구해내기 위해 밤을 새워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낸 소년 레지스탕스의 숨막힐 듯한 긴장감을 생생하게 느낍니다. 인간 생명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간 위대한 레지스탕스를 만나지요.
어느 날 아돌포는 내일 새벽에 체포될 예정인 유대인 가족 열 가구를 살릴 수 있는 프랑스 신분증을 만들어 직접 전달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에는 자신이 체포 대상이라는 말을 아예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재차 설득해야 생각을 바꾸었고, 아예 설득되지 않는 이도 있었지요. 이렇게 아돌포는 문서위조 작업실에 앉아 있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체포될 위험을 무릅쓰고 가로등 불빛에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림자로 변해서 벽에 딱 붙어 다니'며 위조 서류 배달까지 했지요.
아돌포 카민스키는 문서 제작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염색 작업을 배우면서 알게 된 화학 지식 덕분에 종이에서 지워야할 잉크를 지우는 법을 알고 있었지요. 그 기술이 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에서 수천 명의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돌포 카민스키는 1940~60년대까지 세계를 휩쓴 불의한 전쟁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대의를 위해 자신의 기술을 발휘했습니다. 독자들은 아돌포의 딸 사라의 질문을 따라가며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삶의 퍼즐을 완성해갑니다.
"드랑시에서 어떻게 나왔어요?"
아돌포의 가족들이 당국이 안내한대로 시청에 찾아가 유대인 등록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독자들은 유대인 등록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수거대상 목록에 스스로 이름을 올린 것이지요. 결국 아돌포의 가족은 체포되어 드랑시 수용소에 갇힙니다. 드랑시에서 아우슈비츠로 압송될 죽음의 문턱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아르헨티나 여권이었습니다.
아돌프 가족의 사연은 당시 동유럽 출신 유대인 가정의 전형적 사례였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러시아인으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정부로부터 추방되었지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라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어서 아르헨티나로 갔던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왔던 아돌포 가족은 아르헨티나 국적 덕분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지 않았던 것이지요. 자신도 난민이었기 때문에 난민들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 아돌포는 이런 소용돌이를 겪으며 '서류'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서류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독일군이 모든 전선에서 후퇴하면서 나치의 인종 청소는 극에 달합니다.
나치가 당장 사흘 후에 파리 일대 열 개 보육원을 동시에 털 것이라는 첩보가 들어오고 300명이 넘는 체포명단까지 확보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무려 300명이 넘는 이들에게 식량배급카드, 출생신고서, 세례증명서, 통솔할 어른 신분증, 임무지시서, 집단통행허가증까지 만들어줘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사흘뿐.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돌포 카민스키(2009)아돌포 카민스키 ⓒ 빵과장미
단 한 숨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생명 연장 서류를 만들던 아돌포가 스스로에게 한 냉혹한 다짐은 독자들의 심장을 멎게 할만큼 깊은 감동을 일으킵니다. 어쩌면 평생 아돌포의 삶을 관통한 핵심 가치인 것 같지요.
한 시간에 위조 신분증 서른 개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한 시간 잠들면 서른 명이 목숨을 잃는다.
아돌포는 극심하게 무리한 작업에 매달리다 쓰러지기를 반복했고, 결국 한 쪽 눈을 실명합니다.
"어쩌다 알제리인들을 돕게 된 거예요?"
딸의 질문입니다. 아돌포는 알제리에 대한 공공연한 인종주의, 차별, 모욕을 목격하면서 프랑스가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 유대인 매부리코를 찾아다니던 나치와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프랑스 당국의 행태를 참을 수 없었기에 알제리인들을 돕는 서류를 만들었습니다.
"그만둘 생각은 안 해봤어요?"
딸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아돌포는 사실대로 말합니다. 때로는 그런 희생이 지겨웠다고.
하지만 잠시라도 자신의 손에 달린 이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자기 연민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위험에 처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락과 기쁨을 포기했던 것이지요 .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1945년 여름 파리가 해방되자마자 아돌포는 군에 자원 입대합니다. 군 비밀정보부에 들어가 위조문서를 만들었지요. 상황이 급변하면서 독일군이 항복을 선언하자 긴급 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장차 식민지 재탈환에 나설 준비 차원에서 인도차이나 지도를 제작하라는 임무였지요. 전쟁은 끝났고 아돌포에게는 새로운 군사 첩보 업무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곧 벌어질 식민 전쟁에서 본의아니게 첩보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아돌포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지난날 해온 일들은 인간의 의무였지 선택이 아니었다."
만일 인도차이나 사람들이 저항에 나선다면,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했던 일과 무엇이 다를까? 아돌포는 바로 사직서를 냈습니다. 젊은 아돌포는 존경스러운 반식민주의자였습니다.
<어느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생애>는 <빵과장미> 출판사가 낸 책입니다. 사라 카민스키의 훌륭한 문체를 이세진 번역가가 천의무봉의 솜씨로 옮겼습니다.
사라 카민스키는 아버지의 인생에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을 모아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어냈습니다. 독자들은 딸이 던지는 질문을 좇아 아돌포의 경이로운 삶의 퍼즐을 완성하게 되지요.
"드랑시에서 어떻게 나왔어요?"
"어쩌다 알제리인들을 돕게 된 거예요?"
"그만둘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아돌포 카민스키는 매우 솜씨 좋은 위조전문가였지만 위조서류를 만들어준 댓가로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가난했고 현장을 떠난 뒤로는 사진 일로 연명했지요.
디아스포라의 신산한 삶을 살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헌신과 인류애, 자기절제로 '인간의 의무'를 실천한 아돌포 카민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피디카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