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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우리는 플라스틱을 산다. 과일이나 잡곡류, 견과류는 '보기 좋게'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다. 마트에서 자체적으로 소분해 파는 식재료는 스티로폼 트레이에 랩으로 둘둘 감싸져 있고, 소비자가 직접 담아 가는 채소류도 비치된 비닐봉지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집에 돌아가 장본 물건을 정리하다보면 내가 먹거리를 사온 건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사온 건지 모를 지경이다.

1+1 행사나 각종 대용량 상품들로 인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게 되는 것도 대형마트의 함정이다. 식구 수도 적은데 할인 행사에 홀려 계획보다 많은 양을 사고, 일부는 남아서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한 번 가면 주차부터 해서 한 시간은 기본으로 잡아먹는 것도 피곤해서 나는 대형마트를 거의 가지 않는다.

대신에 온라인 장보기를 활용하는데, 이 또한 쓰레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냉장이나 냉동식품을 구매하면 스티로폼 보냉상자에 아이스팩이 여러 개 동봉되어 온다. 아이스팩을 최대한 재사용하고 보냉상자도 그냥 버리기보다는 당근마켓에 올려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을 하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더 나은 방식은 없을까 늘 고민한다.

가끔은 오일장에 간다. 시장은 그래도 사정이 낫다. 내가 장바구니나 비닐봉지를 준비해서 가져가면 새 비닐이 사용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이미 스티로폼 트레이에 전부 포장되어 있어서 선택의 여지 없는 대형마트와는 다르다.

그런데, 장바구니 가득 장을 봤는데 비닐봉지 한 장 쓰지 않는 시장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지난 주말 이런 장보기를 체험하고 신세계를 만난 듯했다. 300회를 맞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이야기다.

자연의 먹거리를 비닐 포장 없이 파는 파머스마켓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는 매주 토요일 낮 제주 한살림 담을매장 야외에서 열리는 시장이다. 유럽 등지에서는 도시마다 '파머스마켓'이라고 해서 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가지고 나와 파는 시장이 열린다. 서울에도 마르쉐 등의 농민장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그런 시장이 내가 사는 제주에도 있다니!

 매주 토요일 오후 제주 한살림 담을매장 야외에서 열리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매주 토요일 오후 제주 한살림 담을매장 야외에서 열리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 박솔희

농민장터에 가기로 한 날, 전날부터 비 예보가 있었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인스타그램을 확인해 보니 비가 와도 예정대로 진행한단다. 지난 3월 15일은 행사가 300회를 맞는 날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주 토요일마다 모인 지가 벌써 7년이 됐다고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공지를 믿고 장을 보러 갔다.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둘러봤다. 같은 '시장'이라도 제주시 오일장처럼 큰 시장과는 달랐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떼다 파는 큰 매장은 없고 작은 매대 부스에서 각자 생산한 농산물, 직접 구운 통밀빵이나 된장, 막걸리, 식초, 비건버터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는 무포장 농산물을 판매한다.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는 무포장 농산물을 판매한다. ⓒ 박솔희
 통밀빵은 광주리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통밀빵은 광주리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 박솔희

밭에서 갓 뽑아온 듯 신선한 작물들이 콘테나(직사각형 플라스틱 용기, 밀감을 따서 나르거나 저장용으로 쓰는 용기)째로, 혹은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인증과는 별개로 무농약, 논지엠오 작물이다. 재사용 유리병을 활용한 상품들도 보였다. 요즘 눈이 침침하던 참인데, 유리병에 담긴 결명자차가 눈에 띄어 구입했다. 가격은 단돈 3천원. 중간 유통과정이 없어서인지 가격도 저렴했다.

'씨앗바람 연구소' 부스에서는 토종 종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백왕오이와 옥지기가지, 토종부추 새우리 씨앗을 받았다. 베란다 텃밭에 심어볼 생각이다. 지난해는 루꼴라, 상추, 시금치, 대파 등을 심었는데 절반도 못 건졌다. 이번에는 잘 키워보고 싶다.

누룩간장, 누룩미소된장을 시식해보고 맛이 좋아 한 병씩 샀고, 토종종자로 농사지은 통밀가루, 채소 베이스로 만든 '비건곰탕' 등을 구입했다. 서양대파인 리크도 눈에 띄었다. 나처럼 요리에 관심 많은 사람으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식재료가 많았다.

생산자를 직접 만나는 '얼굴있는 거래'

사과식초를 시음해보고 사려고 했더니, 여기는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물물교환'을 한단다. 뽑기판에서 무얼 가져와야 하는지 뽑아서 그것을 시장에서 사오면 되는 것이다.

나는 달걀을 뽑았는데, 농민장터의 인기 상품이라는 달걀은 진작 매진되고 없었다. 대신에 당근을 사다 드리고 맛좋은 사과식초를 받았다. 최초의 시장은 이렇게 물물교환을 하는 장소였을테지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 와도 재미있는 경험이자 교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농민장터에서 장보는 과정은 '얼굴있는 거래'였다. 결명자를 얼마나 넣고 차를 끓이면 좋은지, 누룩미소된장은 어떻게 활용하는지 상품을 만든 생산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 마트에서 포장지만 보고 골라 카트에 넣고, 무인계산대에서 기계 화면을 보고 결제하는 것과는 딴판이었다.

 몇만원어치 장을 봤는데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봉지가 하나도 한 나왔다.
몇만원어치 장을 봤는데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봉지가 하나도 한 나왔다. ⓒ 박솔희

집에 돌아와 장본 것을 풀어보니, 놀랍게도 통밀가루가 담긴 비닐 지퍼백이나 손두부가 담긴 용기를 제외하면, 모두 재사용할 수 있는 병에 담겨 있었다. 봄동이나 당근은 바로 내 장바구니에 담아 왔고 흙대파는 재사용 종이가방에 담아주셨다.

마트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유통 과정에서의 신선도 유지, 완충도 있지만 보기 좋게 진열하려는 목적이 크다. 잠깐 동안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해 일회용 용기에 담기고, 그것을 분리해서 버려야 하는 것은 또 소비자의 몫이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것은 둘째치고 쓰레기 배출이라는 가사 노동을 가중한다.

포장이 없으니 장바구니 정리도 금방 끝났다. 저녁으로는 오늘 사온 봄동으로 겉절이를 하고, 두부를 넣어 찌개를 끓였다. 손두부는 너무 맛이 좋아 따로 썰어서 누룩간장을 곁들여먹었다. 식사 후에는 혈당 스파이크를 잡아주는 사과식초를 물에 타서 한 잔 마셨다. 만족스러운 만찬이었다.

다음 토요일에도 농민장터에 가려고 한다. 두부를 또 살 것이고, 이번에는 인기 품목이라는 달걀도 노려본다.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도 데리고 가서, 막걸리도 시음하고 입에 맞는 걸 사올 생각이다.

마트가 없던 옛날에는 다들 이렇게 오일마다, 칠일마다 열리는 장에 가서 먹거리를 샀을 것이다. 벌써부터 주말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인스타그램 @jejunaturalfarmers


#파머스마켓#농민장터#자연그대로농민장터#무포장장보기#제로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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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청춘, 내일로>,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이후 쭉 제주에서 살고 있다. 2021년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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