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 6월 4일 김대중의 김영삼 지지시위미국교포 70여명과 함께 김영삼 지지 시위를 한 김대중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1983년 8월 15일 해방 38주년에 즈음하여 김대중과 김영삼은 워싱턴과 서울에서 연대하는 <8.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김대중은 5.17쿠데타 이후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982년 석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김영삼은 긴 자택연금 끝에 1983년 5월 단식투쟁을 감행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대통령후보를 둘러싸고 분열 경쟁했던 두 사람은 전두환 정권에 맞서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공동전선을 이루고자 하였다. '8.15선언'은 이 결속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84년 5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가 발족되고 민추협을 통해 협력관계는 신한민주당의 창당과 2.12총선의 승리를 가져왔다.
두 사람의 공동선언문은 상당히 장문이어서 '언론인 여러분'과 '법관 여러분' 대목을 싣는다. 공동선언의 부제는 '민주화 투쟁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를 걸고 말기에 '워싱턴에서 김대중', '서울에서 김영삼'이라 명기하였다.

▲84년 12월 11일, 김영삼 민추협 공동의장이 민추협 사무실에서 이듬해 2.12총선에 대한 방침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당시 김대중 공동의장은 국내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어서 김영삼 왼쪽에 앉아 있는 김상현 씨가 공동의장 대행을 맡고 있었다. ⓒ 민청련동지회
민주화투쟁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
언론인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부터인가 관제 언론의 하수인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한마디 정의의 목소리를 싣지 못하며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들려오는 민중의 신음소리를 취재하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진실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와 정의와 양심을 외치는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은 주눅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독재 권력이지 여러분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언론이 그것을 실천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끈질긴 집념과 투쟁과 자유언론에 대한 신앙으로서만 가능합니다. 자유언론을 스스로 실천하고 쟁취했을 때만 여러분은 양심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비록 쓰지는 못하더라도 고통받는 형제들이 있는 곳에 항상 여러분의 모습이 있어 여러분의 취재 수첩으로 뒷날 역사의 증언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법관 여러분
최근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의로운 학생들에 대하여 중형을 선고하고 선량한 학생과 시민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단죄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결코 평안치 못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여러분의 아픔에 앞서 시대의 아픔과 피고인들의 통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법권의 독립은 모든 유혹과 위협을 극복하고 정의에 따라 판결할 때 비로소 수호되는 것입니다. 정변이 있거나 정권이 바뀌어서도 의연히 흔들림 없이 존재하는 사법부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여러분이 정의롭게 사법권을 보위하고 법의 존엄과 정의를 스스로 지킬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에 대하여도 우리의 뜻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한국과 미국은 4반세기에 걸친 혈맹이며,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같은 이념과 이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체제가 공산체제에 비해 우월한 것은 사회의 다양한 활력과 개인의 창의가 보장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자유가 유린된다면 우리는 우리 체제의 우월성을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방관계의 한쪽에서 그 국민이 독재의 억압에 짓눌리고 있고, 우방관계의 한쪽 정부가 독재권력을 지원하여 한국 민중의 탄압을 방조하는 결과로 되고 있을 지도 모르는 바로 여기에 한미관계의 미묘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 측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결과로 되어 국민에 대한 탄압과 독재를 미국이 추인하는 것으로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에는 소수 부패 특권의 독재권력과 그에 대응하여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절대 다수 민중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한정책이 독재권력의 국민탄압을 양해하는 것으로 되거나, 독재권력의 유지에 협력자인 것으로 될 때 지난번 부산 미국문화원 사건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 민중의 의사가 무시된 전쟁 분위기의 조성이나 핵전쟁의 가능성에 대해 한국 국민은 심각한 염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석 1)
주석
1> <80년대 민족·민주선언>, 32~33쪽.
덧붙이는 글 | [광복80주년명문100선]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