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넘게 이어가고 있는 독서 모임이 있다. 글쓰기 모임으로 인연을 맺은 열 명 내외의 사람이 2주마다 모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한다. 감상을 나누며 각자 메모도 하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공중에 흩어지는 것 같아 늘 아쉬웠다.
'지금 나누는 이야기를 그냥 녹음해서 방송해도 재밌는 팟캐스트가 될 텐데.'
팟캐스트 제작 경험이 있는 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마이크와 무료 오디오 편집 프로그램(Audacity)만 있으면 가능하니까. 산꽃, 바로간다(아래 바간), 유초(유월의 초록)와 함께 세 명이 일단 시작했다.
2024년 6월,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 <그래 글에서> 첫 방송을 업로드했다. 첫 책은 최은영의 단편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예상보다 재생 수나 댓글 등 방송의 반응이 좋았다. 그 후로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금요일에 책 이야기를 나눈 '토크편'과 발췌한 글을 읽는 '낭독편'으로 번갈아 올리고 있다.
'토크편' 편집은 내가 하는데, 편집을 하다보면 1시간 30분 가량의 녹음 원본을 최소 5번 이상 듣게 된다. 지겹냐고? 아니다. 들을수록 '아, 이런 이야기도 했구나!' 싶어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이야기가 산만하다 싶을 때는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프로그램 클로바노트(clovanote)를 이용해 글로 미리 정리한다. 귀 기울이지 않으면 흘려듣기 쉬운 음성을 대화체의 글로 보니, 눈으로 꼭꼭 씹어 먹는 듯 했다.
'글로 읽는 팟캐스트'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재 기사를 기획했다. 3만자를 다 옮길 수 없어 가장 핵심 내용만 추려보았다. 가장 최근 에피소드인 한강의 <희랍어 시간>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희랍어시간 표지 ⓒ 문학동네
방송듣기 : 그래, 글에서 한강의 <희랍어 시간>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229
산꽃: 안녕하세요. <그래 글에서>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드디어 우리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 인데요. 평론가 사이에선 한강 작가의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보석 같다면, <희랍어 시간>은 원석 같은 작품이다'라고 한다죠. 줄거리 소개부터 할까요?
유초: <희랍어 시간>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남자는 15살에 독일로 건너가 자랐는데요. 유전적 안과 질환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학원에서 희랍어와 희랍 철학을 강의하며 혼자 살고 있죠. 강의를 듣는 학생 중에 한 여자가 있는데요. 그 여자는 고등학교 때 실어증에 걸렸다가 프랑스어라는 낯선 언어를 통해 말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20년 만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고 이번에도 낯선 언어를 찾아 희랍어 수업을 듣게 된 것이죠. 어학원에 날아 들어온 어린 새를 함께 구하려다가 남자의 안경이 깨지고, 여자는 그의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가까워지게 됩니다.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은 과연 만날 수 있을까요?
산꽃: 등장인물부터 살펴볼까요? 주인공 남자는 아버지의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어가요. 이유가 분명하죠. 그런데 주인공 여자가 말을 잃은 이유는 정확히 나오지 않아요.
유초: 여자의 어머니는 임신 중에 장티푸스에 걸려 독한 약을 먹어야 했어요. 친척들은 농담처럼 여자에게 '너는 태어나지 못 할 뻔했다'라고 자주 말했죠. 여자는 그 언어가 주는 공포감이 컸다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위협감을 느꼈겠죠. 언어의 무서움이나 두려움으로 하고 싶은 말도 자꾸 삼키다 보니 말을 잃어버리는 단계까지 가지 않았나 싶었어요.
바간: 어떻게 보면 언어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언어가 생각을, 사람과 존재까지 규정해 버리죠. 판단하고 가르고 결정해버리는 언어의 힘은 무섭죠. 하지만 말이 없으면 모호하고 명료해지지 않겠죠. 그 명료함 자체가 언어의 폭력성이기도 하죠. 무기처럼 언어를 사용하느니 침묵하겠다 하는 선언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산꽃: 책에는 고대 그리스어, '희랍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바간: '칼레파 타 칼라 (χαλεπά τά καλά)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p69)' 고대 희랍어에는 이렇게 아름다움이라는 단어 속에 여러 의미가 다 같이 들어 있다고 하죠. 분절되지 않은 채로 그 안에 여러 관념이 같이 들어 있는 거죠. 'A는 B야'라고 협소한 의미로 정의해 버리면 그말 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가 삭제돼 버리잖아요.
한자도 그렇죠. 여러 뜻이 같이 있고 심지어 반대말까지 하나의 한자가 갖고 있단 말이에요. 동아시아 사람들은 음과 양, 음이 양을 태동시키고 양이 다시 음으로 전화되는 것을 생의 원리, 우주의 원리로 믿었잖아요. 기쁨 자체가 고통의 씨앗이고 고통은 다시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사고방식이죠. 예를 들면 한자에 '얻을 득(得)'에는 덕을 베푼다는 '덕(德)'의 의미가 있어요. '얻는 것이 있으면 베풀어야 한다'는 그런 깊은 뜻이 있는 거예요. 그런 식의 언어가 고대 희랍어 아니었을까.
유초: 저는 취미로 하와이 춤 훌라를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하와이어를 배우게 되는데요. '이케(ike)'라는 단어에는 '보다' '듣다' '지혜' 등등 여러 의미가 들어 있거든요.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지혜가 될 수 있고, 잘 보고 잘 듣는 것 속에서 지혜가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게 아름답게 느껴져요. 고대 언어가 덜 분화된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구나 싶었어요.
산꽃: 우리가 지금 쓰는 언어는 명료함에 치중하다 보니까 매몰되는 면이 있죠. 하나의 언어가 상반된 의미나 다양한 의미가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과 맥락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언어를 해석할 수가 없게 되는 거예요. 그 상황과 맥락에 살피려면, '현재'에 몰입할 수 있는 그런 감각적인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자, 드디어 두 주인공이 강의실이 아닌 공간에서 두 사람만 함께 있게 되죠?
유초: 두 사람이 어학원 지하실로 날아 들어온 어린 새를 함께 구하는 상황인데요. 지하도 어둡고, 말과 시력을 잃어가는 것도 어둠이라고 봤을 때, 그 어둠 안에서 둘이 연약한 어린 새를 구하려는 행동이 어떤 작은 빛을 의미하지 않나 싶었어요.
바간: 두 사람이 나중에 손바닥에다가 손으로 써서 필담으로 소통하잖아요. 접촉해야만 가능한 언어죠. 쓰는 사람의 체온, 힘의 정도 등등이 고스란히 몸으로 전해지면서 살아있는 존재와 존재가 현존하는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이하 생략)

▲일본 오사카 대형 서점에 마련된 한강 작가 코너. 팻말에 "축! 노벨문학상 수상! 아시아 여성 작가로 최초 수상.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라고 적혀있다 ⓒ 전윤정
지면상 팟캐스트 내용은 여기서 생략하지만, 우리는 '소통과 불통'이라는 주제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강 작가는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서 산다고 한다. <희랍어 시간>을 쓸 때는 '우리가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상을 계속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였다. 책이 나온 후,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의 연한 부분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고 할까요? 두 인물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소통할 때 자신의 가장 연한 부분을 꺼내잖아요. 손바닥에 글씨를 써준다든지 서로 침묵하는 순간 그런 것들이 인간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그 연한 부분에서 삶을 시작하여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양극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생각을 말하면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몰린다. 그런 세상에서 개인이 연한 부분을 내놓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공격의 대상이 되고, 상처받으니까.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연한 부분이 있고, 다른 사람의 공감과 배려, 사랑으로 덧대어질 때 단단해진다. 나의 연한 부분을 안전하게 내놓을 수 있고, 서로 연결될 때,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팟캐스트를 마무리할 때, 우리의 가슴에 꺼지지 않을 작은 군불이 지펴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