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천현 작가의 사진전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에 전시된 사진 중 일부. ⓒ 조천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것은 빠르게도 느리게도, 홍수의 계절에는 누런 물빛을 띠고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에는 시퍼런 칼날 같은 물빛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하고 고요하면서도 긴장감을 어리게 하여 흘러간다.
강물의 껍질이 홍수의 계절에 부드러운 건 흙과 만났기 때문일까? 강물은 흙을 운반하여 흙탕물인 채로 역동적으로 흘러 대해에 이르기도 하였다. 강물의 흐르는 힘을 이용하여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운반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기억은 읽어낼 수는 없어

▲조천현 작가의 사진전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에 전시된 사진 중 일부. ⓒ 조천현
같은 민족인 조선에는 아직도 뗏목이 있다. 깊은 산에서 겨울 동안 벌목한 아름드리나무를 묶어서 얼음이 풀리는 봄에 뗏목을 띄운단다. 뗏목꾼들은 그 나무들을 물살에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단단히 엮고 묶어서 떠날 채비를 차려 준단다. 나무와 물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하는 뗏목꾼들. 육로를 통한 목재 운반보다 이렇게 하여 물에 담구어 더욱 튼튼해진 나무는 틀어지거나 갈라지지 않고 좋은 목재가 된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긴 강물의 흐름처럼 오랫동안 남과 북이 갈라져 지나온 세월이 길고 길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북녘 동포들에게 미국에 의해 갈라지고 초토화된 전쟁의 잔상을 지니고 산 세월만큼이나 슬픔과 탄식, 비탄의 정서를 실어 날랐을까?
그러나 조천현 작가가 보여주는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 북녘의 자연 풍경과 일상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이미지들은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디에도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기억은 읽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의 고요와 평화 속에도 역사의 그늘을 비끼지 않을 것이다.
조천현 작가는 38년간 조중 접경지에서 북녘을 바라보면서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카메라를 메고 압록강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 반도의 끝머리에 가까운 전남 영암이 고향인 그는 멀리 대륙을 면한 조중접경 지역을 오가며 당국의 제한 속에서도, 한 장소를 수십 번을 오르내리면서 담아낸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를 통해 북녘의 또 다른 모습을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악마화된 북녘의 인상 깨트린 압록강의 이미지들

▲조천현 작가의 사진전에 전시된‘압록강 뗏목꾼‘의 모습. ⓒ 조천현

▲조천현 작가의 사진전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에 전시된 사진 중 일부. ⓒ 조천현
작가가 전해주는 압록강의 이미지들은 바로 작가 자신의 어린시절이 우리들의 어린시절과 혼융되어 북녘의 현재에서 살아 숨쉬는 공간과 시간으로 변화된다. 그가 개인적으로 겪어온 삶과 남녘과 북녘 사람들의 삶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기에 그의 스코프에 들어온 이미지들은 정겨운 어린시절을 불러온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은 가난했지만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고 정을 나누며 살았던 기억을 불러오고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기억의 고향은 어머니이며 살아 숨쉬는 땅이다. 북녘이 동토의 땅과 전쟁준비하는 악마화된 집단이 아니라 우리들의 어린시절 고향과 겹쳐지고 사립문 앞에서 멀리 길 떠나는 자식들을 배웅하거나 마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이끌어 준다.
그가 불러오는 메르헨은 어린시절의 정감적이며 갖가지 전설이나 설화들이 주저리 주저리 꽃필 것 같다. 그것은 긴긴 겨울밤에 강물이 얼음 속에서 흘러내리는 가운데 고요하고 정감적인 메르헨을 구성한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을 구성해내는 것이 그의 사진이 전달하는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는 둘러앉아 옛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남녘과 북녘 사람들이 있을 게다. 그리고 소발구로 땔감을 싣고 소와 보폭을 같이 하면서 끌고 가는 사람은 어린시절 우리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아닐까?('소발구 행렬')
얼어붙은 강가에 난 길을 걸으며 저녘해가 비추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강가 둔덕의 눈 덮인 넓은 밭이 지니는 장대함은 추위에도 불구하고 안온한 해질녘의 시정을 불러온다. 시와 서사의 공간으로 이끌어주는 그의 이미지들은 우리들의 뇌수에 깊이 박힌 편향되고 악마화된 북녘의 인상을 깨트린다. 그리고 강물이 만들어낸 넓디넓은 삼각주는 산이 숨 가쁘게 달려와 강가에서 멈춘 것인지 강물이 산을 연모하여 배회하며 번롱하는 것인지, 홍수의 계절에는 흙더미를 운반하여 두고 간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장엄하기까지 하다.('뗏목길')
거기에 부지런한 북녘의 일손들이 가꾸어놓은 경지의 풍경은 그대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씨 뿌리는 계절에는 씨를 뿌리고 김을 매는 계절에는 김을 매고 가을에는 거두어들이고 겨울에 잠시 쉰다. 그리고 강은 그네들의 삶의 애환을 잘 갈무리하여 담아두고 발효시키기도 한다.
남녘의 우리들이 가지 못하는 땅에도 새들은 날아서 간다. 그의 작품 중 '새'는 홍수 뒤의 엷은 노랑색 강물 위에 긴 삿갓 모양이거나 날개를 접고 잠시 물 위에 쉬는 새인 듯한 인상의 뗏목을 촬영한 것이다. 홀로 외롭고 작은 뗏목은 넒은 수면 위에 고요하면서도 여유로운 인상을 지닌 이 사진과 대조적인 이미지들은 거대한 두 뗏목의 무리가 만나는 장면에서 마치 큰 새가 하늘 높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있는 듯하다.('뗏목') 거기에는 양쪽 뗏목을 끌고 온 뗏목꾼들이 만나고 있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나무의 한 생과 한 민족의 운명

▲조천현 작가의 사진전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 포스터. 3월 31일까지 인천 중구 소재 갤러리 스타파이브에서 열리고 있다. ⓒ 조천현
동흥물동에서 출발하여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얽히지 않게 만나서 최종 목적지로 가는 긴 뗏목과 뗏목꾼의 여정에서 우리들은 통일의 여정을 읽어낸다. 뗏목을 띄우기 위해 참나무 가지로 단단히 엮고 묶어서 띄우듯 한 민족, 한 겨레인 우리들은 이렇게 통일이라는 최종 목적에 도달하여야 한다.
작가는 고향을 멀리 두고 접경지역에서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남녘과 북녘의 사람들이 겪은 이민족의 침입이나 현재의 분단과 갈라치기 속에서도 한 탯줄의 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통일을 열망하는 사람들을 겹치게 한다. 우리의 통일이 민족적 이상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큰 나무로 자라서 새들을 깃들이고 사람들의 그늘이 드리워진 삶에 쉼의 그늘을 주었던 한 그루의 나무가 목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베어짐으로써 한 생을 마치는 듯하나 그렇지 않고 목재가 되어 훌륭한 쓰임을 받는 것이 필연이듯이 한 사람이 그런 과정을 겪을 것이며 한 민족의 운명 또한 유사하리라.
우리는 외세의 난장질이 치열할수록 더욱 굳게 엮고 묶어야 한다. 뗏목이 새로운 쓰임을 받기 위하여 마지막 사명을 다하러 머나먼 길을 떠나가듯이 우리들도 통일의 대장정을 감행해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들이 동족의 이상으로 엮고 묶어서 통일의 대해에 이를 때까지 조심스럽게 단단하게 묶여 뗏목꾼들이 부르는 노래가락의 여유와 새로운 비전, 생산성과 생명력을 탄생시키는 고요함을 지니고 물살을 짚어 나아가야 한다.('유벌공의 노래')
남녘과 북녘의 사람들을 각각 통일의 대해까지 잘 이끌어와서 같이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통일의 축제장으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조천현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사진의 세계가 아닐까. 이 땅의 사람들이 지닌 감수성과 정서의 공통분모를 담은 강을 매개로 하는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고귀한 삶을 그의 불멸하는 예술혼에 아로새겨 놓은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는 곧 통일의 힘차고 기쁜 노래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사진전 ‘압록강 뗏목꾼의 노래‘는 오는 3월 30일까지 갤러리 스타파이브(인천 중구 소재)에서 열린다. 조천현 작가는 동국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고, 1997년부터 조선, 중국 접경지역(압록,두만강)을 다니며 우리 민족에 관한 내용을 주제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영상으로 kbs 스페셜 <현지르포, 두만강변 사람들>, sbs 스페셜 <5년의 기록, 압록강 이천리 사람들>을 연출했고, 사진집<압록강 건너 사람들>, 사진이야기 책 <압록강 아이들>, <뗏목-압록강 뗏목 이야기>, 탈북자의 실상을 담은 책<탈북자>를 출간했다.
조천현 작가의 사진전 관람기를 쓴 심종숙씨는 민족작가연합 공공대표이자 시인이다. 필자는 압록강과 뗏목, 그리고 강을 매개로 하여 살아가는 압록강 뗏목꾼들의 일상과 자연환경에 주목해 관람 소감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