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혁신파크는 시민들의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있는 공간입니다. 시민들은 이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지금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서울혁신파크부지를 기업에 매각하는 절차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2월 20일 기업매각 공고 이후, 오는 4월 21일 기업과의 계약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민의 땅 시유지, 시민의 추억이 깃든 공간, 시민들이 누려왔던 공간을 기업에 팔아넘기며 어떻게 민주주의와 공공성을 훼손하는지 몇 편에 걸쳐 전합니다.

▲서울혁신파크 피아노숲에서 열린 혁신파크를지키는시민모임 출범 기자회견 장면 ⓒ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비상계엄과 내란행위는 한국사회에 많은 성찰적 지점을 남기고 있다. 지금은 양극단으로 치달은 양상이 매우 심각하지만, 헌재의 탄핵 결과에 따라 우리 모두는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 모두 함께 돌아봐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 깊고 넓게 돌아볼 시간이 꼭 오길 바란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최대 규모의 불평등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 경제 민주주의를 향한 저항으로 확대되었고 자본주의와 정치권력이 빼앗아간 돌봄-가족돌봄을 넘어서 자기돌봄과 사회돌봄-의 시공간에 대한 요구로 나아가고 있다. 곧 나의 노동과 휴식, 돌봄 시간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시간민주주의, 나의 삶과 주거, 여가와 활동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공간민주주의로 '민주주의 문제'가 확장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공간' 앞에서 멈추는가?
서울혁신파크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주장은 '서울혁신파크가 개발을 위한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개발 반대만을 담고 있지 않다. 바로 공간민주주의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공간, 특히 공공의 공간은 모두의 것이다. 그렇기에 서울시 소유의 시유지라는 공간은 서울시민의 것이다. 그러나 그간 중앙정부, 지자체 정치권력은 공공의 공간을 자신들의 사유지처럼 취급해왔다. 권력이 공유지를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하면 국민과 시민은 그 결정을 그대로 따라야 했고, 권력이 결정한 활용 방안에 따라 그 공간을 그저 이용하는 소비자가 돼야 했다.
서울시장이 공원으로 하겠다 하면 공원을 이용하면 되고, 대통령이 민간에 매각하겠다고 하면 어제까지 산책하던 공간이 사라져도 묵묵히 따라야만 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인근 주민의 의견을 청취하거나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행정 절차를 형식적으로 처리하면서 권력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권력은 공간에 대한 공급자로, 시민은 소비자로 다뤄져 온 것이다.
정치권력은 4년마다 바뀌지만 공유지는 거기 그대로 있다. 그렇기에 공유지의 결정권을 4년 임기인 권력 마음대로 할 수 없어야 한다. 보통 공유지 공간을 바꾸는 과정은 아무리 짧아도 4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유지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공유지는 공기, 물 같이 마음대로 소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공공재, 아니 모두의 소유인 공유재다. 이를 커먼즈(Commons)라고 부른다.

▲혁신파크 지키는 각종 시민행동 포스터 모음 ⓒ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우리가 아무리 모든 권력을 위임하는 대의정치체제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유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서울혁신파크 같은 대규모 공유지에 대해선 권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상황을 반복해선 안 된다.
공유지 활용방안은 소유 주체인 '서울시민'이 결정해야 하며 이 공유지의 운영 역시 시민이 직접 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법률은 사실상 서울시장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가 '공간' 앞에서는 멈춰버린 것이고, '공간' 앞에서는 독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대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한강르네상스(2007년)를 그레이트한강으로 이름만 바꿔 개발하듯,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조감도 정치를 바로 꺼내 들었다.
당초엔 SH 도시개발계획 방식에 대해 말하더니 사업성을 이유로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특혜를 제공하는, 사실상 무늬만 공공개발사업인 계획을 알렸다. 서울시가 혁신파크 운영이 2023년 12월 종료됨을 알린 뒤부터 바로 입주 단체, 사회적기업들은 퇴거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카페쓸, 장애인치과를 포함한 입주단체에게는 2025년 1월부터 명도소송, 벌금(변상금)까지 물리는 등 민간 건물주보다 더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공간 독재에 맞서는 공간 민주주의의 몸짓들
혁신파크 인근 지역의 주민들과 남아 있던 입주단체, 은평 지역 시민단체들은 본격적으로 '공공 공간 지키기' 싸움을 시작했다. 시민들은 2023년 여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혁신파크에서 행사를 벌였다. 이들이 혁신파크를 지켜달라며 진행한 서명운동엔 2만여 명이 참여했다. 같은해 7월부터 혁신파크 피아노숲, 운동장 등에서 1박2일 텐트 축제를 열고, 공공성 페스티벌, 내가 만드는 혁신파크, 시민 행진 등 다양한 공간 지키기 행동을 시작했다. 폐쇄, 철거와 같은 공간독재에 맞서는 공간 민주주의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공무원이 가로막고, 경찰력이 동원돼도, 굴하지 않고 시민들만의 방식으로 행사를 만들어나갔다. 개인 현수막 달기, 스티커 붙이기 등 다양한 액션들도 눈에 띄었다. 카페쓸 공간을 지키기 위해 세 번의 파티를 개최하기도 했고 '혁신파크 나무 모니터링' 등을 통해 인간만이 아닌 뭇생명들의 혁신파크를 기록해나갔다.
그렇게 공간의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들은 더 커져 같은해 7월 20일에는 인근주민들이 함께 하는 '혁신파크지키는시민모임'이 만들어졌다. 또한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혁신파크를 지켜야 다른 서울지역의 공간을 지킬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난해 3월 5일 '혁신파크공공성을지키는서울네트워크'를 결성했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의 '공간독재'는 더욱더 강력한 조치들을 취해나갔다. 2024년 8월말에는 시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물인 카페쓸과 시민들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는 참여동 건물을 철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민들은 더 이상 평화로운 방법만으로는 독재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여기고 강력한 저항을 시작했다.
2024년 8월 30일부터 70여일간 진행한 천막농성과 금요집회엔 연인원 1천명 이상이 참여했다. 당시 은평지역 합창단 멤버들이 모여 노래하고 놀며 천막 농성을 이어갔다.
공간 독재의 정점, 기업 매각

▲혁신파크 공공성지키기 서울시민결의대회 소수자와 함께하는 투쟁펑크듀오 소수윗의 연대 공연 장면 ⓒ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천막농성과 금요집회 ⓒ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천막농성은 ▲상업개발 반대 ▲철거 중단 ▲공간 개방 ▲서울시민 의견 청취 등을 요구하며 진행됐다. 그러나 오세훈의 서울시는 묵묵부답이었고, 급기야 2024년 9월 중순엔 혁신파크부지를 기업에 매각해 개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서울시장 맘대로 하는 공유지가 아니라 기업 맘대로 하는 사유지로 바뀐다는 이야기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서울시가 부지를 2종 일반주거지역 값으로 매각한 후 종상향 해주고, 용적률은 1.2배 상향하고, 공공기여량을 최대 1/2까지 완화해준다는 것이다. 또 공공기여금은 창조기업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시설에 재투자하겠다고 했다. 이는 어떻게든 기업에 헐값으로라도 매각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다.
지난해 9월 25일 개최된 서울시의 기업설명회 현장에서 시민들은 '시민설명회는 열지 않으면서 기업설명회부터 여느냐'고 항의해 설명회를 무산시킨 뒤 서울시 관계자에게 시민설명회 개최를 약속 받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틀 전에야 주민설명회(지난해 11월 7일)를 공고하는 등 졸속으로 진행했다. 이에 시민들을 주민설명회를 무산시키는 행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민들의 항의와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일부터 개최된 서울시의회 정기회에 공유재산관리계획을 기습적으로 제출했고,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공간독재가 이제 의회독재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기업설명회 현장에서 질의 요청하는 서울시민을 끌어내는 서울시 관계자들 ⓒ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은평주민 60.9%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박주민-김우영 의원 의뢰로, 조원씨엔아이가 은평구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2024년 12월 16~17일 진행) 결과에도, 오세훈 시장은 일사천리로 혁신파크 부지에 대한 기업매각공고를 강행했고, 지금 매각 입찰 절차가 진행 중이다. 오는 4월 20일 입찰을 종료하고 최고가에 대해 낙찰 공고를 강행할 예정이다.
오 시장은 지난해 8월 "대선 출마 가능성이 51%"라고 한 뒤 사실상 대권행보를 보이고 있다. 곧 서울시장 자리를 내려놓을 수도 있는 인물이 시유지 매각이라는 백년지대계를 좌우하려는 게 못마땅하다. 그에게는 서울 시민도, 서울 공유지도, 서울시 행정도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오세훈 시장에 의한 공간 독재는 이미 시민들의 혁신파크를 앗아가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은 사라지고 강아지들의 산책공간은 협소해졌으며 나무들은 베어지고 새들은 둥지를 잃고 있다. 건물은 사라지고 철거펜스만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공간'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행동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것이다. '공간'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이 있기에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그리하여 혁신파크는 결국 '빼앗긴 공간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빼앗긴 민주주의에도 다시 민주주의의 봄은 오고야 만다'는 카페쓸 앞마당에 핀 진달래꽃의 당당한 외침은 승리할 것이다. 비상계엄과 내란이라는 겨울이 물러나고 다시 민주주의 봄이 오듯이, 혁신파크의 진달래와 목련의 봄을 기다려본다.

▲혁신파크 카페쓸 앞마당에 핀 진달래꽃. 2024.03.24. 촬영 ⓒ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혁신파크공공성을지키는서울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 정의당 은평을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