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인 폭우로 가세가 기울자 어린 나이임에도 돈을 받고 강제로 결혼하는 파키스탄 소녀들이 늘고 있다. 사진은 프랑스24 방송과 인터뷰 중인 라지 데브. ⓒ 프랑스24 뉴스화면 캡처
파키스탄 신드주 스쿠르구에 위치한 로리 마을. 이곳에 살고 있는 라디 데브는 한 아이의 엄마다. 3년 전인 2022년, 당시 14살이었던 라지는 학교를 다니던 꿈 많은 소녀였으나 홍수 피해로 생계가 힘들어지자 그의 부모는 라지를 결혼시키기로 했다. 결국 라지는 학업을 포기하고 얼굴도 모르는 한 남자로부터 결혼 조건으로 돈을 받고 강제로 결혼했다.
9살부터 15살까지 다니는 500명 규모의 한 초급학교. 이곳에서도 라지와 같은 사례가 많았다. 파키스탄 법률에서는 엄격히 18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결국 가난이 아이들의 조혼을 가져온 것이고, 그것은 기후변화로 인한 대홍수에 기인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많아 가족 모두를 부양하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인한 기형적 결혼관 '조혼', 몬순 신부라는 말까지
노신이라는 이름의 한 소녀는 처음 본 남자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약 1000유로, 우리나라 돈 158만 원가량을 받았다. 이 돈은 파키스탄 근로자 평균 급여의 4배나 되는 액수다. 그의 가족은 2022년 대홍수 때부터 지금까지 파키스탄 정부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국제 보도채널 <프랑스24>는 지난 12일, '파키스탄 기후 변화, 몬순 신부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영상 뉴스로 '전 세계의 기후 위기와 대처'를 강조하며 이와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프랑스24>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2022년 파키스탄 대홍수 이후 매년 극심한 기후변화로 경제 상황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신부를 돈 주고 사는' 기형적인 결혼도 증가했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몬순 신부'라는 말까지 생겼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혼을 하게 된 어린 소녀들은 임신과 출산에 따른 고통과 여러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상황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병실에는 이러한 증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어린 소녀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기후 변화와 관련해 취약한 위치에 있는 파키스탄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10대 결혼이 많은 나라다.
이러한 추세는 남부 신드주에서 더욱 심각하다. 방송은 "파키스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신드주는 매년 여름이면 격렬한 몬순 호우와 기록적인 고온(최대 48도)으로 피해가 크다"며 "결국 (어른 소녀들의) 조혼은 2022년 심각했던 홍수로 인해 파괴됐던 마을의 생존자 가족 사이에서 증가했고, 이는 3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날 이후 홍수 피해가 가득했던 그 당은 땅이 황폐화되고 지하수가 오염돼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도, 가축을 키울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유엔아동기금 "파키스탄, 약 1900만 명의 소녀 신부 있어"
지난 8일 중동 매체인 <알자지라>도 같은 내용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알자지라>는 "파키스탄에서 홍수로 인한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어린 소녀들의 이른 결혼 관행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금(UNICEF)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파키스탄에는 약 1900만 명의 소녀 신부가 있다.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신드주의 13살 소녀 아시파는 "너의 결혼이 정해졌다"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 아시파는 새옷과 반짝이는 보석, 여러 축하 인사가 어리둥절했을 뿐이었다. 그 소녀에게 결혼식이란 선물과 화장, 새옷을 의미했다.
3년이 지나 아시파는 몇 개월 채 되지 않은 어린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진흙과 짚으로 겨우 비 바람만 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몰랐어요. 그것도 저보다 나이 많은 남자, 제가 알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도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때 아시파 부모가 받은 돈은 30만 파키스탄 루피(1070달러, 한화 약 155만 원)였다. 아시파의 부모는 2022년 대홍수 때 고추, 토마토, 양파, 쌀 등을 모두 잃었고, 시간이 지나 풍경은 그대로였으나, 밭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알자지라>는 "많은 가정에서 어린 소녀를 결혼시키는 결정은 생존수단이 됐지만, 동시에 소녀들의 교육과 건강, 미래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가 갈수록 더 크게 변화하고 있다. 정상적인 식량 생산 주기에 필요한 몬순 기후가 불규칙해지고 심각해지면서 농경지에 큰 피해를 주고 식량 부족을 심화시키고,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빠르게 녹고,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며 국제적인 대처가 하루 빨리라도 필요한 시점이라 강조했다.
고마웠던 몬순 우기, 이제는 괴물이 되다
몬순 우기는 '괴물 우기'로도 부른다. 국토의 1/3이 물에 잠길 정도다. 특히, 2022년을 기점으로 지난 30년간 분기 평균 강수량 보다 1.9배 가까운 비가 더 내렸다. 직전인 2024년에도 7월 1일 시작된 계절 장마비 몬순 호우는 6주 가까이 계속 물폭탄을 떨어트리며 1500여 채 이상의 가옥이 파손됐다.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오지의 과수원이 모두 망가졌고, 동부 대도시 펀자브주 라호르시 거리가 물에 잠겼다. 사망자도 154명에 이르렀다. 파키스탄 몬순 호우는 기후 변화로 인해 갈수록 더 길고 오래 내리는 추세다.
특히 파키스탄은 7월에서 9월 사이, 몬순은 수백만 농민의 생계와 식량 안보에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기후 전문가들은 "이상 기후로 몬순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아 산사태와 홍수, 농작물 피해를 주기에 갈수록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이제 해마다 기후 위기로 인한 몬순 호우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다. 그 피해는 파키스탄 뿐 아니라 인근 국가, 전 세계로 미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조혼과 기후위기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기후 위기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 했던 좋은 않은 결과와 인연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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